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 음악통신 275] Critique: 김진승 바이올린 독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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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75] Critique: 김진승 바이올린 독주회
  • 성용원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klingsol@hanmail.net
  • 승인 2020.07.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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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나 포레에서의 정형을 뚫고 나온 통섭형 바이올리니스트 김진승
차이코프스키라는 원전을 재창출한 작곡가 유주환

정해진 형식과 틀안에 예술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고전주의 음악 이상은 삶의 양식과 같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이미 짜여 있는 세상의 얼개 안에서 살아간다. 선택권이 없다. 나에 맞는 옷이 아니라 이미 지어 놓은 옷에 나를 맞추라고 하니 옷맵시도 안 살고 불편하다. 정해진 나이에 학교에 가야 하고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하고 직장을 얻어야지 그 틀을 거부하고 다르게 사려고 하면 세상은 색안경을 끼고 보고 너무 많이 간섭을 한다. 그 정도 부대낌은 각오해야 하는데 멘탈은 약하기 때문에 깨진다. 베토벤 역시 그 틀에 자신을 가둬놓았다면 그저 고전주의의 한 작곡가로 작곡가 유주환이 언급한 '백과사전'이나 음악역사책에 한 줄 정도로만 언급되었을 터.

혼신을 다하는 열정, 바이올리니스트 김진승

장맛비가 시원하게 하루 종일 내린 7월 13일 월요일 일신홀에서 열린 김진승 바이올린 독주회의 첫 곡은 베토벤 소나타 8번이었다. 7,8,9번 3개가 하나로 묶여 있는 op.30의 끝 곡이자 몇 해 전부터 이어온 김진승의 베토벤 소나타가 오늘로서 전곡을 찍은 셈이다. 곡 전체를 관통하는 싱그러움이 일신홀의 음향과 맞물려 생기를 발산했다. 소나타란 양식을 띄고 있긴 하지만 전체를 흐르는 무곡 풍의 즐거움은 중간에 낀 느린 미뉴에트의 우아함까지 더해져 발랄하기 이를 데 없다. 김진승이 만들어내는 8번 소나타는 땀 흘리고 궁정에서 춤을 추는 베토벤과 귀족들이 아니라 홀로 사색에 잠겨 싱그러운 빈 근교의 숲을 산책하면서 만나는 '숲속의 동물무도회'다. 3악장 지그에서의 무궁동 피아노와 김진승의 바이올린이 맞물리며 물고 물리는 '빙글빙글 돌아라' 파티가 펼쳐진다.

잘 알려진 원래의 작품을 다른 악기로 바꾸는 대중성과 실용성, 원래의 작품을 다른 스타일로 변환시키는 리스트의 Phraphrase 또는 Transcripton, 유명 주제를 따와 자유롭게 선율을 변형시키는 변주곡, 그리고 요샛말로 하면 커버, 다들 단어만 다르고 조금씩 차이만 있을 뿐 기존의 작품을 가지고 와서 2차 창작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주한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호두까기 모음곡>의 첫 번째 물음은 왜 하필이며 너무나 잘 알려진 차이코프스키의 발레모음곡 <호두까기 인형>이었나였다. 오케스트라 대신 오늘의 연주를 위해서 바이올린과 피아노, 2개의 악기로 그대로 바꾼 거라면 이미 시중엔 여러 버전이 유통되고 있으며 사라사테같이 자신의 기교를 당시 대중들이 잘 아는 멜로디로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면(카르멘 판타지) 유주환은 비르투오소가 아니다. 더군다나 모두 당대의 작품인 반면 차이코프스키는 유주환에게 얼추 고조할아버지 뻘이다. 초연을 듣고 나니 답이 나왔다. '그냥 유주환이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꿔보고 싶어서!' 앞에 앉은 작곡가에게 확인했다. 필자의 감상평이 맞는지. 맞다고 한다. 필자도 예전에 베토벤 월광소나타라는 역시 히트곡을 10중주 편성으로 다르게 바꿔보았다. 같은 맥락이다. 5개 중 2번 <행진곡>이 개인적으론 제일 마음에 들었다. 5곡 중 가장 차이코프스키에서 많이 벗어나고 유주환에 가까워서.

무대인사하는 작곡가 유주환

포레의 소나타는 감미로움의 극치다. 그게 바로 포레인데 감정을 여과 없이 활화산 같이 배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반도의 백성들에게는 밋밋할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 한번 빵하고 터지고 절절 흐르는 울고 짜고의 신파 같은 요소가 다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진승의 에너지를 쏟아부은 혼신의 연주로 그런 프랑스적인 에스프리에 열정을 더한다. 포레라는 일종의 틀을 깨는 셈이다. 베토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속박을 거부하고 영겁의 사슬을 끊어버린 거인이다. 8번 소나타에서도 이미 꿈틀대는 '반항'의 몸짓이 틀을 깨고 나온 아브락삭스가 베토벤이었다. 김진승은 베토벤에 이어 포레에서도 사유하고 성장하고 진화한다. 그저 일상의 포레가 아닌 자신만의 포레로서 응집된 에너지를 여과 없이 발산한다. 피아니스트 박미정과의 안정적인 호흡이 인상적이다. 둘 다 더 뻗어나갈 수 있었을 터 포레였기 때문에 자제와 호흡 고르기로 가다듬는다. 마치 포레의 가곡에서 언어만 떼어버린 '무언가'같은 2악장의 세련된 감미로움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피아니스트 박미정과 바이올리니스트 김진승

앙코르는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이다. 반도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그들의 감성에 딱 어울리는 악풍이다. 베토벤이나 포레에서의 정형을 뚫고 나온 통섭형 바이올리니스트 김진승 거기에 차이코프스키라는 원전을 재창출한 작곡가 유주환까지 하나의 프레임이 아닌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미덕을 다시 숙고해 보게 만드는 시간이 오늘의 김진승 독주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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