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전두환도 격노했던 가짜 프로복서 사건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7.24 10:12
  • 수정 2020.07.24 12: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종수 씨가 대전 승인을 해 줄 수 없다고 거듭해서 밝히자 극동측은 “서울에 와 있는 카스트로가 WBA 7위, IBF 8위인 카스트로와 동일인 이라는 파나마로부터 날아온 전문을 제출”하면서 승인 해 줄 것을 요청
기자회견이 있은 지 이틀 후 가짜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자신의 진짜 이름은 카라발로 프로레스’라며 자신이 가짜 선수임을 실토

권순천 선수와 일본 와다나베 지로 선수의 경기. 영상=한국복싱 History 유튜브(바로가기)

 

1984년 8월7일 IBF 플라이급 챔피언 권순천과 도전자 콜롬비아의 알베르토 카스티야 선수의 타이틀 매치가 전라북도 정주에서 벌어졌다.

당시 IBF는 막 태동하던 시절이라 역사와 전통이 있는 WBA, WBC 보다 권위가 떨어졌고, 동양타이틀 매치 보다 약간 대전료가 높았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그러나 권순천 대 알레르토 카스티야의 타이틀 매치는 경기가 열리기 전부터 이상한 조짐이 있었다.

우선 대회의 흥행을 맡았었던 극동프로모션(대표 전호연)이 타이틀매치 승인요청서를 통상 한 두달 전에 내는 것을, 대회가 열리기 불과 사흘 전인 9월4일에서야 한국권투위원회(즉 KBC)에 제출했다.

그리고 경기 승인 요청서에 기재된 여권의 선수이름, 파나마 권투위원회 발행 면허장에 있는 선수 이름, 전적표의 이름 그리고 닉네임이 각각 달라 도전자의 신분이 불투명 했다.

서류를 접수한 KBC는 서류마다 도전자의 이름이 각각 달라서 대전 승인에 난색을 표명했다.

당시 KBC 부회장이었던 황종수 씨가 대전 승인을 해 줄 수 없다고 거듭해서 밝히자 극동측은 “서울에 와 있는 카스트로가 WBA 7위, IBF 8위인 카스트로와 동일인 이라는 파나마로부터 날아온 전문을 제출”하면서 승인 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KBC는 그 전문 한 장으로 IBF 타이틀 매치를 승인했다.

그리고 한국방송공사(KBS)가 이미 중계방송 시간을 확정하고 예고를 하고 있는 것도 대전 승인을 서두른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앞서 언급을 했듯이 84년 8월7일 IBF 플라이급 타이틀 매치는 비교적 수준 높은 경기를 치른 끝에 챔피언 권순천이 도전자 알베르토 카스티야 선수를 경기 종료 8초전, 그러니까 12라운드 2분52초 만에 KO로 이겨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 했다.

IBF 챔피언 권순천은 비록 IBF 기구 챔피언 이지만 실력은 WBA, WBC 동급 챔피언 못지 않았다.

왼손 잽이었던 권순천은 81년 10월17일 주니어밴텀급 동양 챔피언에 오른 후 5차 방어까지 성공했다. 권순천의 경기에는 반드시 다운이나 KO가 나온다고 해서 ‘시한폭탄’이라고 불리었다.

권순천은 당대 최고의 챔피언이었던 일본의 와다나베 지로에게 WBA 주이어 밴텀급 타이틀에 도전했다가 12회에 KO패를 당했고, 필리핀의 렌 부사용과 IBF 플라이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서 5회 KO로 이겨 챔피언에 올랐다.

권순천은 IBF 플라이급 3차 방어까지 상대 선수를 완벽하게 제압 한 후 4차 방어전에서 알베르트 카스트로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타이틀 매치가 열린 다음날인 9월8일 보고타에서 외신이 날아왔다.

연합통신 특파원이 전하는 소식은 “WBA 7위(IBF 8위)에 올라있는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현재 콜롬비아에 있다. 서울에는 한번도 간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콜롬비아에서 날아온 외신을 본 국내 기자들이 알베르토 카스트로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콜롬비아에서 또 한 장의 외신이 날아들었다.

