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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52 ] 가출

김홍성
  • 입력 2020.08.14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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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돌아와 고등학교 때 승려가 되겠다고 가출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금방 한 페이지가 다 찼다. 스님과 뚱바를 마시며 떠드는 기분으로 썼기 때문일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또 한 페이지가 차고, 또 한 페이지가 차면서 기나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세 분 다 무사히 순례를 마치셨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니 훌륭한 거죠.”

그런가요?”

저도 몇 년 전에 셋이 떠났다가 혼자 귀국한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일찌감치 목표를 바꿨습니다. 티베트의 카일라스를 목표로 떠났는데 수속이 여의치 않아서 백두산으로 갔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직업과 관련이 있는 여행이었나요?”

그런 셈이죠. 셋 다 글 쓰는 사람들이니까요.”

작가라는 말씀이군요?”

둘은 확실한 작가지만 저는 좀 어정쩡합니다. 잡지 기자를 십 년 쯤 했더니 진이 다 빠져서 그만 둔 상태였죠.”

어떤 잡지였는데요?”

여성 잡지를 제일 오래 했습니다. 중간에 다른 잡지도 잠깐씩 해보고요.”

그러셨군요.”

고등학교 때 승려가 되겠다고 가출도 했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미 아내가 있고 애도 있는 겁니다. 식구들 밥벌이를 해야만 했죠.

지금은?”

지금도 그래요. 만행하는 스님들이 제일 부럽습니다.”

“......”

뚱바 한 통 씩 더 할까요?”

하시죠 뭐. 저는 그만 할게요.”

그럼 저도 그만 하렵니다. 석유등을 켜놔서 실내 공기가 탁하네요. 일어날까요?”

 

밖의 공기는 맑았다. 올 때보다 별들이 더 많이 보였다. 숨을 쉬면 별빛이 심장을 스치는 듯했다. 나오기를 잘 했다 싶었다. 스님도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미련이 남았다. 뚱바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마저 하고 싶은 얘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승려가 된다고 가출했던 이야기 말이다.

 

우리가 걸어오는 사이에 전기가 들어왔는지 알리멘트의 창문들이 빛을 뿜고 있었다. 문을 열자 타파가 환한 얼굴로 반겼다. 그는 다음날 정오 무렵에 파업이 풀린다고 했다. 그러나 갱톡으로 가는 버스 운행이 바로 재개될지는 미지수이니 10인승 합승 지프를 이용하는 게 낫다면서 좌석을 예약하겠냐고 물었다. 스님도 나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타파는 전화로 좌석 두 개를 예약하고서 아슬아슬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남은 두 좌석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1210분까지 합승 지프가 우리를 태우러 올 거라고 했다. 각자 선불한 요금은 버스비의 두 배 쯤 되었다. 스님은 타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나에게는 '내일 봐요' 라고 말한 후 계단을 올라갔다. 조금 서운했다.

 

혼자 남아서 타파에게 몇 가지 확인했다. 합승 지프는 다르질링에서 갱톡까지 보통 5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도중에 두어 번 노상 카페에서 차 마실 시간이 있다고 했다. 타파는 여성 승객용 화장실이 있는 카페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제야 나는 스님이 화장실 때문에 바로 방으로 올라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방에 돌아와 고등학교 때 승려가 되겠다고 가출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금방 한 페이지가 다 찼다. 스님과 뚱바를 마시며 떠드는 기분으로 썼기 때문일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또 한 페이지가 차고, 또 한 페이지가 차면서 기나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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