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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28 ] 동해상사 김 전무

김홍성
  • 입력 2020.07.20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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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은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 했지만 함구했다. 동해상사의 비밀 업무나 지휘 계통은 1급 비밀에 속하기 때문에 발설할 수 없다고 했다.

 

마리아 호텔 옥상의 남조선 술꾼 중에서 극소수에게만 밝혔던 그의 전직은 동해상사 김 전무였다. 동해상사는 속초에 있었던 특수부대의 위장 명칭이며, 전무는 현장 요원들을 지휘하는 초급 지휘관의 직위라고 했다.

 

18세에 가출하여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 피를 팔러 갔다가 모병관의 감언이설에 속아 입대했는데 3년 만에 처음 휴가 나오면서 입어본 군복에는 하사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그 이전까지 그는 군인 아닌 군인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2년 전에 전역 신청했는데, 1년 후인 작년에야 통과되었다. 군대생활 20여 년 만에 상사로 전역한 것이다. 전역 후 3년이 지나야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특수 신분이지만 당국의 특별한 배려로 법무부 출국심사를 통과했다.

 

어디를 가든 일주일에 한 번 씩 현재 거주하고 있는 위치와 다음 목적지와 경로를 영사관에 알리겠다는 서약서를 썼다. 그것은 그의 뇌리에 입력되어 있는 군사 정보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적에게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보안 조치 중 하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극소수는 입이 간지러워서 그의 특수 신분에 대한 정보를 주변 술꾼들에게 소곤거렸다. 새로 도착하는 여행자들에게도 소곤거렸다. 저 사람이 바로 동해상사 김 전무야.......결국 그는 그가 원한바 그대로 동해상사 김 전무가 되었다. 남다른 위의를 갖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술꾼들은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 했지만 함구했다. 동해상사의 비밀 업무나 지휘 계통은 1급 비밀에 속하기 때문에 발설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대신 고아 아닌 고아로 자랐던 처절한 이야기를 한 토막씩 들려주곤 했다.

 

친부는 한국전쟁 때 최전방 고지전에 투입되자마자 전사했다. 친모는 가난을 견디다 못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들을 손위 시누이에게 맡기고 재가했다. 그가 다섯 살 때 친모가 아들을 찾으러 왔지만 아들은 고모 곁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친모는 그 후에도 몇 번 찾아와 아들을 데려가려고 시도했지만 아들은 발버둥치고 울면서 안 간다고 했다. 그리하여 친모는 번번이 서럽게 울면서 떠났다.

 

마지막 대목, 서럽게 울면서 떠났다에 이르러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으니 누구라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동해상사 김 전무의 어린 시절 이야기 한토막은 캘커타의 마리아 호텔에서 할 일 없이 죽치고 있는 여행자들에게 일종의 TV 드라마였고 원맨쇼였다. 그가 입을 열면 다들 숙연하게 들었다. 그는 그 누구도 깔볼 수 없는 동해상사 김 전무 아닌가? 특수부대 상사 출신 아닌가?

 

한편 김 전무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상황 극 주인공이 되어 주변 사람들의 깊은 관심을 모으면서 그 자신도 잘 모르게 된 어떤 울분과 회한을 삭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김 전무가 혼자만 떠들었는가 하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 누구든 말문을 열면 진지하게 경청했고, 중간에 말허리를 자르려는 자가 있으면 조금 더 들어 봅시다 하면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점잖게 격려했다.

 

김 전무는 술 취해서 평정을 잃기도 한다. 눈을 감고 누군지 모를 상대를 향해 욕을 내뱉는다. 쌍 간나 새끼! 이를 갈면서 내뱉는 이런 욕도 실은 김 전무가 주인공인 상황극의 대사라는 것을 술꾼들은 모른다. 술꾼들은 짐전무의 욕을 특수 훈련이나 살상이 이루어지는 실전에 의해 인성이 파괴된 자가 내지르는 신음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김 전무는 바로 그 점을 노렸다.

 

지금까지 내가 김 전무라고 지칭했던 자는 내가 만든 나의 분신 혹은 인형이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 아닌 나, 즉 고아이고 살인자이며 정신분열을 겪는 나를 만들어 인형처럼 데리고 놀았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만든 인형은 내 인형과 다를 것이다. 내 인형은 나와 함께 자랐다. 나와 함께 자라서 마침내 내가 되었다. 그런 내가 캘커타를 거쳐 다르질링까지 왔고, 실리콜라의 펨 도마네 산장에 이르러서는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가 되었다.

 

흐릿해진 눈으로 취생몽사 커플을 바라보고 있자니 혀가 긴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혀가 입 속에서 무엇인가 획책하려고 달달달 떨리기 시작했으나 뚱바의 알코올 함량이 낮아서 이내 추진력을 잃었다.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뭘 찾아 나선 사람이 되어야 그럴듯할지 감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혀를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되었다. 혀가 바로 그의 인형이었다. 혀는 아직 그의 입 속에서 빨대나 빨고 스쿠티나 씹는 소화기관으로써 만족하는 게 나았다.

 

이번에도 실종된 딸을 찾으러 나선 아버지가 될 수는 없다. 그건 실리콜라의 펨 도마처럼 순진한 후진국 처녀에게나 감동을 주는 인물이다. 취생몽사 커플처럼 만만치 않은 상대 앞에서는 당장 허를 찔릴 수가 있다. 뭔가 불안하기도 했다. 취생몽사 커플은 실리콜라의 펨 도마네 산장에서 묵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펨 도마로부터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한국인이 이틀 전 새벽에 다르질링으로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수도 있다. 

 

취생몽사 커플은 내가 그 장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제 멋대로 놀려는 혀를 조심해야 했다. 되도록 실리콜라 얘기를 피해야 했다. 람만이나 림빅 등 실리콜라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했다. 산닥푸나 팔루트에도 오르지 말아야 했다. 하산하다가 실리콜라에 도달하게 되면 낭패를 본다.

 

화제는 계속 뚱바로 이어지다가 멀찍이 시킴으로 가야 했다. 실리콜라로 가서는 안 되었다. 펨 도마에게 거짓말 한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새벽에 나왔듯이, 동해상사 김 전무가 지겹고 가증스러워서 캘커타를 떠났듯이, 취생몽사 커플과 함께 앉아 뚱바를 마시다가 일어서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아, 그건 장난이었어요’ 라고 대충 얼버무릴 수도 없었다.

 

다행히 취생몽사 커플과의 뚱바 미팅은 유쾌하게 끝났다. 우리는 각자의 방 문 앞에 서서 손을 들어 보였다.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내일 뵈어요. 푹 쉬세요. 이런 인사는 얼마나 듣기 좋은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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