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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46 ] 악수

김홍성
  • 입력 2020.08.0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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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쉘은 카운터 아래 전화 받는 탁자에 옹색하게 앉아 손의 붕대를 고쳐 매고 있었다. 맙소사, 미쉘의 탁자 위에는 어느새 비운 맥주병과 컵이 놓여 있었다.

ⓒ김홍성

 

 

술이 설취해서 잠이 안 왔다. 마음이 들떠서 안 오는지도 몰랐다.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책상에는 일기장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쓰다만 문장이 마침표를 요구하고 있었다. 뒷말은 생략한 채 마침표를 찍었다.

 

한 줄 비워놓고 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님에게 들려준 말들을 정리해 둘 작정이었다. 말할 때는 몰랐는데 문장을 만들려니 어려웠다. 양복을 입히고 넥타이를 졸라 매놓은 듯 갑갑했다. 결국 말하듯이 써버렸다. 쉽고 간결했다. 리듬을 타고 주절주절 길게 나오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 9. 이를 닦고 있는데 타파가 올라왔다. 미쉘이 식당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사람을 사귈 때는 귀찮은 일을 감수해야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게 후회스러웠다.

 

일부러 천천히 이를 닦고, 머리도 감고, 팬티까지 빨아 널면서 머리를 굴렸다. 미쉘에게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미쉘, 난 오늘 할 일이 많다. 미쉘, 우리가 오늘 만나기로 했던가? 미쉘, 아무 때나 마음대로 찾아오는 건 곤란해.

 

식당이 시끌시끌했다. 주방의 석유버너 타는 소리도 숨 가빴다. 빈 탁자가 없었다. 미쉘은 카운터 아래 전화 받는 탁자에 옹색하게 앉아 손의 붕대를 고쳐 매고 있었다. 맙소사, 미쉘의 탁자 위에는 어느새 비운 맥주병과 컵이 놓여 있었다.

 

서빙을 하던 타파가 턱짓으로 미쉘을 가리키며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아침부터 술 냄새 풍기며 영업집 분위기 깬다는 투정이었다. 나는 식당 밖으로 곧장 나가 출입문을 열고 서서 단호한 음성으로 미쉘을 불러냈다. 미쉘이 못 마땅한 얼굴로 나왔다.

 

난 지금 막 돌아 가려던 참이었어, .”

미안해. 하지만 나는 하던 일이 있었어. 마저 마쳐야만 하는.”

널 칼림퐁에 데려가고 싶어. 어제 말했나? 그 누나는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아…….”

고맙지만 못 간다. 시킴에서 꼭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있어.”

 

칼림퐁에 들렀다 가도 되잖아? 시킴에는 볼 것도 없어. 차라리 칼림퐁이 낫다. 칼림퐁은 여기 다질링하고 달라. 날씨도 따뜻하고. 무엇보다도 물가가 아주 싸. , 염소, 물론 싱싱한 채소도 많아. 장을 봐다가 누나에게 주면 누나가 요리를 해 주지. 술도 걱정 마. 누나가 아주 좋은 꼬도 락시를 얼마든지 구해올 수 있어.”

 

시킴에 먼저 가야 되. 중요한 일이 있어.”

무슨 일인데? 말해 봐. 내가 도와줄게.”

사람을 찾는 일인데 설명하자면 길어. 그리고 넌 몰라도 되는 일이야.”

여기 경찰 서장이 우리 아버지 제자야. 검찰청에는 우리 형 친구들도 많아. 돌대가리에 악당들이지만 도움이 될 때도 있어. 말해 봐. 무슨 일이야?”

 

미쉘,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부탁이야.”

나는 미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별의 악수를 하자는 손이었다. 미쉘은 악수를 거부하지 않았다. 붕대 두른 손을 내밀었기에 살짝 잡았다가 놨다. 돌아서서 저만치 걸어간 미쉘의 뒷모습이 측은했다.

시킴에서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

 

미쉘은 돌아보지 않고 붕대 두른 손만 높이 들었다가 내렸다. 그의 뒷모습은 무리에서 축출된 늙은 고릴라 같았다. 전날 밤에 스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를 데리고 시장에 내려가서 비닐 팩에 든 싸구려 소주를 마셨을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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