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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11 ] 산닥푸 전망대

김홍성
  • 입력 2020.07.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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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는 칸첸중가뿐 아니라 마칼루, 로체, 에베레스트 등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14 개의 이름 있는 8천 미터 급 봉우리 중에서 1위(에베레스트:8848 미터), 3위(칸첸중가:8598미터), 4위(로체:8516미터), 5위(마칼루:8463미터)의 봉우리 넷을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아침 6. 바람은 여전히 사납게 불었다. 체왕 롯지 앞의 룽따는 곧 찢어질듯이 펄럭였다. 바람 때문에 고원은 더욱 황량하게 느껴졌다. 언덕 위에서 히말라야가 펼쳐져 있을법한 북쪽을 바라봤지만 히말라야 쪽에는 두꺼운 구름이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구름 위로 해가 솟고 금빛 햇살이 마을 골목을 비출 때 쯤 멀리서 뎅그렁 뎅그렁 쇠방울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소들이 허연 입김을 뿜으며 올라왔다. 이 소들은 고산의 소 야크와 저지대의 물소의 교배종인 인데 등에 땔감을 잔뜩 짊어졌다.

 

체왕 호텔 부엌에서는 벌써 아침 준비하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침식사는 짜파티와 버터차로 간단히 때우기로 했다. 큰언니는 버터차를 만들고, 막내 체왕이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밀어 작은 누나에게 건네주면 그녀는 그것을 화톳불에 구웠다.

 

9. 돼지를 기르는 음산한 마을 초우리촉을 지나 10시 쯤 비케이반장 도착. 응달에는 눈이 두텁게 남아 있었다. 네팔 땅과 경계를 이루는 셀파 마을이었다. 지붕의 용머리에 야크의 해골을 달아 놓았다. 여기서부터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산닥푸까지는 이제 4킬로미터 남았다. 힘든 길이지만 산모퉁이를 하나씩 돌 때마다 칸첸중가를 비롯한 히말라야의 전경이 펼쳐졌다. 구름 걷힌 푸른 하늘 아래 장엄하게 펼쳐진 설산 봉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씩 앉아서 쉬었다.

 

12시 쯤 산닥푸(3,636m) 도착. 산닥푸는 운무에 젖어 춥고 음산했다. 응달에는 눈과 얼음이 서걱거렸다. 막 도착한 합승 지프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예상치 못한 추위로 입술이 퍼렇게 질려 있었다. 고산증세에 시달리는지 다들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서둘러 숙소를 찾아야 했다. 벽난로와 거실이 있는 쓸 만한 호텔은 모두 서양 여행자들로 만원이었다. 탐탁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언덕 위의 산장에 여장을 풀었다. 산장에는 투박한 나무 침대가 여덟 개 있었는데 그 중 네 개는 합승 지프를 타고 온 일본 청년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옹색한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장작불을 쬐며 밥을 먹는 동안 날이 어두워졌다. 바람은 미친 듯 사나워져서 건물마다 양철 지붕들이 금방 날아갈듯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썩거렸다. 뜨겁게 데운 아락(일종의 소주)을 머그컵으로 한 잔 마셨지만 추위는 가시지 않고 호흡이 곤란해지는 고산증세만 심해졌다. 일본 청년들은 겉옷을 입은 채 침낭 속에 들어가 저마다 용을 쓰며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이 침대 저 침대에서 이를 악물고 내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이튿날 새벽 동틀 무렵, 침낭을 몸에 둘둘 말고 펭귄처럼 걸어서 호텔 북쪽 전망대에 올랐다. 별들이 날카롭게 빛나는 보랏빛 하늘 아래 검푸른 히말라야 연봉들이 치달리고 있었고 구름은 솜이불처럼 골짜기에 가라앉아 있었다.

 

먼저 온 서양 여행자들도 유리창이 있는 전망대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샛별이 희미해지면서 동쪽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새빨간 해가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칸첸중가의 봉우리 끝이 분홍색으로 물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신음 같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추워서 이를 딱딱 마주치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한 서양인 노부부는 , 판타스틱! 아일라뷰하면서 입을 맞췄다. 그때 칸첸중가 봉우리 끝에서는 분홍색 구름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영화에서 본 인디언들의 봉화 연기 같지만 실은 설산 정상의 만년설을 쓸어 올리는 무시무시한 바람이었다.

 

전망대에서는 칸첸중가뿐 아니라 마칼루, 로체, 에베레스트 등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14 개의 이름 있는 8천 미터 급 봉우리 중에서 1(에베레스트:8848 미터), 3(칸첸중가:8598미터), 4(로체:8516미터), 5(마칼루:8463미터)의 봉우리 넷을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었다. 만일 운무가 끼었더라면 우리는 칸첸중가조차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 청년들은 다음 휴가 때 반드시 파키스탄으로 가서 세계 2위봉인 K2(8611미터)를 마저 보겠다며 들뜬 소리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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