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솔베이지의 노래 [ 44 ] 이산가족

김홍성
  • 입력 2020.08.07 05: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산을 넘어도 내 쉴 곳은 아니요, 저 강을 건너도 내 쉴 곳은 없어라. ......곡조가 구슬프잖아요.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내 고향 찾아서 어디로 갈거나 ……. 마음속으로 노래하면서 곡조에 맞추어 울었던 겁니다. 진짜 눈물을 흘리면서 말입니다.

ⓒ김홍성

 

맥주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작은 위스키를 사서 맥주에 섞어 건배를 했는데 스님은 반 모금 정도만 마시고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스님이 말했다.

 

천애(天涯)를 느꼈던 걸까요? 천애고아라고 할 때의 천애 말입니다. 갑자기 무섭고 춥고 막막해진 세상에 처해서 올려다본 먼 하늘이 천애라던데 …….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는 건 일종의 예방주사가 아닐까 싶어요. 어른이 되어서 어느 날 갑자기 천애에 맞닥뜨리면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까 부모 슬하에서 미리 느껴보라는 예방주사 말입니다.”

 

흐흐흐, 그렇게도 깊은 뜻이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심심해서 순진한 애들 데리고 장난친 거였어요. 제가 우리 애한테 그랬듯이 말입니다.”

 

부모는 장난으로 거짓말을 했지만 자식들은 그 순간 천애를 보고 경악합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 혼자라는 것, 순진했기 때문에 갑자기 그렇게 막막한 상황에 봉착하는 것이죠. 부모들의 그 장난은 대대로 내려온 것이고, 그건 어쩌면 천애의 맛보기를 보여 주려는 원시적인 지혜에 속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스님은 다시 반 모금쯤으로 목젖을 적시고 말했다.

 

사바세계라는 말이 무슨 뜻인 줄 아시죠?”

글쎄요, 고생스러운 세상이라는 뜻 아닌가요? 고해처럼 말입니다.”

대충 맞아요. 그런데 사바세계라는 말에는 참고 견디면서 사는 세상이라는 뜻도 있더군요. 이런 얘기를 절에서 들으면 꾸벅꾸벅 졸고 있을 사람이 술을 앞에 놓고 들으면 눈이 반짝반짝해져요. 지금 처사님이 그렇습니다. 즐겁지요?”

. 저는 즐겁습니다. 스님은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겠네요. 술 마시지 말라는 계를 파계하고 있으니까요.”

흐흐흐 ........ 많이 아시네. 그럼 이것도 아세요?”

 

스님은 냅킨에 개차법(開遮法)이라고 써서 내밀었다.

모릅니다만 ......”

모르시면 나중에 사전 찾아보세요. 오늘은 그냥 딸 얘기를 더 해 보세요. 거짓말 한 애기도 좋고요.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몇 달 만에 우리말 한 번 후련하게 해 봐야겠네요. 우선 목 좀 추기고요. "

잔을 비운 나는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 또 생각나는 건 말입니다. 딸이 서너 살 때였는데요. 그러니까 팔십삼 년이나 팔십사 년인데요. 내가 얘를 업고 술집에 갔어요. 동네에서 1, 2차 거친 뒤에 3차로 시내에 들어갔습니다. 외상도 주고 택시비도 달라면 주는 단골집이었어요. 무척 취했죠. 딸이 울었어요. 집에 가자고요. 그래 가자, 하고 들쳐 업었더니 바로 자는 거예요.

 

애를 업고 엉거주춤 서서 몇 잔 더 마시는 중에 전화가 왔어요. 애 엄마였어요. 어디냐고 물어요. 안 가르쳐 준다고 했죠. 애는 어쨌냐고 그래요. 업고 있다고 했죠. 빨리 오라고 그래요. 알았다고 하고 술집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집에 가기 싫었어요. 전화 받을 때는 몰랐는데 전화 끊고 나니 술이 갑자기 확 취하더라고요. 어디 막막한 데 가서 그냥 울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어디로 갔겠어요? 택시 기사에게 여의도로 가자고 했어요. KBS에서 이산가족 찾아주는 행사를 하는 곳 말입니다. 그 때 거기가 이산가족 찾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굉장치도 않았어요. 하지만 자정 넘어서 찾아가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어요. 저하고 제 등에 업힌 제 딸 뿐이었습니다.

 

가로 세로 겹겹이 길게 늘어서 있는 보드 판 속에서 저는 마음 놓고 울었어요. 내 눈 높이의 보드 판에는 찾는 가족의 인적 사항을 적은 쪽지들이 붙어 있었어요. 본적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리 19반 이런 주소만 읽어도 눈물이 다시 펑펑 쏟아졌어요. 내 등에 업혀 자다 깬 딸도 같이 울었어요.

 

아빠 여기 어디야, 집에 가, 빨리 집에 가자....... 딸은 그렇게 떼를 쓰며 울었지만 저는 느긋한 곡조로 울었습니다.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내 고향 찾아서 어디로 갈거나 …….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김영동이 작사 작곡했다는 노래입니다.

이 산을 넘어도 내 쉴 곳은 아니요, 저 강을 건너도 내 쉴 곳은 없어라....... 곡조가 구슬프잖아요.......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내 고향 찾아서 어디로 갈거나 ……. 마음속으로 노래하면서 곡조에 맞추어 울었던 겁니다. 진짜 눈물을 흘리면서 말입니다.

 

우습지 않으세요? 부모님이 이북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이니까 우리도 이산가족이기는 하지만 딱히 찾아 볼 친척도 없으면서 한밤중에 술 취해서 애 업고 여의도 가서 그런 청승을 떨었던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요. 아니 다시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흐흐흐 …….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 봅니다. 딸은 제 어미랑 그 비싼 파운드를 쓰는 영국으로 떠났고, 쫄딱 망한 저는 캘커타로 날아와 밤마다 마셨던 거죠. 낮에는 늘어져 자고 말입니다. 흐흐흐 ……. 그러다가 다르질링에 온 겁니다. 저승에 온 것 같았어요. 온통 운무뿐이고, 제 눈에는 사람들도 이상했어요. 운무 속에서 운무를 흡입하며 사는 외계인들 같았어요. 흐흐흐, 재미있나요?

 

세탁 맡긴 침낭을 찾았으니 이제는 시킴으로 갈 겁니다. 칸첸중가에 좀 더 가까이 가보려고요. 거기 사는 사람들, 마을들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뚱바 ! , 뚱바라는 술 아세요? 여기 다르질링에도 있습니다. 제가 내일 맛보게 해 드릴게요. 틀림없이 좋아하실 겁니다.

 

트레킹은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산길을 1주일 쯤 걸었죠. 날마다 지치도록 걷고 밤이면 꼬꾸라져 자지만 새벽이면 맑은 정신으로 깨어나 일출을 맞이했어요. 그런 일상이 여러 날 계속 이어지니까 몸도 마음도 산뜻해 지더라고요. 산뜻해 진 걸 느끼고, 그게 좋아서 들떴는데, 하산해서는 술을 마시게 됐어요. 람만의 룸부네 집이었지요. 룸부네 집에는 까말라가 있었는데 ……. , 지루하시군요? 곧 끝낼게요. 조금만 더 들어 주세요. 중요한 얘기가 아직 남았어요. <계속>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