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갤러리 탐방기: 한국화가협동조합 갤러리 쿱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8.07 09:56
  • 수정 2020.08.07 10: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도보로 왔다 갔다 하는 길이었겄만 이런 데가 있는지도 몰랐었다. 절친한 동료 교수님의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그분이 알려주신 서울교대4거리의 지난 4.15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후보 사무실이 있었던 그 뒤요, 심지어는 고기도 한번 먹었던 식당 사이의 건물 2층에 자리한 한국화가협동조합(Korea Painting Artists Cooperative)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쿱(Gallery Coop)을 방문해 보았다.

서울교대사거리에서 남부터미널 방향으로 좌측에 위치한 갤러리 쿱
서울교대사거리에서 남부터미널 방향으로 좌측에 위치한 갤러리 쿱

협동조합을 뜻하는 영어의 Cooperative의 앞 자에서 따온 쿱(Coop)이라는 이름은 낯설지가 않다. 음악에도 협동조합의 이념을 따른 동명의 오케스트라가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설립한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는 연주자들이 연주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오케스트라를 조직, 운영, 관리함으로써 운영의 주체가 되어 비즈니스까지 하는 생계의 장을 마련하는, 문자 그대로 협동과 연대를 통한 자립적이고 자주적인 단체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한 꺼풀만 껍질을 벗기면 냉엄하면서도 냉정한 생계에 직면한다. 오케스트라의 경우 몇몇의 특정 악단을 제외한 민간에서 운영비를 포함한 기타경비 등을 제외한 단원들에게 돌아가는 실 급여는 1회당 15만원선에 불과하다. 

협동조합의 신념인 '그림 한 점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다시 미술로 돌아가자. 한국화가협동조합(KPAC)은 화가들의 조합이 아닌 화가들을 위한 후원자들의 조합이다. 갤러리를 방문하니 신사 분이 나오셔서 여러 설명을 해주셨다. 눈치 9단인 필자의 직관으로 조합의 황의록 이사장이라는 분이라는 걸 알아챘다. 이름을 어떻게 알았냐고? 마침 갤러리 중앙에 놓인 '월간 미술사랑이'라는 잡지를 집어 들어 몇 장 넘기니 사진과 이름이 있어 재빠르게 알아차렸다. (이런 필자에게 관찰력이 부족하다고 타박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뿐이 없다.) '월간 미술사랑'이라는 잡지는 미술 대중화를 위해 화가조합에서 매달 3천 부씩 발간하여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지라는 것도 갤러리를 나와서야 알 수 있었다. 그림을 보러 갔는데 황 이사장의 설명을 더 많이 듣고 왔다. 황 이사장은 미술가도 아니요 미술학도도 아닌 그림과 미술이 좋아서 그리고 미술 더 나아가 예술이 우리 사회에 왜 꼭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와 물질적 가치 그리고 인재 양성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 파악하고 전파하는 사명을 가진 미술애호가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정년퇴임한 명예교수이다. 항상 강조하듯이 순수예술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당장의 이익을 중시하는 시장 메커니즘이 지지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는 시장실패(market failure)를 보완하는 가장 중요한 대안 중 하나인 사회적 관계 회복이 가장 필요한 분야이다. 당장 인기가 있어서 문화 소비자들에 의해 시장메커니즘이 지탱될 수 있는 대중예술과는 달리 단기적 대중성이 낮고 성과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순수예술은 그 자체의 사회적 중요성과 명분에 대한 자발적이고 순수한 공감과 존경이라는 선의에 기반한 도움과 기여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황 이사장은 그림을 들어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학자와 예술가의 차이까지 아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대답을 회피했다. 예술가인 필자가 떠들어 봤자 그건 불평과 불만으로 비칠 수 있고 자화자찬이요 자기합리화이기 때문에 예술가인 나 대신 예술을 알아주고 전파해 줄 대리인, 변호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과 그림이라는 단어 대신 음악으로 대체해도 나의 답변과 똑같이 일체한다.

