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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53 ] 엿장수

김홍성
  • 입력 2020.08.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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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고물 엿가위를 샀을 때 효봉 스님이 엿장수 하면서 손에 들었던 바로 그 엿가위를 내가 찾은 거구나 싶었죠. 어처구니없게 들리겠지만 제가 원래 좀 그래요. 그 엿가위를 손에 드니 내가 효봉 스님이 되었어요.

ⓒ김홍성

 

청계천 아니면 종로5가였을 겁니다. 길거리 노점상 좌판에 고물 엿가위가 여러 개 나와 있었어요. 하나하나 집어 들고 절컹절컹 해봤는데 그 중 하나가 내 손에 맞는지 소리가 잘 났어요. 노점 상인도 잘 한다고 부추겨요. 그걸 사서 절컹절컹 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아예 엿장수가 되고 싶어지더군요.

 

책가방 대신 엿판을 짊어지고 엿가위를 절컹거리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나중엔 절에 가고 싶었어요. 그 때가 대학 입시를 앞둔 고3이었어요. 학교 다니기 싫어서 거의 미쳤을 때였죠. 그날도 학교 담을 넘어 거리로 나와 무작정 쏘다니고 있었던 겁니다.

 

엿가위를 사기 얼마 전에 효봉 스님 얘기를 읽었습니다. 당시 우리 학교 영어 교사였던 박희진 선생님이 낸 시집에 효봉 스님 일대기가 장시(長詩)로 수록되어 있었거든요. 제목이 효봉대종사송(曉峰大宗師頌)입니다. 효봉 스님이 왜정 때 평양 무슨 법원에서 판사를 하다가 그만 두고 엿장수가 되었다는 얘기가 거기 나와요. 엿장수로 3년을 떠돌다가 금강산에 이르러 신계사에 머물던 석두 스님을 찾아갔다는 얘기가 나와요. 저도 그러고 싶었던 겁니다.

 

거리에서 고물 엿가위를 샀을 때 효봉 스님이 엿장수 하면서 손에 들었던 바로 그 엿가위를 내가 찾은 거구나 싶었죠. 어처구니없게 들리겠지만 제가 원래 좀 그래요. 그 엿가위를 손에 드니 내가 효봉 스님이 되었어요. 석두 스님이 저에게 물어요. 어디서 왔냐고요. 장안사에서 왔다고 그래요. 몇 걸음에 왔냐고 물어요. 일어서서 넓은 방을 한 바퀴 휘 돌고나서 대답합니다. ‘이렇게 왔습니다라고요. 멋지지 않나요?

 

시에서도 그 장면이 정말 멋졌어요. 꼭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금강산 같은 큰 산에서 수행하는 스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업 시간이 지긋지긋한 고등학생이었죠. 바로 절에 가서 스님들에게 또 뭘 배우는 건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3년은 엿장수로 전국을 마음껏 유랑한 후에 절을 찾아간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엿가위가 생기자 학교는 죽어도 못가겠더군요. 그 때 저는 계동의 외갓집에 얹혀살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학생 모자의 챙을 뜯어서 빵떡모자를 만들어 쓰고 물들인 미군 작업복 차림에 엿가위를 옷가지와 함께 보자기에 싸들고 나와서는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현직 엿장수를 찾았죠. 엿이나 엿판은 어디서 사는지, 리어카나 지게를 사는 데는 얼마나 드는지 등등 자문을 구하고 싶었던 겁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간혹 보이던 엿장수들이 통 안 보이는 겁니다.

 

그 날 밤부터 전에 하숙했던 청량리 하숙집을 찾아가 친구 방에서 며칠 신세를 졌어요. 하숙생들과 송별회도 하고 그랬는데 왜 그렇게 늑장을 부렸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막연한 공상을 실현하자니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한 하숙생이 경동시장에 가면 엿 공장이 있다고 했어요. 거기 가서 알아보면 되겠다 싶어서 엿 공장을 찾아 가는 길에 다른 생각이 난 겁니다. 어차피 전국을 떠돌 바에야 서울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겠나 싶었던 거지요. 이왕이면 멀리 가서 시작하자. 우선 부산이나 목포 같은 데로 가보자. 대전이면 또 어떠냐. 이런 생각이 났던 겁니다. 그래서 서울 역으로 갔죠.

 

돈은 좀 있었어요. 과외비를 안 내고 갖고 있었거든요. 그 돈이면 부산이든 목포든 대전이든 어디든 가서 엿장수를 시작할 밑천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목포 가는 기차표를 끊었어요. 끊고 나서 시간표를 보니 개찰하려면 몇 시간이나 남아 있었죠.

 

역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하다 보니 불안하고 지루했어요. 그러다 어머니 생각이 났어요. 어머니는 내가 사흘 동안 밖에서 도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알면 뭐라고 할까?

 

어머니에게 전할 말을 남기려고 외갓집에 전화했어요. 저 살던 집말입니다. 외숙모가 받았어요. 우린 지금 저녁 먹는다면서 밥은 먹고 다니느냐?’고 부드럽게 물어요.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굶었다는 생각이 났어요.

 

어디냐고 물어요. 부산이라고 둘러댔어야 하는데 곧이곧대로 서울역이라고 하고는 어머니에게 전할 말을 했어요. 아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니 빨리 잊고 오래오래 행복하시라고요. 그러고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피도 눈물도하는 대목에서 목이 메어 말을 잇기가 어려웠죠.

 

설마 나를 잡으라고 사람들을 보낼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직 대학생이던 막내 외삼촌이 운동 선수였어요. 마침 여러 명의 후배들과 같이 집에 왔다가 내가 서울 역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급히 출동했던 겁니다. 서울역 광장 시계탑 앞에서 그들에게 붙들렸어요. 엿가위가 든 보자기를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죠.

 

먼데 숨어서 바로 저 놈이다하고 조카를 지목했던 막내 외삼촌이 나타나서 보자기를 뒤졌습니다. 보자기에서 옷가지와 일기장과 엿가위가 나왔습니다. 외삼촌은 엿가위를 들고 절컹절컹 소리를 내 보더니 '이건 왜 갖고 다니냐 엿장수하려고 그러냐'며 킬킬 웃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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