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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겨내기] '함께 좁히는 마음의 거리' 이운주님

mediapiawrite
  • 입력 2020.08.17 13:25
  • 수정 2020.08.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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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

2등 수상작, 이운주님, '함께 좁히는 마음의 거리'

 

코로나 19가 전세계적 팬데믹으로 선언된 이후, 우리는 ‘함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두려워졌다. 각종 매체에선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했고, 외부에서 여러 명이 모이는 행사는 모두 취소됐다. 한참 축제와 페스티벌로 시끌벅적해야 할 여름, 텅 빈 거리에는 뜨거운 햇빛만이 내리쬐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반 이상 가리는 마스크 너머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함께 해나가야 할까?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하거나 규칙적으로 나가던 운동마저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초∙중∙고등학교의 개학이 미뤄지자 자연스럽게 대학도 개강을 늦췄다. 일주일이면, 한 달이면 다시 학우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으나 결국은 한 학기 내내 사이버 강의를 들어야 했다. 자칫하면 공부의 효율을 떨어트릴 수 있지만, 나는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이버 강의의 순기능을 체험했다. 어머니께서는 학창시절 소설가의 꿈을 갖고 계셨다. 하지만 당시, 글 쓰는 사람은 밥 벌어 먹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외할머니의 반대가 심해 어머니는 결국 꿈을 포기해야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내가 어릴 적, 침대에 함께 누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시거나 동화책을 실감나게 읽어 주시고는 했다. 그 영향을 받아 문학에 재미를 붙인 나는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마치 어머니의 꿈을 이어받아 긴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대학 강의가 인터넷으로 올라오면서 집에서 원격으로 수업을 듣게 되자, 어머니는 내 수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셨다. 한번은 내가 온라인 강의를 듣던 도중, 어머니께서 잠시 내 방에 들어오신 적이 있다. 전공 강의 중이라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도 내가 듣던 강의를 함께 듣게 되었다. 관심 있는 분야라 그런지 어머니께서도 굉장히 재미있게 강의를 시청하셨고, 그 이후로 종종 함께 강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와 내가 같은 학번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공부의 기회, 배우고 싶은 과목을 편안하게 배워왔다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감염병으로 인해 지루하기만 할 수 있었던 사이버 강의가 어머니와 함께 하니 훨씬 집중도 잘 되고 의미 깊게 느껴졌다.

한편 20년 넘게 학원을 운영하고 계시는 부모님께선 코로나로 인해 직격타를 맞았다. 학원 내 감염 확신 소식이 매체를 장악할 때마다 우리 가족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학원 강사가 학생에게 병을 옮기거나 상담원이 학부모와 학생에게 전염시키는 사례가 화젯거리로 떠오르면서 부모님의 휴업은 생각보다 훨씬 길어졌다. 평소 “딱 일주일만 쉬어 보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던 어머니는 본의 아니게 긴 휴가를 받으셨다. 두 분 다 같은 직업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세 가족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우리는 우울감을 이겨내기 위해 억지로라도 드라이브를 가거나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신기하게도 하루에 밥 세 끼를 다 같이 먹다 보니 가족 간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한 달 정도 미뤄질 것이라 예상했던 대학 개강도 미뤄졌고, 당연히 초중고 학생들의 개학은 일주일 단위로 연기 소식이 들려왔다. 학교 수업이 정상화 되지 않으면 당연히 학원 사업도 어려웠다. 부모님께서는 이대로 무의미한 날들을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모두 상담 전화를 거셨다. 희망하는 학생에 한하여 수업 자료와 숙제를 자가까지 배달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해 보는 시도였고, 큰 변화였다. 생각보다 많은 가정에서 이 서비스를 원했고, 부모님은 학원에서 학습지를 인쇄해 학생들의 집마다 봉고를 몰고 방문하셨다. 어머니께선 초등학생 꼬마 아이가 아파트 앞에서 노란 봉고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일이 생활에 큰 활력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노력이 닿았는지 몇몇 학부모님들께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소정의 금액으로 전달해 주셨고, 우리 가족은 슬기롭게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갔다. 아버지가 모는 노란 봉고차가 동네 곳곳을 누비며 학생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뻗은 것이다.

부모님께서 ‘함께’의 의미를 실천하고 계시는 동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학 종강 이후, 안전하되 알찬 방학을 보내기 위해서 국가 공인 자격증을 알아보았다. 문학을 좋아하는 내가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분야를 찾다 ‘국가 공인 실용 글쓰기’라는 시험을 알게 되었다. 객관식 문제와 주관식 문제가 섞여 글 쓰기 능력을 검증하는 방식이었는데, 내가 자신감 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문제집을 구매했다. 하지만 시내에 있는 학원을 다니기엔 위험한 상황이라 독학을 해야 했다. 아무리 글을 오래 써왔고 좋아한다 하더라도, 수능 비문학에 가까운 지문들을 풀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무료 인터넷 강의는 공개된 영상이 거의 없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공부 능률을 올리기 위해 함께 공부할 소규모 스터디를 모집했다. 처음엔 인원이 잘 구해지지 않았지만 꾸준히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리면서 친구 한 명과 함께하게 되었다. 친구와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 학원에서 만났다. 빈 강의실에서 단둘이 공부하며 서로 얼마나 공부했는지, 어느 지점까지 학습했는지 확인해 주고는 했는데 확실히 혼자 준비할 때보다 적극적으로 임했다. 한 달 정도 시험을 준비한 후, 드디어 시험 당일이었다. 시험장은 안전 규칙일 준수하기 위해 체온을 쟀고, 소독제 사용을 엄격하게 확인했다. 교실에서도 거리 두기를 지키며 띄엄띄엄 좌석이 배치됐다. 시험이라는 분위기 자체로 엄숙한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더욱 교실은 엄격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겼다. 시험 10분 전, 나는 가방에서 미리 챙겨온 간식거리를 친구에게 선물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모의고사를 보고 있던 친구가 해사하게 웃었다. 혼자 준비했다면 마냥 힘들게 느껴졌을 법한 시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힘든 상황 속 내게 에너지를 준 친구와 함께 했을 때, 시너지는 배가 되었다. 아직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다. 물론 결과까지 좋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축 쳐져 있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던 지난 시간은 분명 앞으로의 시간에 활력을 더해 주었다. 

뜨거운 여름, 세계인은 마스크 한 장으로 감염병과 싸우고 있다. 몇몇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분명 우리는 힘든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방법을 알고 있다. 사회적 거리는 두되, 마음의 거리는 가까이 하며 ‘함께’ 걷는다면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아침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대한민국은 위기 상황이 올 때마다 협동해 고비를 넘긴 민족이 아닌가. 이제는 당연한 것이 아닌 일상이 훌쩍 옆에 다가올 그날까지 코로나 19를 이겨내기 위해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마스크 없이 볼 수 있을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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