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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25 ] 뚱바

김홍성
  • 입력 2020.07.16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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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바는 꼬도(붉은 기장)를 쪄서 누룩으로 버무려 충분히 숙성 시킨 후 대나무로 만든 통에 담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술이 우러나기를 기다려 빨대로 빨아 먹는 술이었다.

ⓒ김홍성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일에 차질을 빚는다. 시킴 입경 허가증이 나오는 데는 1주일 쯤 걸린다고 들었는데 막상 수속을 해 보니 절차가 번거롭긴 해도 몇 시간 만에 허가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오후에 바로 시킴으로 출발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발목을 잡은 것은 침낭이었다. 빨래는 날씨만 좋으면 저녁에라도 찾을 수 있지만 침낭은 최소한 사흘은 걸린다고 했다. 드라이클리닝은 그 세탁소에서 하는 게 아니라 전문 업소에 의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다르질링을 떠나고 싶어서 허가증을 손에 쥐자마자 세탁소에 가보니 침낭은 이미 전문 업소로 보내졌다고 했다.

 

아일랜드의 내 방에 배낭을 꾸려 두기는 했지만 체크아웃을 안 한 것은 다행이었다. 1주일이라면 몰라도 사나흘 더 묵는 것이 싫어서 다른 숙소를 찾아 나설 필요는 없었다.

 

바로 그 날 오후에 한국인 커플이 아일랜드의 내 옆방에 투숙했다. 통로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고, 두 번 째 마주쳤을 때 그들은 멀지 않은 곳의 로컬 식당에 가는 길이라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고서 은근히 덧붙이기를 그 집에는 뚱바라는 향기롭고 맛 좋은 술이 있다고 했다.

 

허름하고 비좁은 공간에 어수룩해 보이는 현지인들이 모여 드는 식당이었다. 간판도 없이 유리창에 크레용으로 그린 뚱바 그림을 떡하니 붙여 놓은 그 식당의 여주인은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분명 한국어, 우리말이었다. 그 바람에 컴컴한 골목에 접어들면서부터 생긴 긴장이 풀렸다.

 

여주인의 이름은 디키 도마. 자신감이 넘치며 살집이 좋은 중년 여성인데 바쿠를 맵시 있게 차려 입었다. 그녀와 한국인 커플은 이미 구면이었다.

 

뚱바는 꼬도(붉은 기장)를 쪄서 누룩으로 버무려 충분히 숙성 시킨 후 나무로 만든 통에 담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술이 우러나기를 기다려 빨대로 빨아 먹는 술이었다.

 

화덕과 천정 사이에 설치한 시렁에 걸어 말린 물소 고기를 잘게 잘라 볶아서 양파 고소 등 채소류와 함께 조그만 접시에 담아 각자 앞에 하나 씩 놓아 준 것이 안주였다. 안주 이름은 스쿠티 샐러드라고 했다.

 

디키 도마는 마호가니 병에 담은 뜨거운 물을 우리를 비롯한 손님들의 뚱바 통에 조심스럽게 부어 주곤 했다. 술맛은 뜨겁게 데운 청주 비슷했는데, 빨대로 빨아서 그런지 부드럽게 잘 넘어 갔으며 뱃속이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인 커플에게 좋은 곳을 알려 주어서 고맙다고 치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는 본명을 밝히지 않고 몽사라는 별명만 알려 주었다. 꿈 몽에 절 사. 여자도 별명만 말했는데 취생이라고 했다. 빛날 취에 목숨 생. 둘의 이름을 합치면 취생몽사 아닌가? 나도 본명은 말하지 않고 뚱바라고 기억해 달라고 했다. 다 같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들도 나처럼 산닥푸 - 팔루트를 잇는 능선을 걸었고, 람만으로 내려와 림빅에서 버스로 돌아왔다고 했다. 날짜를 따져보니 겨우 하루 이틀 차이로 내가 걷던 길을 걸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산닥푸 - 팔루트 트레킹을 몇 년 전에도 했으며, 다르질링에 온 목적이 애당초 추억 여행이었기 때문에 시킴에도 가서 칸첸중가 트레킹을 할 계획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네팔 쪽에서 칸첸중가 트레킹을 시도해 볼 지도 모른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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