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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49 ] 촛불

김홍성
  • 입력 2020.08.1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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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서쪽 능선에 별들이 듬성듬성 돌아와 있었다. 어디 갔다가 인제 왔나 싶게 별들이 반가웠다. 별들과 나 사이에 언제 그렇게 도타운 정이 생겼나 싶기도 했다. 스님도 오랜만에 보는 별들이 반가웠는지 걷다가 멈추고 다시 걷다가 또 멈추면서 한참씩 별들을 바라보았다.

 

파업으로 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는 한적했다. 행인이 많지 않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산책하기 그만이었지만 너무 어두웠다. 정전이었다. 파업으로 인한 단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걷던 길가의 창문마다 가끔씩 촛불이 어른거렸다.

 

페마네 뚱바집 창가에도 촛불이 켜져 있었다.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안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촛불이 켜져 있어서 생일 파티를 하는 것 같았다. 늘 그랬듯이 안녕하세요하며 반갑게 맞이한 페마가 우리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네 명이 앉는 탁자에 세 명이 앉아 있었는데 일행이 아닌 현지인 한 사람을 옆 탁자로 합석시키면서 만든 자리였다. 나란히 앉아 있는 남녀가 나란히 앉은 우리에게 가벼운 목례를 한 후 그들의 대화를 이어갔다. 일본어였다. 서른 살 전후의 일본인 남녀는 만두와 뚱바를 앞에 놓고 있었다.

 

우리도 만두와 뚱바를 주문하고 스님에게 뚱바에 대해서 설명했다. 앞에 앉은 커플은 일본어로, 우리는 우리말로 소곤대는 중에 우리 뚱바가 왔다.

 

스님은 페마가 보온병을 들고 와서 뚱바 통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을 바라보면서 정말 곡차로군요했다. 빨대로 한 모금 빨아 보고는 많이 마시면 취하겠네요했다. 김이 나는 뜨거운 만두를 한 입 먹어 보고는 알리멘트보다 낫네요했다.

 

스님은 각양각색의 현지인들이 촛불을 켜놓고 우글거리는 그 우중충한 장소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듯 했다. 그래도 뚱바의 빨대를 빨면서 만두 한 접시를 다 비웠다.

 

다시 와서 뚱바 통에 뜨거운 물을 부어준 페마에게 스님을 소개했다. 페마는 반색을 하면서 합장했다. 스님도 합장으로 답례했지만 조금 어색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구니 스님이 그런 대폿집에서 남자와 나란히 앉아 고기만두를 안주로 술을 마시고 있으면 혀를 끌끌 찰 일이지만 다르질링의 불교도들이 주로 모이는 페마네 집에서는 그리 유난스럽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스님이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지 싶었다.

 

티베트의 스님들은 염소나 야크 같은 짐승의 고기를 거의 주식처럼 먹는다는 정도는 스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칸첸중가 기슭에서의 뚱바는 술이 아니라 남녀노소는 물론 승속이 한 자리에서 함께 즐기는 발효차 정도라는 걸 현장에서 바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님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출가하기 전에 저도 이런 대폿집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 방금 이런 대폿집을 하고 싶다고 하셨나요?”

. 정말. 꼭 이런 대중적이고 허름한 대폿집에서 저 보살님 같은 여주인 노릇을 해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미련이 남아 있어요. 저 보살님 정말 부럽습니다. 큰스님 같아요.”

 

잠시 멍했었다. 비구니로써 있을 자리가 아니다 싶어서 불편한 줄 알았는데 페마가 부럽다니 ! 페마가 큰스님 같다니!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온병을 들어서 마개를 빼고는 내 뚱바 통에 조심조심 뜨거운 물을 부어 주면서 말했다.

 

어때요? 잘 하고 있나요?”

, 하지만 큰스님한테 좀 더 배우셔야겠습니다.”

그야 물론이죠. 흐흐흐. 아예 여기 취직할까?.”

 

그 때 페마가 왔다. 페마는 한쪽 끝이 부러진 재봉 가위를 들고 와서 초의 심지를 짧게 잘랐다. 심지가 너무 길어서 촛농이 줄줄 흐르고 촛불이 일렁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페마는 무심하게 다른 테이블의 심지를 자르러 갔다. 내가 스님에게 물었다.

 

출가하시기 전에는 뭘 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면 말씀해 주시죠.”

흐흐흐……. 여군이었어요. 자세한 건 묻지 마세요. 비밀입니다."

, 그러셨군요. 동작 그만! 차렷! 마리아 호텔에서 저한테 그런 명령했던 것 기억나세요? 뒤에다 욕을 붙여서 말입니다.”

그랬나요?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그날 너무 취했어요. 누군가 저를 방에 데려다 주고 갔는데 그 사람이 처사님이셨군요?”

, 저였습니다. 좀 민망했죠.”

승려로써 그렇게 취해 보기는 처음이었어요.”

군에서는 무척 취한 적이 더러 있었다는 얘기도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말년에는 거의 중독 수준이었죠. 하하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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