“서울에 있는 선수는 카라발로 플로레스다. 국내 랭킹은 1위이고, 1년 반 전에 콜롬비아에서 파나마로 건너갔다. 파나마로 가기 직전, 콜로비아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에르네스토 디아즈 선수에게 판정패를 당했다”는 자세한 내용 이었다.

이제 서울에 있는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가짜이고, 그의 진짜 이름은 카라발로 프로레스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그러나 카라발로 프로레스는 자기가 알베르토 카스트로라고 끝까지 우겼다.

그래서 타이틀 매치가 있은 지 4일 후인 9월11일 한국권투위원회(KBC)에서 알베르토 카스트로와 그의 매니저 토레스 씨가 합동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장에는 주최자인 극동프로모션의 전호연 씨를 비롯해서 KBC 황종수 부회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파나마 현지에서 당신을 가짜라고 하는데.

그가 가짜다. 내 이름은 정말 알베르토 카스트로다.

-신 앞에 맹세할 수 있는가

나는 신을 모독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콜롬비아에서 당신을 가짜라고 하는가

글쎄......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빨리 돌아가고 싶다. 여러분들이 좀 도와 달라. 정말 부탁한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있은 지 이틀 후 가짜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자신의 진짜 이름은 카라발로 프로레스’라며 자신이 가짜 선수임을 실토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왜 프로복싱 세계타이틀 매치에서 가짜 선수가 나온 것일까?

권순천과 진짜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타이틀 매치를 갖기 약 3개월 전인 1984년 6월10일 타이틀을 치르기로 계약을 했다.

당시 권순천과 알베르토 카스트로 대신 매니저 들이 대리 계약을 했다.

알베르토 카스트로의 매니저는 알바레토 카스트로의 사촌형 이었다. 그런데 타이틀매치를 하기로 계약을 한 이후 알베르트 카스트로는 권순천의 경기 모습을 보고, 자신이 승산이 없고, 대전료(1만 달러)가 싸다는 이유로 권순천과의 대전을 거부했다.

그러자 매니저가 부랴부랴 카라발로 프로레스를 알베르토 카스트로로 위장, 선수 경력 증을 만들어서 IBF와 KBC에 제출한 것이다.

그런데 가짜 세계 타이틀매치 소동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고 전호연씨였다. 프로복싱이 한창 흥행하던 당시 전호연 씨는 한국 최고의 프로모터 였다.

전호연 씨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였다. 일본 도시바 부속공업 중학교 때는 역도를 했고, 가나자와 대학전기공학과에 다닐 때는 축구를 했다. 복싱은 좋아하는 스포츠 였지만 직접 하지는 않았고, 나중에 프로모터 사업만 한 것이다.

가짜복서 사건으로 당사자인 카라발로 프로레스, 매니저 토레스 등은 모두 출국정지를 당한 후 입건되었다가 바로 풀려났다.

그러나 전호현 씨는 무려 10개월간의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전호연 씨는 알베르트 카스트로가 가짜 선수라는 것을 안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서 문제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이다.

만약 경기 전에 알았다면, 그야말로 가짜복서 사건의 당사자로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파렴치범이 되는 것이고, 경기를 한 이후에 알았다면 전호연 씨는 오히려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담당 검사는 전호연 씨는 전자, 즉 사전에 가짜복서임을 알고도 타이틀 매치를 강행하는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중죄가 불가피 했다며 기소를 한 것이다.

고 전호연 씨는 출감을 한 후에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전호연 씨는 “가짜 복서 사건으로 매스컴 등 전국이 시끄러우니까 청와대에서 빨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고 사건을 마무리 지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짜복서 사건으로 권순천도 피해를 봤다.

권순천은 가짜복서와 타이틀 매치를 가진 직후 “알베르트 카스트르는 와다나베(당시 WBA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 만큼 펀치가 강했고, 파이팅이 좋은 선수라 매우 힘든 경기를 했다”고 말한 것이다.

권순천은 그해 12월 라이벌 정종관과의 IBF 플라이급 타이틀 5차 방어전에서 4라운드 KO패를 당해 타이틀을 빼앗겼다.

아무튼 ‘가짜복서 사건’으로 한국권투연맹(KBC) 양정규 회장까지 물러나는 등, 한국 프로복싱 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있다.

결국 가짜복서 사건은 프로야구 프로축구 민속씨름 출범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프로복싱의 인기가 급격히 쇠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