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앙(商鞅),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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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商鞅),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
  • 천원석 칼럼니스트
    천원석 칼럼니스트 wschun67@nate.com
  • 승인 2020.07.2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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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衛)나라 상앙. 자신이 만든 법을 통해 법의 엄격함을 보여주었지만, 그 역시 자신의 법의 굴레 안에서 최후를 맞이한다(사진=중국학 위키백과 갈무리)

 

전국 시대 위()나라 사람인 상앙(bc.395~338)은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진나라에 강력한 통치 체제를 수립한 사상가였다. ()나라는 그가 세운 체제를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어 중국 최초로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처음 찾아간 위()나라에서 길을 찾지 못한 상앙은 진나라로 건너가 진효공에 의해 중용된다. 상앙은 진효공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군사, 재정, 법제, 토지, 관리체계 등 진나라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 건설을 도모하는 이른바 상앙변법을 추진한다.

상앙변법은 철저히 법에 근거한 엄격한 정치체제였다. 고발 제도와 연좌제로 모든 백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인 오가작통법,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한 공로의 유무와 대소에 따라 작위를 부여하는 등급제, 강력한 중앙집권제인 군현제 구축, 토지개혁과 함께 노예를 과세와 병역 의무가 있는 양인으로 신분을 전환시켜 안정적인 세수를 확보하는 부분적 노예 해방제 등의 개혁은 국가의 체질을 바꾸는 큰 성과를 가지고 왔다 하지만 이와 함께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도 불러왔다. 하지만 상앙은 두려워하거나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그는 나무를 옮겨 신뢰를 얻는다이목지신(移木之信)’의 당근책으로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반면 태자가 법을 어기자 태자 사부의 코를 베고 얼굴에 먹물을 새기는 법집행을 통해 법의 엄격함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법에 기반한 상앙의 개혁은 진을 변방의 소국에서 중원의 최강자로 변모시킬 수가 있었다.

하지만 거칠 것 없던 상앙의 권세는 결국 진효공이 죽고 상앙이 죄를 물었던 태자가 왕위에 오르면서 결국 끝을 보게 된다. 상앙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그는 위나라로 가기 위해 국경에 도착했다. 하지만 성문은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야 문을 열 수 있다는 법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여관을 찾았지만 그곳에서도 그는 문전박대를 받았다. 여행증이 없는 사람을 받으면 여관 주인을 엄중하게 처벌하는 법 때문이었다그런데 이 모든 법은 바로 자신이 만든 법이었다. 결국 상앙은 사로잡혀 거열형으로 처형되고 가족들 역시 연좌제로 멸문지회를 당하게 된다. 이 모두가 자신이 만든 법 때문이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상앙이 국가에 끼친 큰 공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아주 야박하다. 이는 상앙이 보여준 행태 때문이었다. 상앙은 국가의 부강을 위해 귀족의 영토와 사병들을 국가로 편입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의 영토에 집착하며 수많은 무장병을 데리고 다녔다. 또한 작은 잘못도 극형으로 다스림으로 국가의 위엄과 법치의 엄격함을 세웠지만, 정작 자신은 법에 걸리자 형을 기다리지 않고 달아난 후 반란까지 일으키는 모순된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일부 정치 검찰 세력의 대립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으로 당시 정권에 밉보여 좌천되어 한직을 떠돌던 그가 청문회 때 던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으며 오직 법과 원칙에 충실할 뿐이다라던 말 한마디는 온 국민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를 검찰총장으로까지 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윤총장은 자녀의 표창장을 핑계 삼아 조국과 그의 가족에 대한 대규모 압수수색과 기소를 통해 온 나라를 혼란 속에 빠트렸다. 이는 대통령의 인사권에 개입하는 월권행위이자 정치 행위였다. 반면 자신의 가족이 연루된 사건에 대해서는 봐주기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지난 총선 시 채널 A와 검찰의 총선 개입 혐의에 연루된 자신의 측근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두고 있는 중이다. 지난 일 년 간 윤총장의 행태에서는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법과 원칙에 입각한 모습은 결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윤총장의 모습은 상앙이 밖으로는 강력한 법치를 시행하면서도 막상 자신은 그 법의 바깥에 거하는 모습과 판박이였다. 그로 인해 한때 그에게 쏠리던 국민의 응원과 찬사는 단 일 년 만에 조롱과 지탄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더 이상 망가지는 윤총장과 검찰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것은 국가와 국민의 불행이다. 국민들은 그가 천명한 법과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검찰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역사는 상앙이 보여주었던 이중적 행태에 대해 매우 엄격했다. 윤석열 총장은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기억할지를 기억하고 부디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지 마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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