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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22 ] 림빅 장마당의 셀파 호텔

김홍성
  • 입력 2020.07.1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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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 라마는 셀파 호텔의 주방장이지만 오래 전 한 때는 승려였다. 또한 오랜 동안 대처에 나가 떠돌이 생활도 해 봤다. 손님이라고는 나 한 명뿐이었는데 저녁 내내 그는 부엌에서 도마를 두드렸다. 만두에 넣을 고기를 다지는 소리였다.

ⓒ김홍성

 

셀파 호텔의 주방 메뉴는 훌륭했다. 모모(만두)와 툭바(국물국수)와 차오민(볶은국수) 중에서 어느 하나를 가장 맛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모두 다 먹자마자 힘이 날 정도로 훌륭했다. 다르질링의 어떤 식당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별미였다.

 

도착해서 한숨 자고 난 후에 먹었던 툭바는 낭아(검은 물소)의 살덩어리를 뼈 채로 삶은 육수에 거친 밀가루 국수를 말고 수육 몇 점과 고소를 얹었으며 우리의 산초 비슷한 향신료를 살짝 뿌렸다.

 

밤에 먹었던 모모는 낭아의 생고기를 고소와 함께 다져서 속을 채웠다. 다음날 아침에 먹은 차오민은 유채 기름과 토마토소스로 볶은 국수에 닭고기 볶음을 몇 조각 얹어서 냈다. 내가 먹어 보지 못한 메뉴, 즉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육류를 사용하지 않은 모모와 툭바와 차오민도 분명히 맛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주방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은 디키 도마의 작은 오빠인 카지 라마의 솜씨였다. 카지 라마는 셀파 호텔의 주방장이지만 오래 전 한 때는 승려였다. 또한 오랜 동안 대처에 나가 떠돌이 생활도 해 봤다. 손님이라고는 나 한 명뿐이었는데 저녁 내내 그는 부엌에서 도마를 두드렸다. 만두에 넣을 고기를 다지는 소리였다. 디키 도마도 오빠 일을 돕느라고 분주했다. 솥에서 건진 국수에 유채 기름을 발라서 채반에 널어 두는 일도 도왔다. 모두 다음 날 손님을 맞기 위한 준비였다. 

 

다음 날, 새벽운무가 걷히자 셀파 호텔의 마당은 꽤나 널찍한 장터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명한 날에는 시킴 땅의 설산 칸첸중가가 멋지게 펼쳐지는 언덕일 법 했다. 그러나 그 날의 칸첸중가는 구름 속에 숨어 있다가 잠깐씩 설면 일부만 보여주다 말았다.

 

장마당에는 어느새 많은 산촌 사람들이 내려왔고, 떠돌이 장꾼들이 난전을 펼쳐 놓았다. 셀파 호텔에도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티베트 전통 복장인 바쿠 차림으로 들어온 산골 여인들은 친척이거나 오래된 단골인 것 같았다. 카지 라마가 그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잠시 나왔을 때 나는 셀파 호텔에서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일단 다르질링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시킴 땅으로 들어가 보자. 칸첸중가에 좀 더 가까이 가 보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버스 종점으로 향했다. 부쩍 늘어난 행인들 속에서 옷가게 그릇가게 쌀가게 대장간을 지나고, 값싼 화장품과 장신구와 털실 등을 파는 가게를 지나고, 시계나 라디오 그리고 손전등을 수선하는 집을 지났다. 선술집과 여인숙과 약방과 학교를 지났다. 버스 종점이 나왔다.

 

일본 청년들이 트럭으로 떠날 때만해도 한산했던 버스 종점은 많은 트럭과 지프와 사람들이 흙먼지 속에서 붐비고 있었다. 다시 실리콜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떨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올라서는 마지막 한 발에 의해서 갑자기 다른 세계에 속했다 싶으니 울컥 목이 메었다.

 

스무 살에 장가 든 이후로는 사방 백리 밖으로 나가보지 않았다는 람만의 림부가 존경스러운 은자로 떠올랐다. 운무 속에서 향연이 뭉클뭉클 솟아나는 향로를 흔들며 염불 하던 펨 도마의 아버지도 떠올랐다. 그가 읊조리던 옴마니밧메훔이 왜 긴 한숨처럼 들렸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러자 보리수가 떠오르고, 바쿠 차림의 나니 디디가 거기 앉아 뜨개질을 하는 환영이 스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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