갤러리 쿱의 내부 전경

전속과 소속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할 때는 누구보다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게 예술 단체가 자본력이 튼튼한 기업이나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또는 시장이 형성된 분야,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 작가와 연주자가 아니라면 자력 할 수가 없는 구조라 필자도 그렇게 운영하고 분리를 해놨기 때문이다. 전속으론 유지할 수 없는 구조다. 일종의 '느슨한 연대'라고나 할까? 울타리 안에 그룹으로 모여서 중점적으로 같이 활동을 하지만 개인적인 활동은 철저히 보장된다. 전속을 시키려면 월급을 줘야 하는데 그럼 협동조합이라 할 수도 없고 월급을 줄 만큼 일거리와 수익창출도 없다. 행사 한번 나가 노래 부르는데 천만원이라도 받아야지 개런티라는 운영비가 조달될 건데 클래식 공연에 기업 후원이나 정부의 지원금 없이 자기 돈 내고 자기 지갑 열어 올 정도의 마니아는 극히 드물다. 해외 유명 단체나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이라면 모를까.....

초대작가들의 작품설명

화가협동조합에는 총 18명의 소속 작가로 구성되어 있고 소속작가가 되기 위해선 4단계의 심층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철저한 블라인드 심사로 학력, 입선 경력, 활동 내역 등을 배제한 채 작품만 보고 선발하는데 또 맞장구를 칠뻔한 대목이 예술가의 인성과 화합을 강조한 마지막 단계였다. 예술가들은 장르 불문 독불장군이다. 자기 예술이 최고인 유아독존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게 또 황 이사장의 말마따나 예술가, 학자, 교육자의 근본적인 차이이자 정체성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려면 혼자 활동해야지 협동조합이라는 한 지붕 하에서는 맞지 않는다. 협동조합 아니더라도 예술을 사회에 이식 시키고 전달하기 위한, 예술거의 개인적인 작업 다음의 단계에서는 인화가 필수다. 예술활동에는 본인의 실력보다 인성, 마인드, 태도가 일순위다. 후진국이었을 때나 학력, 학벌 따지지 어디 유학을 갔다 왔네, 박사네 따위 하등 필요 없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남 배려할지 알고 같이 성장하려는 주인의식과 책임감 그리고 상대방을 향한 진정한 존중심을 갖춘 사람만이 같이 할 수 있다. 필자는 혼자 작곡하는 게 다른 음악가들과 사업 조절하고 설득하는 거보다 훨씬 쉽다. 비위 맞추는데 진절머리가 난다. 정말 대가라면 모르겠으나 꼭 그러지도 않은 자들이 더 나대고 뭐라도 된 척 하니 가소롭기 그지없다.

그럼 당연히 다음 선발 관점은 다음 두 가지 일 수밖에 없다. <대중성과 예술성>, 예술성이야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예술을 위한 예술, 평론가와 학계에서의 인정과 성공만 바라는 형 이상학적인 그림(또는 음악)은 환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장소를 잘못 찾은 거다. 소속작가가 되기전 공모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2년간 같이 지낸다. 일종의 수습 기한. 인턴인 셈이다. 그 기한을 넘기면 화가협동조합의 정식 소속작가가 된다니 여러모로 황 이사장의 오랜 기간 노하우와 성찰에 동의와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대한민국에서의 예술의 생리와 구조를 훤히 꿰뚫고 있고 민망할 정도로....

8월 12일까지 열리는 쿱과 친구들 첫번째 작가들과 작품세계

정작 그러다 보니 미술작품보다 갤러리 쿱과 황 이사장의 철학과 운영에 관해 듣는 게 더 지배적인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또 방문할 테니.. 갤러리 쿱은 연중무휴에 지척이다. 놀이터같이 들락날락해 불청객이나 되지 않을지.... 협동조합이 눈여겨 본 작가를 초대, 선발하여 여는 <쿱과 친구들>이란 제목의 전시회가 권영범, 임태규, 조현동 세 명의 작가의 조합으로 8월 12일까지, 김성호, 문선영, 박계숙이 8월 14일부터 26일까지 참여한다고 한다.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안 이후로 서울그랜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서훈 지휘자, 문화평론가이자 축제기획자 남정숙 박사 등 지인들이 여기를 방문하고 SNS에 포스팅한 것도 다 보았을 정도로 서초구에서는 명소다. 허나 다른 누구보다도 차 타고 가다 여기를 알려준 법학 전공자 덕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그분은 예술 관련 종사자가 아니다. 마치 황 이사장 같다. 예술 애호가에 현직 교수다. 그런 분들이 예술의 실 수용자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