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솔베이지의 노래 [ 13 ] 하산

김홍성
  • 입력 2020.07.05 04: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꼭대기는 아직 겨울인데 마을은 봄이었다. 새빨간 랄리구라스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노란 나비 한 쌍이 파밭 위를 날고 있었다.

 

다시 날이 밝았다. 변소에 가야 되고, 이를 닦아야 하고, 밥 먹고 길을 떠나야 하는 아침이 온 것이었다. 그런 일상이 권태롭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리창 밖에는 햇살과 운무가 뒤섞이고 있었다. 운무 속에서 나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도 했으며, 운무를 뚫고 날아오르는 새가 보이기도 했다동쪽 하늘의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났다

 

8시쯤에야 산장을 나서서 외벽에 세워둔 대나무 지팡이 하나를 챙겨 들었다. 하산 길은 파란 시누대 숲 사이로 나 있었다. 걷기 좋았다. 시누대 숲에서 목에 달린 쇠 방울을 흔들며 풀을 뜯는 검은 야크를 만나기도 했다. 고산에 사는 소의 일종인 야크는 덩치만 컸지 겁이 많았다. 눈만 마주쳐도 뎅그렁 뎅그렁 황급한 방울 소리를 남기고 숲 속으로 달아났다.

 

오솔길 옆 샘가에서 물을 마셨고, 먼 산과 흰 구름이 보이는 산굽이에서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한참씩 쉬기도 했다. 골짜기 건너편 산중턱에 마을이 보인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꽤 넓은 경작지 가운데 룽따가 펄럭이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밭에는 군데군데 파릇한 농작물과 김매는 농부들도 보였다. 지도를 보니 사만덴(SAMANDEN) 마을이 분명했다.

 

산꼭대기는 아직 겨울인데 마을은 봄이었다. 새빨간 랄리구라스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노란 나비 한 쌍이 파밭 위를 날고 있었다. 갈림길이 나오고 골케이의 텍(TEK) 호텔까지 2백 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왼쪽 길로 가면 정부가 운영하는 진짜 호텔이 있을 법하여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서양 청년이 숲속에서 나타났다. 그는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열흘 전부터 텍 호텔에 묵고 있는 존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웃는 모습이 하도 천진해서 몇 살이냐고 물어보니까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했다.

 

점심도 먹을 겸 존이 묵는 텍 호텔로 갔다. 텍 호텔은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 양지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들 둘, 며느리 둘, 딸 셋, 손자 한명을 둔 노부부가 주인이었다.

 

손님방은 모두 네 개. 창문으로 개울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 두 개는 이미 손님이 들었다. 하나는 존, 다른 하나는 어제 다르질링에 장보러 나간 독일 청년이 장기 체류 중이라고 했다. 빈 방 둘은 각각 나무 침대가 두개씩 있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호텔은 개울 하류 쪽으로 멀찍이 보였다. 멋을 한껏 냈지만 자연과의 조화를 잃어서 생경해 보이는 스위스 풍의 건물로 영국 팀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텍 호텔의 점심 메뉴는 달밧떨커리, 우리나라의 백반 정식에 해당하는 (녹두) (쌀밥) 사부지(채소)였다. 커리를 넣어 노랗게 졸인 감자 반찬이 맛있었다. 마야(18), 찬드라(16), 꼬몰라(12) 세 자매가 창문에 매달려 밥 먹는 나를 쳐다봤다. 작은 며느리 락시미(20)도 물동이를 이고 지나가다 드려다 보았다. <계속>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