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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88] Critique: Nomos Trio 정기연주회, 8월 8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8.09 09:45
  • 수정 2020.08.0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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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역대급 장마, 폭우, 2020년 경자년은 고난의 해이다. 최장 기한을 경신한 지루한 장마가 지나가면 9월 말까지 폭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산 넘어 산이로구나. 폭염이 끝나면 가을철에 코로나 2차 대유행을 걱정해야 되는 판국이니 잠시나마 이 모든 근심과 우려에서 벗어나고 싶다. 습하고 모기 많은 그런 여름말고 에메랄드 빛깔의 청량한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시원함을 맛보고 싶다. 8월 8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Blue Escape with Nomos Trio 공연 홍보물 종이(!)에 펼쳐진 바다처럼 말이다.

좌로부터 클라리넷 안종현, 피아노 박성미, 첼로 전소영의 노모스 트리오

음악가가 창조하는 선율의 원상(原像), 원형을 뜻하는 노모스(Nomos) 트리오는 1993년에 창단된 27년의 관록과 경륜을 자랑하는 단체다. 협성대학교 교수인 피아니스트 박성미와 현대음악앙상블 '소리'의 멤버이기도 한 클라리네티스트 안종현, 그리고 NEC첼로앙상블과 앙상블아리아띠의 수석 주자인 첼리스트 전소영으로 구축된 노모스 트리오는 단체의 연혁만큼이나 세월을 같이 한 우정과 노력의 산물이다. 본 공연을 마치고 이제 어디 가든 가장 연장자고 위 선생님 대접을 받는데 여기서는 막내라고 소개한 클라리네티스트 안종현의 멘트만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패기만만했던 30대의 젊은이들이 3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오면서 각자의 분야에 일가를 이루고 만남을 지속하며 실내악, 즉 같이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다이내믹하고 순발력 뛰어난 젊음의 열기와 패기 대신 관록과 경륜이 묻어난다. 중견 연주자로 들어섰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더욱 과감하고 빛난다.

커튼콜

관객이 이렇게 많을지 몰랐다. 객석 간 거리두기는 저리 가라 무색할 정도로 만석이었다. 입추의 여지가 없이 꽉 찼다는 말이 이럴 때 들어맞는 것처럼 올해 방문한 수십여 회의 음악회(하나라도 준비의 과정에서 순조로운 게 없고 성사까지 우여곡절이 산더미 같았던) 중 객석 점유율의 가장 높았던 연주회였다. 음악회가 개시되기 1분 전 청년이 헐레벌떡 문밖으로 다시 나가면서 하우스 어셔에게 종이를 한 장 달라고 요구했다. 종이? 근처에서 듣고 있던 필자나 요청을 받은 관계자나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있다가 청년의 설명을 듣고 매표소에 배치된 오늘의 프로그램, 한 장짜리 파란색 리플릿인지 필자가 눈치채고 소지하고 있던 것 중 한 장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렇게 들어찬 관객들은 첫 곡인 브람스의 클라리넷트리오 1악장이 끝나면서부터 박수갈채를 쏟아내기 시작하더니 악장 사이마다 손뼉을 쳤다. 리사이틀홀의 매진이어서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다. 1부에 브람스 트리오를 배치한 건 고심의 흔적일 터. 작품 연대순이나 비중으로 보면 프로그램 구성에서 피날레를 장식해야 할 곡이자 오늘의 악기 편성에 오리지널 형체인 곡이지만 프로그램의 종장은 신나고 재미있는, 조금이라도 대중들에게 알려진 곡을 연주하고자 하는 의도와 마음이었을 터에 브람스 대신 비제가 들어갔을 것이다. 브람스를 마치니 음악회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되었는지만 15분의 휴식시간이 필요했다. 브람스는 그런 곡이다. 인터미션 후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첼로 선율로 문을 열었다. 임의로 모음을 선택, 허밍하듯 부르는 인성 음악인 <보칼리제>는 사람의 목소리와 닮은 첼로로 연주할 시 가장 비슷한 소리와 음색에 도달할 수 있다. 글린카의 <비창> 트리오는 클라리넷을 바이올린으로, 첼로를 바순으로 대체해서 연주하는 유동적인 작품인데 제목만큼 비극적이고 애통한 면보다는 러시아 특유의 우수가 살아 숨 쉬었다. 연주자들의 유기적인 호흡과 음악 행위의 즐거움이 여실히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압도적인 객석 점유율을 과시한 노모스 트리오의 2020년 예술의전당 연주회

앙코르로 선곡된 <Over the Rainbow>에 이어 파헨벨의 <캐논>을 소개하자 객석에서 잠시 술렁였다. 그만큼 제목만 듣고도 알아서 그러는지 이런 웅성거림은 어디서든 무대의 연주자가 작품 제목을 말할 때마다 연달아 나오는 메아리다. 거기서 그친 게 아닌 재즈풍으로 편곡한 파헨벨의 캐논이란 설명이 부가되자 악장 사이사이마다 열심히 박수를 쳐대던 옆의 숙녀가 오~~하는 감탄사를 크게 내며 좋아했다. 그리고 곡이 끝나자마자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행한 딸과 제일 먼저 일어나 출입구로 향했다. 막상 필자에게는 어느 무엇보다 비제 <카르멘 환상곡>의 2악장 간주곡이 인상 깊었다. 인터메쪼라고만 명시되어 어떤 곡일까 궁금해하는 찰나에 익숙한 3막 전주곡의 선율이 플루트 대신 부드러운 클라리넷으로 먼저 제시되고 중후한 첼로가 이어받아 노모스 트리오의 27년간의 장도가 담담하게 그려졌다. 그에 못지않게 글린카 3악장의 깊고 유장한 선율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연주 세계를 펼치며 성황리에 마친 노모스 트리오의 공연이 앞으로의 27년, 아니 기한을 정해놓지 않은 유한함으로 계속 이어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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