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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24] 흉상胸像

김홍성
  • 입력 2020.07.1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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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얼굴의 대머리 사내였다. 반석에 붙인 동판에는 그가 인도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이며, 살아생전 직업 세 가지는 시인, 철학자, 조리사라고 소개 되어 있었다.

ⓒ김홍성

 

애틋한 새소리에 눈을 떴다. 동이 트고 있었다. 눈 뜨면 바로 일어나 걷던 수개월 동안의 버릇이 나를 산책으로 이끌었다. 아직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와 광장에 이르렀을 때 태권도 도복을 입고 맨발로 달리는 소대 규모의 군인들을 보았다.

 

트레킹 전에는 못 본 풍경이었다. 사원으로 오르는 계단 주변에 자리 잡고 줄지어 앉아 구걸하는 걸인들도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오직 운무만 보면서 운무 속을 산책했기 때문에 미처 못 봤을 것이다.

 

사원이 있는 야산을 우회하는 도로를 걷다가 긴 의자와 철봉이 있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동쪽, 그러니까 부탄 쪽의 히말라야 능선 위로 빨간 아침 해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흥이 그전 같지 않았다. 이미 수차례 장엄한 일출을 경험했으므로 일출은 그저 일상의 시작을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또 하루를 만났다는 것에는 뭔지는 모르지만 깊은 의미가 있는 듯 했다.

 

분홍빛으로 물든 칸첸중가 정상에서는 불꽃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태풍처럼 강한 기류에 휘말려 흩어지는 만년설 가루라는 얘기는 앞에서 했던가?

 

줄넘기를 하고, 맨손체조를 하고, 평행봉이나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태권도 앞차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도 아리안계의 주민들이지 싶었다. 염주나 기도 바퀴를 굴리면서 오로지 옴마니밧메훔 염불을 하며 걷는 사람들은 그들의 복색으로 보아 티베트에서 이주해 온 난민들이지 싶었다. 더러는 부유해 보였고, 더러는 가난해 보였다. 철봉 너머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골짜기 건너편은 시킴 땅이었다. 걸어가도 반나절이면 당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변을 보려고 산책로에서 산비탈 숲속으로 이어진 오솔길로 잠깐 내려섰더니 어디서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아주 좋은 냄새였다.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또한 듣기 좋았다. 조금 더 내려가니 학교 같은 건물이 내려다 보였는데 강당처럼 보이는 큰 건물의 지붕에 '티베탄 난민 자활센터'라는 큼직한 글씨가 영문으로 적혀 있었다.

 

자활센터의 널찍한 마당에서는 붉고 푸르고 희고 노란 룽따들이 아침 바람에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 아래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은 필시 난민들이지 싶었다. 자활을 위해 공예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난민들이 벌써부터 일을 시작한 것일까?

 

나니 디디가 저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어서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이름도 모르면서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짐을 정리하여 세탁물을 맡기고, 시킴 입경 허가 신청서를 내고, 12시 체크아웃 시간 이전에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그럴 시간이 없었다.

 

발걸음을 돌려 비탈을 오르자니 내려올 때 맡았던 꽃향기가 다시 느껴졌다. 잠시 서서 흠향하다가 도로로 올라섰다. 광장 쪽으로 이어지는 모퉁이를 돌자마자 왼쪽으로 어떤 사람의 흉상이 서 있었다. 둥근 얼굴의 대머리 사내였다.

흉상을 세운 반석에 붙인 동판에는 그가 인도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이며, 살아생전 직업 세 가지는 시인, 철학자, 조리사라고 소개 되어 있었다. 셀파 호텔의 승려 출신 조리사 카지 라마가 뇌리를 스쳤다. 그가 만든 모모를 한 개라도 더 먹고 오지 못한 게 아쉬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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