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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8 ] 동포

김홍성
  • 입력 2020.06.2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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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후, 유스호스텔의 임시 종업원 락바 라마는 다르질링을 떠났다. 그는 시킴의 수도 갱톡으로 가서 칸첸중가 트레킹 팀의 쿡으로 합류한다고 했다. 그가 손을 흔들고 사라진 언덕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머리부터 쑥쑥 차례로 올라와 내 앞으로 걸어오는 그들은 몹시 지쳐 보이는 배낭여행자들이었다. 


"택시 탈 걸 그랬나 봐."
"슬슬 나올 때가 됐어."
"지도 다시 볼게."
그들 중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손에 든 지도를 펼쳐보며 말했다.
"유스호스텔 ...... 이쯤 어디에 있을 텐데...." 


그들 넷은 물어보지 않아도 동포였다. 오랜만에 듣는 모국어가 반가웠지만 그들이 저만큼 지나갈 때까지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 뇌리에는 동포들과 어울려 폭음하며 방만한 나날을 보냈던 캘커타 마리아 호텔에서의 나날이 예리하게 스쳐가고 있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있었던지, 내 발걸음은 어느새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곧 유스호스텔을 찾아들어갔다. 락바 라마의 자리를 차지했을 낯선 종업원이 그들을 인솔하여 이 방 저 방 구경시켜 주는가 싶더니, 여성 두 명에게 아래층 방을 주고 남성 두 명만 데리고 합숙방으로 올라갔다.

 

결국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나보다 열 살 쯤 덜 먹은 서른 살 전후의 미혼들이었다. 여자 둘은 캘커타에서, 남자 둘은 네팔에서 오다가 실리구리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일행이 되었다고 했다

 

동포들과 합숙이 시작되면서 양철배와 일기장은 서랍장 속에 감췄다. 될 수 있으면 함께 몰려다니는 일을 삼가려고 애썼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아래층에 방을 잡은 두 여성이 자주 올라왔으며, 새벽 산책길에 잠시 동행이 되기도 했고, 알리멘트에서 만나면 합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이면 벽난로 앞에서 벌어지는 술자리를 피하기도 어색했다. 

 

합숙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새벽 산책을 나갔다가 아침 먹으러 들른 알리멘트에서 타파로부터 방금 옥탑 방이 비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집에서 내 마음에 드는 유일한 방이었기에 바로 예약했다. 그리고 합유스호스텔의 합숙방으로 돌아와 배낭을 꾸렸다.


며칠 합숙하는 동안 정이 든 동포들은 조금 섭섭해했다.
"같이 트레킹을 하자고 청할 참이었는데 말입니다."
"다섯이 함께 가면 저만 짝이 없잖아요. 하하하. "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했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알리멘트의 그 방은 사방 벽이 송판이어서 소나무 냄새가 났다. 문 앞에 서쪽으로 툭 터진 마당 같은 공간이 있어서 그만하면 조망도 후련한 편이었다. 특히  산닥푸와 팔루트 두 봉우리를 잇는 긴 능선이 잘 보였다. 네팔과 인도의 국경을 이루는 그 능선에서는 칸첸중가는 물론 마칼루, 로체, 에베레스트 등의 설산 파노라마를 후련하게 볼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르질링의 운무는 날마다 세력을 잃어갔다. 일조량이 많아지면서 양지 쪽 식물들은 다투어 꽃을 피웠다. 알리멘트에 묵는 서양 여행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트레킹을 떠났다. 더러는 락바가 간 씨킴으로, 더러는 산닥푸(3,636 미터)나 팔루트(3,600 미터) 쪽으로 떠난다고 했다.

 

알리멘트로 방을 옮긴 뒤 사흘이나 지났을까? 아침 산책길에 유스호스텔의 동포들을 만났다. 그들도 다르질링을 떠나는 중이었다. 그들은 마니 반장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고 했다. 마니 반장은 산닥푸 팔루트 능선 트레킹의 기점이라고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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