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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39 ] 조우

김홍성
  • 입력 2020.07.31 06:38
  • 수정 2020.07.3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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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은 바쿠 차림이었다. 나니(티베트 불교의 여승)처럼 보였다. 눈길이 서로 마주쳤을 때 삭발이 ‘저 모르시겠어요?’ 라고 우리나라 말을 했다. 어디서 보기는 했다 싶은 데 기억이 안 났다.

ⓒ김홍성 

 

우선 아일랜드에 갔다. 배낭 속 약주머니에서 아스피린을 찾아 두 알을 먹고 체크아웃 했다. 여주인에게는 시킴으로 떠난다고 했다. 세탁소에 맡긴 빨래와 침낭도 찾아왔다. 침낭은 깨끗해졌지만 벤젠 냄새가 심했다. 아스피린을 먹은 후 잠시 잊었던 두통이 재발하는 듯 했다. 침낭을 침대에 펼쳐 놓고 보니 과연 홀쭉해져 있었다. 햇살 좋은 날 빨랫줄에 널어놓고 손으로 비비면서 두드리면 어느 정도 복원이 된다던 몽사의 말이 생각났다.

 

벤젠 냄새라도 빼야겠다 싶어서 침낭을 대충 말아 안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늘은 흐리고 바람도 없었지만 안개도 없었다. 침낭을 빨랫줄에 널고 침낭 복원 작업을 시도했다. 침낭을 손으로 비비고 두드리고 하는 소리가 거슬렸는지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문을 조금 열고 내다보는 얼굴이 있었다.

 

옥상의 유일한 방이며, 전에 내가 며칠 묵었던 방에서 얼굴을 내민 사람은 승려처럼 삭발을 했기 때문에 성별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 했다.

 

삭발은 잠깐 쳐다 보다 문을 닫았지만 내 작업이 삭발을 방해한다 싶어서 다시 둘둘 말아 안고 방으로 내려 왔다. 침대 위에 앉아 무릎 위에 펼친 침낭을 비비고 두드렸다. 어느 정도 복원 되었다 싶어서 작업을 그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삭발이 카운터 옆의 메모판 앞에 서 있었다.

 

삭발은 바쿠 차림이었다. 나니(티베트 불교의 여승)처럼 보였다. 눈길이 서로 마주쳤을 때 삭발이 저 모르시겠어요?’ 라고 우리나라 말을 했다. 어디서 보기는 했다 싶은 데 기억이 안 났다. 글쎄요,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라고 했더니 피식 웃었다.

 

됐어요. 기억 안 나시면 할 수 없죠.”

그런데 ……. 저 아시나요?”

몰라요. 어서 볼 일 보셔요.”

 

원래는 식당에서 뭐 좀 먹고 나가려고 했던 것인데 어서 볼 일 보셔요하는 바람에 머쓱해져서 밖에 볼 일이 있다는 듯이 문을 밀고 나왔다. 누굴까, 누굴까, 누굴까 하면서 세 발자국 쯤 걸었을 때 생각이 났다. ‘동작 그만 .......’ 이었다. 마리아 호텔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그 여자였다. 그 여자가 옥상의 내가 썼던 방에서 삭발한 얼굴을 내밀다니! 참 묘한 인연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계속 기억이 안 나는 것처럼 행동하기로 작정했다. 웃음이 나왔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

 

광장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관광객들 사이로 어린 거지들이 따라다니고, 개들이 벤치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그 중 한 놈은 감자 칩을 먹는 어린애의 발치에 얌전히 앉아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어제 밤 내 목을 물어뜯을 듯이 덤벼들던 개들 중에 저 개도 있었으리라고는 상상이 안 되었다.

 

광장에서 한 계단 내려선 골목 끝에 키 큰 랄리구라스 나무들이 서 있었다. 나무에서 떨어진 붉은 꽃잎들이 지붕을 가득 덮고 있는 건물이 미쉘네 학교였다. 마당 가장자리에 어제 밤에는 몰랐던 작은 화단이 보였다. 하오의 햇살 아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는 학교 건물은 서부 활극에 나오는 시골 교회 같았다. 건물 동쪽 벽에 인부들이 흰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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