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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61 ] 갱톡

김홍성
  • 입력 2020.08.2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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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다르질링에 도착했을 때는 앞이 안 보이는 짙은 안개 속에서도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었고 기대도 있었다. 갱톡에 도착해서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피곤하고 시장할 뿐이었다.

ⓒ김홍성

 

칼림퐁과 갱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어름이었을까? 자동차 타이어들을 엉성하게 쌓아둔 어떤 집 앞 마당에 지프가 섰다. 간판 하나 없이 자동차 펑크만 전문적으로 때우는 집이었다. 영감님이 나와서 쇠 지렛대와 망치를 이용하여 타이어를 벗겨내고 고무 튜브를 꺼내어 물통에 담가 주물럭거리며 펑크 난 자리를 찾는 동안 어디선가 암탉이 병아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암탉이 마당의 흙을 발로 헤치면 병아리들은 헤친 흙 속에 서 먹을 것을 찾았다.

 

시골에 온 느낌은 나는데 왠지 좀 스산하네요.”

저도 그래요. 아까 그 대숲 속 해우소에 다녀오면서 착잡했어요. 이전의 좋은 것들이 안 좋은 것들에게 밀려난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스님도 그러셨어요? 저도 그 해우소가 조만간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상업 자본이 들어오면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것들부터 파괴되잖아요. 우리나라처럼 말입니다.”

 

시킴에 도착하면 되도록 차 안타고 싶어요. 날씨만 좋으면 터벅터벅 며칠이라도 걸어보고 싶네요. 걸어야 아직까지는 살아남은 귀중한 것들이 보일 거구요.”

저도 그런 생각해 봤습니다. 칸첸중가에 좀 더 가까이 가면 오롯한 마을과 소박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뭔지 모르겠네요.”

그렇더라도 실망하지 말기로 해요. 우리는 구시대의 마지막 지프를 타 보잖아요.”

구시대의 마지막 펑크 수리 현장을 지켜보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해지기 전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스님은 대화 중에 가끔씩 말문을 닫는 버릇이 있었다. 갑자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것인지, 염려에 관한 화제를 바꾸고 싶은 것인지, 더 이상의 말은 아끼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말을 잇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스님은 깊은 공감을 그렇게 표현할 때도 있고, 이어질 말이 무슨 말이든 잘 들어줄 아량이 있음을 그렇게 침묵으로 표현한다는 것도 차차 알게 되었다.

 

어미가 헤쳐 준 마당의 흙속에서 모이를 찾아 먹은 병아리들이 여기저기 똥을 찍찍 싸고 있을 때 지프는 다시 떠났다. 펑크를 때운 바퀴는 지프 지붕에 올렸으므로 앉음새가 조금 편안해졌다. 그러나 안개가 자욱해지면서 기대했던 풍경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게다가 밤이 오는 듯 컴컴해졌다. 거의 다섯 시가 되고 있었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컴컴해질 시간은 아니었다. 졸음이 왔다.

 

졸다 깨다 하는 중에 지프는 체크 포스트 앞에서 세 번 째로 섰고 우리 둘은 내려서 여권의 인도 비자 페이지에 붙인 시킴 입경 허가서에 입경 스탬프를 받았다. 그 과정에 특별한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양쪽 입 끝만 당기면 저절로 나오는 미소와 땡큐 써로 충분했다.

 

다시 졸다 깨다 하다 보니 지프는 가로등이 뿌옇게 보이는 비탈진 도로를 오른 후에 좌회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지프가 멈춘 곳은 승합차들의 주차장이었다. 주변에 점포, 식당, 여행사, 호텔 등이 보였다. 조수는 지붕에 올라가 줄을 풀고 바퀴부터 내려놓고는 승객들의 짐을 하나하나 내려 주었다. 거기가 우리의 목적지인 갱톡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배낭을 받으면서 갱톡?’하고 심드렁하게 물었다. 조수도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갱톡! 갱톡이라는 지명은 산꼭대기라는 뜻이라고 했던가?

 

처음 다르질링에 도착했을 때는 앞이 안 보이는 짙은 안개 속에서도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었고 기대도 있었다. 갱톡에 도착해서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피곤하고 시장할 뿐이었다. 짐이 가벼운 스님이 앞장서서 처음 찾아 들어간 카페의 구석진 곳에는 불빛이 명멸하며 빙빙 돌아가는 스탠드가 세워져 있어서 설익은 향락 냄새가 났다. 그 다음에 찾아 든 곳은 한 술 더 떴다. 바텐더가 있는 스탠드바가 전면에 보였다.

 

세 번 째 찾아간 곳이 티베탄 차이니즈 레스토랑이었다. 역시 실내 장식이 요란하기는 했지만 그나마 익숙해서 안심이 되는 곳이었다. 종업원이 들고 온 메뉴를 죽 읽다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모모나 뚝바나 차오민 등 음식 가격은 알리멘트보다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위스키 종류의 가격은 다르질링의 반값도 안 되었다. 우리나라 소주 가격이었다. 종업원의 설명에 의하면 인도 정부는 시킴 땅에서 만드는 모든 주류에 면세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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