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의 늪] 대련 고려박물관 1 옥갑(玉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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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의 늪] 대련 고려박물관 1 옥갑(玉匣)
  • 이원환 전문 기자
    이원환 전문 기자 lwh15554@daum.net
  • 승인 2020.07.1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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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1천만, 지하철이 있는 중국 대련시 한가운데에 한국인이 만든 박물관이 있다?

- 황제가 죽고 난 다음 입는 수의를 옥돌을 갈아서 만든다. 옥갑 (玉匣)이다.옥돌조각 사방 모서리에 바늘 구멍을 뚫는다. 그 시절에 정교한 드릴도 없었는데, 단단하기 이를데 없는 옥돌에 바늘 구멍을 어떻게 뚫었을까? 옥돌 네 모서리 바늘구멍에 비단실을 엮어 옥으로 된 수의를 만든 것이다.

인구 1천만, 지하철이 있는 중국 대련시 한가운데에 한국인이 만든 박물관이 있다. 고려박물관에는 한민족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2,000점 이상 있다.

 

72세 (1948년생) 황희면 관장이 평생 모은 유물이다. 출토지를 알 수 없고 전전유통되는 것을 산 것도 있고, 북한에서 발굴된 것으로 알고 산 것도 있다.  

 

이 중 황희면 관장이 가장 아끼는 것 중의 하나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180센티  엄청난 크기이다. 어디서 발굴되어 이 대련 고려박물관까지 오게 되었을까?

 

처음 박물관을 개관했을 때 중국인이 황관장에게 “한반도 어디서 발굴된 것을 여기까지 끌고 왔는가? “라고 묻길래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불상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미루고 옥갑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중국역사책에 의문의 기록이 있다.

 

한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제국이다.

 

그런 한나라가 부여의 왕이 죽을 때 입을 옥으로 만든 수의, 옥갑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고 한다.

 

부여는 고구려 주몽이 도망쳐 나온 한민족 나라이다. 항상 한나라 등에 쫓겨 산 줄 알고 있는데 한나라가 부여왕이 입을 옥갑을 미리 보물로 보관하고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정사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제75에 나오며, 중국 정사 삼국지 권30 위서 30 오환선비동이전에 나온다. 이를 발견하여 드러낸 도불원인 이진우 박사에게 감사드린다.

 

만들어진 배경에 놀라지만 옥갑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더욱 놀랄수 밖에 없다. 스마트폰 크기 반틈만한 옥돌을 갈아서 아주 얇게 만든다. 놀랍게도 옥돌조각 사방 모서리에 바늘 구멍을 뚫는다. 그 시절에 정교한 드릴도 없었는데, 단단하기 이를데 없는 옥돌에 바늘 구멍을 어떻게 뚫었을까? 옥돌 네 모서리에 비단실을 엮어 옥으로 된 수의를 만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옥돌조각 하나하나에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영어 알파벳과 흡사하다.  이 문자를 해석할 수 있다면 분명 고대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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