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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견딜 수 있는

천원석 칼럼니스트
  • 입력 2020.07.14 13:59
  • 수정 2020.07.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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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 곽효환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작가가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는 순간 그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다. 그 순간부터 작가는 고독하다. 나아가 작가의 죽음이 시작된다. 오로지 독자의 몫일 뿐이다. 많은 이가 위의 시를 자신들의 블로그나 인스타그램등에 옮겨 적고 그에 대한 감상을 적는다. 주로 연인과의 이별 후의 감정으로 읽거나 삶의 고단함에 대한 위로로 읽는다.

하지만 위의 시는 시인이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날 개표 방송을 보다가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실해진 이후 시인에게 일어난 경험을 바탕으로 지은 시이다. 즉, 그날은 애인과의 이별이 있던 날도 아니었고, 시험에 떨어진 날도 아니었으며, 사업이 부도난 날도 아니었다. 시인이 위의 시를 출판사에 건네자 출판사는 경칠일 있느냐며 본래 제목이었던 '12월 19일'(이런 비슷한 제목이라고 기억한다)을 '그날'이라는 제목으로 바꾼 것이다. 직접 시인에게 들은 이야기니 사실일게다.

그런데 아무렴 어떠랴, 서두에 말했듯이 이제 저 시는 독자의 몫인 것을. 그리고 시에 적힌 말마따나 우리는 또 견디어야만 하는 것을. 노무현을 보내고, 노회찬을 보내고 또 오늘 박원순을 보낸다.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의 인생에 똥바가지를 퍼붇는다. 하지만 망자는 말이 없다.

아직도 우리는 얼마를 더 견뎌야만 하는 것일까?

다시 읊조린다.
그리고 간청한다.
아직 더 견디어야만 하오니
그러니 부디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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