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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 빠진 한국사] 광복절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역사, 한민족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0.08.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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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사군이 가짜이거나 중국에 있었다면 한사군이 있었다던 한반도에는 그 시절에는 어느 민족, 어느 왕조가 있었을까? (한사군은 기원전 108년에 지금의 평양 근처에 설치되었고 고구려 미천왕이 기원후 313년에 내쫓았다고 배워 왔다.)
- 대한민국의 역사는 공간이 우선되는 역사. 남한의 유물 유적만 조사발굴 가능한 한계가 있다. 북한과의 공동연구가 정말 필요하다. 북한은 한사군이 중국 동부에 있다고 보는 것이 일치된 견해이다!
- 한민족의 역사는 지배층의 이동과 정착을 우선 기록한 역사. 한반도 이외에 사는 한민족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19세기 서구에서부터 근대 국가가 성립하였다.  서구가 역사패권을 가지고 있었음으로 근대국가라는 개념도 서구가 만든 것이다.

 

미국을 보자. 미국 지배층은 유럽에서 넘어온 사람들이다. 인디언 원주민의 역사를 미국의 역사로 인식하고, 열심히 가르치고, 알리는 경우를 보기가 쉽지 않다.

 

대한민국은 서구의 국가 개념 토대 위에서 건국되었다. 심지어 헌법에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영토로 한다는 조항을 두었다.

 

어디까지가 한반도인가? 압록강, 두만강 이남이면 한반도인가? 압록강 하구 신의주에서 두만강 하구를 일직선으로 긋고 이남이 한반도인가?

부속도서는 어디까지인가? 대마도는 부속도서인가? 일본열도는 부속도서인가?

 

북한이 한반도임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내이지만 실제 지배할 수 없다. 북한에서 유물, 유적을 마음대로 조사 발굴할 수 없다.

 

실효성은 없고 법체계상 어려움만 있는 헌법의 영토조항은 개정하거나 혹은 삭제할 필요가 있다.

 

 

나의 부모, 부모 각자의 부모, 그 각자의 부모 각자의 부모… 이를 추적하는 것이 족보와 무덤이다.

 

주거지를 이동하거나 오래 되어 무덤이 없어진 경우는 너무 많다. 남은 것은 족보와 전승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지배층이 아니면 족보와 전승은 없거나 부족하기 마련이다.

 

조선이 건국하면서 이성계 쪽에 선 사람들은 족보를 쉽게 만들었다. 여진족 출신이라는 이성계의 아버지, 어머니의 부모, 조부모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이성계와 같이 조선을 건국한 세력의 조상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찾기 쉽지 않다.

 

이성계 조선 건국에 반대한 고려의 지배층들은 족보가 있을까?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이성계 건국세력 찾기보다 더 어렵다. 일설에는 이성계의 박해를 피해 성씨를 바꾸고 살았다고도 한다.

 

조선을 이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과 그 후손은 알려져 있다. 고려 왕가의 후손들은 어디에 있는가?

 

 

한민족의 역사는 한반도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일본열도에 한민족이 이주한 역사도 한민족의 역사이다. 바이칼호수  근처 브리야트 공화국에서 남으로 이주하여 한반도에 왔다면 브리야트 공화국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찾을 수 있다.

 

우랄산맥,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초원을 지나면서 스키타이가 흉노가 되고, 선비족이 되고, 여진족이 되고, 몽고족이 되고, 만주족이 되고, 조선족이 되어서 한반도에 왔더라도 역시 한민족의 역사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역사는 한반도 지배층의 역사이다. 오랜시간 동안 한반도 원주민은 이주해온 지배층을 맞아들여 다른 인종, 민족과 섞여 살고 지배층의 유물, 유적을 남겼다.

 

지배층의 고향이 어디이며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는가가 공간우선의 ‘한국사’ 이다.

 

한반도 지배층은 단일 인종, 단일 민족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서 용광로의 쇳물처럼 섞여 있다.

 

공간우선의 ‘한국사’는 일제와 앞잡이 이병도, 신석호가 파놓은 늪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한반도에서 발굴 조사되는 유물 유적과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발굴되는 유물유족과 남아있는 역사기록을 통해서 한반도로 이주하여 지배층이 된 다양한 한민족의 역사를 발굴해야 한다.

 

역사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 ‘한국사’라는 단어를 사용할수록 늪에 더 빠져 들어간다. 민족, 지배계층의 이동이라는 관점, ‘한민족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해야 세계사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누구까지를 한민족으로 볼 것인가?

 

남한에서 조사발굴된 유물 유적을 중심으로 북한, 만주, 중국대륙, 일본 열도, 중앙아시아, 러시아에서 조사발굴된 유물 유적을 비교하여 한반도 땅의 역사 즉 한국사를 추측하고 새로 써야 할 것이다.

