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솔베이지의 노래 [ 43 ] 다리 밑

김홍성
  • 입력 2020.08.06 10: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얘기는 누구나 어릴 때 부모로부터 흔히 듣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들은 아이들 중에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친부모를 찾겠다고 대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도 있다.

ⓒ김홍성

 

 

언제부터 그랬나, 언제부터 슬픈 사연을 만들어 주절거렸나? 대학을 포기하고 동네로 돌아와 술 마시며 빈둥대며 지낼 때 일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역시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네로 돌아와 해병대 간다며 놀고 있던 친구 K에게 우리 아버지도 네 아버지처럼 친아버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너는 그래도 친아버지 밑에서 컸으니까 얼굴을 알지만 내 친아버지는 육이오 때 전사했으므로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비밀이니까 너만 알고 있으라고 했는데 K는 그 말을 제 어머니에게 전했다.

 

K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와 친했다. 두 분 다 워낙 분주해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가끔 만나는 사이였다. 어느 날 K의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를 찾아와 K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 그게 사실인지를 물었다. 우리 어머니는 물론 정색을 하고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K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 말을 믿지 않았다. 애가 왜 그런 거짓말을 했겠느냐, 나도 재혼한 처지니까 다 이해한다, 이 동네에서 우리가 제일 친한 사이 아니냐면서 사실을 말해 달라고 졸랐다.

 

우리 어머니는 황당했다. 안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워낙 늙어 보여서 워낙 젊어 보이는 우리 엄마가 재취라는 소문이 돌고 있던 차에 그런 추궁을 당한 우리 어머니는 어이가 없었다.

 

어머니는 사실 동네에 도는 소문에 무관심했다. 아니 관심을 둘 틈이 없었다. 아버지와 더불어 워낙 바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동네에 몇 안 되는 의사 중의 하나였고, 어머니는 의사의 전천후 조수 노릇을 하느라고 시장에 장보러 다닐 때도 뛰어 다닐 정도였다. 그러니 동네 친구가 찾아와 그런 추궁을 하고 가도 자식이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나중에, 그러니까 며칠 후, 어머니가 틈이 좀 났는지, 한 번 물어보기는 했다. 너 왜 부모 얼굴에 똥칠을 하고 다니느냐고.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K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묻더라는 바람에 알았다. 심심해서 장난했어요. 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돌아서서 K를 찾아 나섰다. 비밀을 지키지 않은 것에 화가 나서 이 새끼 오늘 죽인다고 찾아 나섰던 건데 골목에서 딱 마주친 K가 오히려 더 화를 냈다.

 

너 이 개새끼 왜 나한테 거짓말 했어?”

거짓말 아니야 이 개새끼야.”

우리 엄마가 니네 엄마한테 가서 물어보니 거짓말이라던데?”

우리 엄마가 니네 엄마한테 거짓말 한 거야. 어떤 엄마가 그걸 정말이라고 하겠어? 너야말로 개새끼야. 둘만 알자고 한 약속을 저버린 놈은 너야. 씹 새끼, 믿었는데 .......”

 

그 때 나는 눈물까지 흘렸던 것 같다. K는 아차 싶었는지 나를 위로했다. 몰래 엿들었던 새 아버지와 엄마의 대화도 전해 주었다.

씹 새끼. 울지 마. 우리 엄마도 네 말을 믿더라. 네 엄마가 그렇게 젊고 고운데 늙은 의사랑 사는 게 좀 이상하다고 했어. 네 아버지도 실은 전처와 이혼한 사이라는 소문도 돈다더라. 널 의심한 건 미안해. 나도 우리 엄마에게 일부러 알려 준 건 아니야. 엄마에게 용돈 좀 달라고 조르다가 얼결에 나온 말이었어.”

 

그 때 내가 K에게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추리가 가능하다. 하나는 의부와 사는 K의 처지에 동조하기 위해서 나 또한 같은 처지임을 말하고 싶었고, 또 하나는 내가 아버지에게 미운털이 박혀서 아버지를 부정하고 그런 아버지를 두둔하는 어머니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곱씹고 또 곱씹었던 것 같다.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얘기는 누구나 어릴 때 부모로부터 흔히 듣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들은 아이들 중에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친부모를 찾겠다고 대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도 있다.

 

내 딸이 그랬다. 약수터 가는 길목의 다리까지 걸어가서 다리 밑을 내려다보며 엉엉 울었다. 딸도 애비처럼 심한 충격을 받았고 그게 너무 서러웠던 것이다. 놀리려고 꾸며낸 얘기였다고 달래고 또 달래서 간신히 등에 업었다. 딸은 등에 업혀서 물어 보고 또 물어 봤다. 나 엄마 아빠 딸 맞지?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거 아니지? <계속>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