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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겨내기] 1등 수상작, '소통의 부재' 이주형님

mediapiawrite
  • 입력 2020.08.16 10:25
  • 수정 2020.08.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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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

1등 수상작, 이주형님, '소통의 부재'

 

누구나 초등학교 시절 내가 상상하는 100년 후 미래의 모습 포스터를 그려봤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당시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미래는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가 도래할 거란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본인은 절대적인 디스토피아 옹호자였기 때문에 대기 오염과 질병 등으로 마스크와 방독면을 착용하고 다니는 미래인의 모습을 그려내곤 했다. 

그런데 100년, 50년 이후도 아닌 지금, 벌써 디스토피아가 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거리에 나올 때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시국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마스크를 쓰고 감염을 경계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사회. 분명 시민의식이 돋보이고 모두에게 권장해야 할 모습이지만 이는 내 삶에 있어 가장 큰 위기라 말할 수 있다.

본인은 청각 장애인이다. 유소년기 대부분을 수술과 재활로 보냈다. 그래도 외로움은 알지 못했다. 주위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어른들도 많이 있었고 심심하면 꺼낼 수 있는 교구와 책들도 있었다. 빨리 다 낫고 또래 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퇴원 이후 그토록 고대하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외로움을 알게 됐다. 사소하게 생각했던 신체적 차이는 또래들과의 교류에 있어 꽤 컸고 이를 좁힐 수 있는 매개체가 없으니 자연스레 겉돌게 됐다. 차츰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침묵이 길어지니 말을 하는 법도 잊게 됐다. 현실이 괴로울수록 독서와 영화 감상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그렇게 인간관계의 겨울이 계속됐다. 이 긴 겨울을 끝낼 꽃이 핀 건 우연한 계기였다.

용기를 내서 간 모임에서 보드게임을 처음 접하고,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 간에도 보드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매력에 푹 빠졌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지내온 사람들도 5분에서 10분의 짧은 시간 동안 보드게임의 규칙 설명이 끝나면 단번에 보드게임을 매개체로 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보드게임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더 친밀해질 수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함께 보드게임을 하는 모임도 주최했다. 주변인들에게 보드게임의 매력을 알려주기 위한 영업도 적극적으로 하다 보니 어느새 보드게임 카페도 창업하게 됐다.  

이후 난청이 오면서 청력 손실로 인해 보청기로도 소리를 못 듣게 됐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수어가 아닌 구화를 연습했다. 대화의 주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말을 꺼내는 개인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상대방의 입 모양을 항시 보며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 손님들의 주문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입 모양을 보고 주문을 받고, 입 모양을 보며 보드게임 설명을 이어 나갔다. 풍족하진 않더라도 내면을 유대감으로 채워나갈 수 있던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어려움이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모두가 마스크를 쓰면서 나도 덩달아 거리두기를 당했다. 입모양이 안보이는 침묵 속에서 갑작스럽게 소통의 거리두기가 왔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 나가기란 어려웠고 일상 속에서 내 자리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입 모양이 보이지 않는 대화란 소란스러운 침묵에 불과했다. 대화에 끼지 못하다 보니 점차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다. 마치 내 가치가 낮아지는 것만 같았다. 정기적인 모임도 불참하고 자주 만나던 친구들도 피하면서 고립을 택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혼자 서서히, 깊은 우울 속에 침전됐다.

카페에서 근무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손님들의 마스크 안에서 나오는 말들이 나를 혼란스럽게만 했다. 요금제는 어떤 걸 선택했는지, 음료는 어떤 걸 주문하는지, 심지어 게임은 어떤 걸 요구하는지... 평소와 같았으면 손쉽게 처리했을 일들도 꽤나 어렵게 느껴졌다. 손님들께 주문에 대해 다시, 제대로 여쭤봤으면 좋았겠지만 낮아진 자존감에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혹여나 클레임이 들어올까 눈치만 보게 됐다. 항시 날이 선 상태로 집중을 바짝 하고 일하니 긴장하게 되고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진지하게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휴업을 고려하고 마지막 영업을 준비하려는 찰나 지인들이 방문했다. 허나 행색이 특이했다. 입이 보이는 투명한 마스크를 쓰고 방문해 준 것이다! 처음에는 입이 훤히 드러나는 비범한 디자인에 깜짝 놀랐으나 이윽고 디자인에 숨겨진 배려를 알게 됐다. 마스크를 착용해 거리를 두는 동시에 보이는 입 모양으로 거리를 좁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육성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 날이었다.

손님들도 이를 보시고 자연스럽게 내 장애를 인지하시곤, 서로 앞다퉈 마스크를 벗고 주문을 하시려 했다. 정말이지 반가운 입 들이었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화들짝 놀라 제지했다. 그러니 손으로 메뉴판을 가리키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젓고의 풍족한 표정을 동반한 감정 표현 등으로 주문을 해 주셨다. 그 서투른 따뜻함도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만 손님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추태를 보일 뻔했다.

지금은 분명 모두가 힘든 상황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일상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선천적인 신체적 결함과 유례없던 상황이 겹쳐짐으로 인한 일상의 위기가 있었다.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포기하려 했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믿음을 준 가족들, 응원을 준 지인들, 그리고 일상 속 작은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 손님들에게 감사한다. 앞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을 포기하지 않고 모두와 소중한 가치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 심사평

윤한로(시인·다시문학주간)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휩쓴 지 7개월이 넘었다. 팬더믹이 선언되고 전 세계 확진자가 1000만 명을 웃돌며 사망자도 50만을 훨씬 넘어섰다. 어느 곳에서랄 것 없이 모든 곳에서 일상이 죄다 깨졌다. 어이없으면서도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이번 미디어피아에서 개최한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에 300분이 좋은 글을 보내오셨다. 이 가운데 「소통의 부재」(이주형), 「함께 좁히는 마음의 거리」(이운주),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라」(모은우), 「상미」(김수연)를 우수작으로 추렸고, 그중「소통의 부재」를 1등으로 선정했다.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곳에서 조용하게 겪은 아픔을 통하여, 날마다 먹고 자고 일하고 만나고 웃고 울던 일상이, 평범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깊이 새겨 보게 하는 글이다. 표현이나 문장, 기교 이런 것들을 넘어 진솔한 체험이 와 닿았다. 잘 읽었다. 다른 3명 수상자의 작품들 또한 너나없이 좋았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무튼 코로나19로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빨리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를 기원한다. 우리 모두 희망을 가지고 이겨내야 한다. 

 

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 1등 수상작 이주형님이 보내주신 '소통의 부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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