 

흔히 ‘신라금관’이라고 하는 금(동)관은 경주 이외 대구, 합천에서도 발굴되었다. 강단사학 분류로는 다른 국가인 신라, 가야에서 발굴되었다.

 

금(동)관과 같이 혹은 따로 발굴된 금동신발은 남한 각지와 중국 집안 고분에서 발굴되었다. 금동신발 양식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야로 나눈다. 몇 켤레 나왔다고? 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영토를 먼저 정해놓고 연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집안 이외의 중국이나 북한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아마 금관이나 금동신발이 발굴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민족 혹은 부족의 이동경로로 보자. 처음은 어디서 출발했는지 모르지만 압록강 중류 집안에서 살다가 일부는 지금의 평양으로 와서 살고, 그 중의 일부가 지금의 천안에 와서 살고, 그 중의 일부는 지금의 나주에서, 지금의 경주에서, 지금의 합천에서, 지금의 김해에서 살고, 지금의 일본까지 넘어가서 산 것 아닐까?

 

오구라 라는 일본인이 경주에서 도굴하여, 지금은 일본 국립박물관에 있는 청동기 초기 유물 견갑동기와 꼭 같은 견갑동기가 중국 동북부 심양 고분에서 발굴되었다. 

 

견갑동기는 무기인지 제사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많이 발굴되는 청동기 동검 과 같이 발굴되었다. 비파형 동검과 세형 동검으로 민족을 나누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과연 타당한 견해일까? 처음 그렇게 나눈 사람은 누구인가? 일제 시대 일본 학자들 아닌가?

 

심양, 집안 (압록강 중류, 1만3천여개의 고분이 있음), 경주에서 발굴된 유물을 선입견 없이 연구할 필요가 생긴다.

 

 

고조선 (위만조선)을 없앤 한사군이 아예 없거나 (날조되었다는 말), 최소한 지금의 중국 중부 혹은 동부에 있었다면 한반도에는 어떤 국가나 민족이 살고 있었을까?

 

과연 신라가 중국과 교통하기 위해 지금의 한강유역을 확보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을까?

 

5, 6세기에 한반도 서해안에서 (꼭 한강유역, 인천, 임진강 변이 아니어도 좋다) 수, 당나라 서울인 낙양이나 장안 (지금의 서안)까지 과연 배를 타고 갈 수 있을까?

 

가까운 산동반도, 지금의 위해나 연태까지 돛단배를 타고 가면 며칠 걸릴까? 목숨 걸고 가야 되는데. 나무로 만든 배에서 밥을 해 먹을 수 없고, 말린 음식과 물만 싣고 가는데. 그래도 최소 2~3일은 걸리지 않을까? 인천에서 위해까지 디젤엔진 여객선이 쉬지 않고 10시간 걸린다.

 

거친 바다 여행도 쉽지 않은데 병사 5만이 황해를 건너 백제 왕성 지금의 부여로와서 백제를 멸망시켰다고? 왜는 구원군 2만을 일본 열도에서 부여로 보냈다고? 심지어 말도 싣고 왔다고? 식량은? 마실 물은?

 

디젤 엔진 여객선도 10시간 걸리는데 돛단배로 5만명이 움직였다고? 5만명 모두 무사히 황해 바다를 건너서 한반도 어느 해안 (강단에서는 친절하게 금강하구라고 비정한다)에 닿으면 누가 “어서 오세요. 물은 여기에 있고. 쌀은 여기에 있고 말도 있습니다” 하고 기다리나?

 

1592년 임진왜란 때도 일본은 일본열도에서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들어왔다. 제주도를 거치거나 거치지 않고 남해안으로 오지 않았다.

 

16세기에도 그랬는데 6,7세기에 수만명이 먼 바다 항해를 ,더구나 말까지 싣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언제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반도에 있었을까?

 

과연 일제가 꾸미고 이병도, 신석호, 강단사학이 분칠한 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반도에서만 아웅다웅 했을까?

고구려의 수도가 중국 집안과 한반도 평양에 있었고, 백제의 수도가 한반도 부여에 있었고, 신라의 수도가 한반도 경주에 있었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서 바라볼 필요가 충분히 있고 넘친다.

 

문화재청 2005년 발간 해외소재문화재총서 12책 오구라컬렉션 에서 발췌
문화재청 2005년 발간 해외소재문화재총서 12책 오구라컬렉션 에서 발췌

 

변진한(弁辰韓) 지역에 영향을 준 고조선계의 문화 133페이지  이양수 저, 동북아역사논총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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