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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29 ] 홀리 축제

김홍성
  • 입력 2020.07.20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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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축제로 인해서 조금만 지체하면 갱톡에 못 갈 수도 있다고 했다. 터미널 주변과 협궤 열차 역전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물감 가루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광란을 벌이고 있을 거라고 했다.

ⓒ김희수 

 

이튿날도 하늘이 맑았다.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광장에서 로티와 밀크 티로 아침을 때웠고, 세탁소에 들러 세탁물을 찾았으며, 내의를 비롯한 의복을 모두 세탁된 옷으로 갈아입었다. 더러워진 옷들은 다시 세탁소로 가져가 맡기면서 침낭을 찾을 때 같이 찾겠다고 했다. 침낭은 빠르면 다음날, 늦어도 그 다음날 오전에는 도착할 거라고 했다. 만약 오전에 찾는다면 오후에 바로 갱톡으로 떠나고 싶었다.

깨끗한 옷으로 산뜻하게 차려 입고 나온 자는 볼 일 다 봤다고 금방 방구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광장을 거닐다가, 벤치에서 햇볕도 쬐다가, 서점에 들어가 책을 구경했다. 다르질링에 와서 서점에 들어가기는 처음이었다.

가장 눈길을 끈 책은 수공예로 묶은 그림책들이었다. 그 중 한 종류는 시킴의 랄리구라스를 생태나 서식지에 따라 분류하면서 채색 삽화와 판화 수십 장을 묶은 책이었다. 인쇄된 것이 아니라 한 장 한 장 직접 그려서 실과 바늘로 제본한 크고 무거운 책이었다. 소포 우편 발송용 박스에 들어 있었던 그 그림책은 내가 살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페마네 뚱바집으로 향했다. 출출하여 달 밧 떨커리가 먹고 싶었다. 취생몽사 커플은 페마네 달 밧 떨커리가 최고라고 했다. 가격이 싸고 소화가 잘 되며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주인 페마가 안녕하세요하면서 반겼다. 웃는 얼굴이 보기 좋은 페마. 많은 식객들을 앉혀 놓고도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뚱뚱한 몸을 침착하게 움직여 정성스럽게 시중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음식을 나르던 총각 종업원이 탁자 모서리를 건드려서 마호가니 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는데 페마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취생몽사 커플이 카메라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그들은 사진을 찍으러 굼 쪽의 차밭에 갔다가 두 해 전 시킴 트레킹 때 안내인을 만났다고 했다. 안내인은 점심 같이 먹을 시간 밖에는 없다고 하여 같이 왔다고 했다.

소변 한 번 보고 올 시간이 지나자 또 드르륵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락바 라마였다. 시킴으로 트레킹 일을 하러 떠났던, 내가 병들었을 때 벽난로에 장작불을 지펴 주었던 락바 라마가 바로 취생몽사 커플의 2년 전 트레킹 가이드였다.

우리 넷 모두 달밧떨커리를 먹었다. 큰 쟁반에 수북이 담아 준 흰밥은 그 뒤에 숨어도 될 만큼 고봉이었다. 페마는 밥이 어느 정도 줄면 어느새 밥통을 들고 나와 또 퍼주었다. 결국 두 손으로 밥 쟁반을 가려야만 했다.

달도 여러 번 퍼 주었다. 몽사는 달이 소화를 돕고 몸의 열을 식혀 준다고 했다. 잘게 토막 쳐서 걸쭉하게 요리한 닭고기도 서너 점 먹었고, 양배추 아차르도 맛 봤다. 아차르란 유채 기름과 함께 자그마한 유리병 속에서 발효시킨 일종의 짱아치였다.

락바 라마는 다음 날 갱톡에서 칸첸중가 트레킹을 떠난다고 했다. 나도 조만간 트레킹을 위해 시킴에 간다고 했더니 무척 아쉬워하면서 자기가 소속된 여행사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락바 라마는 우리가 밥을 다 먹자마자 일어섰다. 홀리 축제로 인해서 조금만 지체하면 갱톡에 못 갈 수도 있다고 했다. 터미널 주변과 협궤 열차 역전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물감 가루를 뒤집어 쓴 사람들이 광란을 벌이고 있을 거라고 했다.

몽사는 그들 대부분이 대마초가 원료인 방라시를 마신다고 했다. 눈빛이 달라진 자들의 소동은 이제 곧 다르질링 시가지 전역으로 퍼질 것이라고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랬다. 락바 라마가 우리와 작별하고 빠져 나간 식당 앞 골목에도 가방을 멘 남녀 학생들이 붉고 푸른 물감으로 얼굴과 옷에 칠갑을 하고 돌아 다녔다. 그들은 서로에게 물감을 뿌리면서 깔깔대고 있었다. 쫒기다가 포기하고 쪼그리고 앉은 여학생의 머리와 목에 붉은 물감 가루를 봉지 째 들이 붓는 남학생도 있었다. 몽사는 그 장면을 여러 컷 집요하게 촬영하면서 락바 라마가 간 방향으로 이동했고 취생은 그 뒤를 조심조심 따라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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