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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78] Critique: 서울오페라앙상블의 라벨 번안 오페라 '개구쟁이와 마법'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7.20 09:20
  • 수정 2020.07.2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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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부터 19일까지 구로아트밸리에서 공연

채널이엠과 엣지티비 등의 케이블 TV에서 <전원일기>를 방영해 준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재방영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확실히 요새 방송되는 드라마와는 다르긴 한다. 배우들의 명품 연기, 성형수술이 없던 시절의 방부제 없는 천연 외모, 탄탄하면서도 인간 냄새 풍기는 대본 등 담백함에 빠져 보고 있으면 찬사가 그저 나온다. 그런데 몇 회 재미있게 보다 보면 서서히 식상해진다. 처음의 반갑고 그리웠던 향수들이 가시게 되면 답답할 정도의 지나치게 느린 전개와 지금 눈높이에서는 턱도 없이 낮은 기술에서 오는 어색함, 불과 3-40년 전 우리들의 생활 모습인데 경천동지할 정도로 바뀌어버린 삶의 양식과 가치관에서 오는 이질감 등으로 채널 고정을 하기 힘들어진다. 그건 꼭 전원일기 뿐만이 아니라 옛날 열광하고 봤던 그래서 첫사랑만큼이나 강하게 뇌리에 박힌 예전의 방송 프로그램, (유머1번지, 야인시대, 용의 눈물 등의 사극) 등등 다 마찬가지다.

단막극이 끝나고 출연진들의 커튼콜

100년 전 이역만리 프랑스에서의 유행한 오페라를 21세기 현재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탈바꿈하여 올린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라벨 번안 오페라 <개구쟁이와 마법>은 언어의 장벽이 없이 무대과 객석이 소통이 되고 내용도 서울 한복판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아이의 좌충우돌을 통해 ‘학교보다는 학원이 먼저라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사교육에 지친 아이의 일상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다는 지극히 한국적인 문제를 다룬다. 2개의 가장 큰 오페라라는 장르에서 야기되는 장벽이 사라진 셈이다. 그럼 오페라의 주인인 음악에 빠져 내용을 따라가고 노래를 감상하기만 하면 되는데..... 라벨은 세련되고 감성적이며 프랑스 문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우나이 우레초가 지휘하는 몇 대 되지도 않는 악기에서 나오는 앙상블은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극중간 놀이터 장면의 간주곡에서의 박수진 악장이 연주한 바이올린 솔로는 '이게 라벨이야'를 증명이라도 하듯 프랑스 향기를 만방에 풍겼다. 베이스 유이삭의 저음 고군분투, 안정적인 목관의 밸런스 등 앙상블 스테이지의 오케스트라 섹션은 지휘자 우나이 우레초와 절묘한 호흡을 연출해 내었다.  라벨의 음악은 100년 전 유럽 한복판 프랑스의 실정과 최신 문물 기법이 총망라된 당대의 트렌드세터였으며 고귀하고 센티멘털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라벨이 불쑥 튀어나온 게 아니니까. 언어와 배경이 우리 것으로 전환되었다 하더라도 근본을 이루는 음악 자체가 역설적으로 너무 프랑스적이고 라벨적이고 그래서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라벨이라는 작곡가와 프랑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난해 할 수밖에 없다. 

지휘자 우나이 우레초와 앙상블의 멋진 연주

조니 뎁 주연의 <가위손>이라는 영화가 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는 환상적이고 최신 기술이 집약되어 있어 개봉 시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 영화를 보면 몇몇 장면의 유치함에 실소를 금치 못하고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함을 알게 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80년대 Apple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사람은 현재까지의 발달사를 이해하고 동행할 수 있지만 지금 그래픽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아빠가 어렸을 때 즐겨 했던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라고 해보라고 하면 시시한 그래픽과 불편한 인터페이스에 아빠가 예전에 즐겼을 만큼의 재미에 빠지지 못한다. 그럼 <전원일기>, <가위손>, <도스 게임> 등의 현시대 존재 이유와 가치는 무엇인가? 단순한 추억 팔기와 과거의 유물인가? <전원일기>, <가위손>, <워크래프트> 등의 예전의 명작들을 현재의 우리는 무엇이라고 칭하는가? 그게 바로 클래식, 즉 고전이다. 고전으로서의 가치와 존개가 살아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음 질문이다. 그럼 시시각각 숨 가쁘게 바뀌어 가는 자극과 경쟁, 취업과 취직, 속세의 부와 성공에만 매몰되는 사회에 왜 이런 답답하고 느려터진 비 효율적인 고전이 필요한가? 텔레비전과 영화라는 미디어가 없었을 때 유행하고 대중들이 즐긴 스테이지 예술, 오페라를 왜 지금도 보존하고 계승해야 하는가?

주인공 소프라노 정시영

우리나라는 공연 예술에 대한 수요와는 관계없이 공급 중심의 공연예술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더군다나 순수 공연예술이 수익을 내기에는 기본적으로 시장이 너무 작다. 지금까지 오페라는 극장에 의해 하나의 상품으로 무대에 올려진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공연되어 왔다. 오늘의 공연은 음악인들이 자기들끼리 배우고 하고 싶고 과시하고 싶은 <사랑의 묘약>, <투란도트> 류의 "했다 오페라"에서 벗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했으며 시대적 동행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에서 벗어난 동행의 노력이 있었다. 음악만 라벨이 아니었다면 좀 더 대중들에게 쉽게 와닿았을 테다. 하지만 라벨을 포기하는 건 오페라라는 원형에서 벗어나자는 아니 될 말일 테니 방법은 한 가지다. 중구난방, 각자도생, 동종업계 사람들만의 시각과 관습에서 벗어나 뭉치고 연합해서 오늘의 라벨 같은 작품을 자주 올려 대중들에게 알리고 소개하고 진가를 알게 하자. 오페라가 좋다고 해야 한다고 떠들지만 말고 왜 해야 하고 왜 좋은지 대중들이 알게 하자는 거다. 같이 웃고 우는 한국판 마당극이 되게끔 하자. 그러면 라벨 말고 필요한 게 뭐 있을까? 지금 숨 쉬고 있는 한국의 작곡가들이다. 라벨이나 고태암, 나실인의 음악 모두 대중들에게 생소하고 초연 아닌 초연일 뿐이다. 100년 전 라벨의 한국에서 토속화가 아닌 현재 대한민국의 이야기, 스토리가 프랑스에서 재연된다고 상상해보자. 프랑스인이 쉽게 즐기고 대번에 익숙하게 받아들이겠는가! 아직 대답하지 않은 질문이 있다. 오페라의 필요성과 존재 이유? 오페라라는 외형 속에 우리 사회의 본질을 파악하고 우리 민족의 정서와 공감대, 시대상을 담아내 지나치게 짧은 현대의 유행과 세태에 강한 면역력을 가진 감성과 이성, 육체와 영혼이 조화를 이룬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의 라벨의 오페라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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