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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통신 266] 피아니스트 고은미, 윤이상 탄생 100주년 헌정음반 'Unus Mundus' 출시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6.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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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활동중인 피아니스트 고은미,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피아노 독주앨범집 발매

4년 전인 2016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있다.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삶과 음악을 추모하기 위해 Call for Scores(작품 공모)를 내걸었다. 윤이상을 기리는 프로젝트라는 단서 외에는 자유로운 창작을 위해 일체의 다른 키워드를 제시하지 않고 요구하지도 알았다. 그래서 선발된 작곡가들, 피아니스트가 예전부터 작업을 같이 했던 동료 작곡가들, 자신만의 개성을 듬뿍 담은 다양한 스타일의 열 작품들이 나왔다. 그리고 2017년 9월 17일 Tributes to Isang Yun란 타이틀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초연하였다. 9월 17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바로 윤이상의 생일이다. 더군다나 2017년 9월 17일은 백 번째 생일이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자신이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고향 통영에서 남해바다를 보고 영면한 윤이상 선생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견해 했을 테다. 한 작곡가의 태어난 날에 맞춰 그 사람의 작품과 함께 존경의 뜻을 담은 오직 윤이상을 위한 맞춤형 스핀 오프가 후배 음악인들에 의해 탄생되었으니 작곡가에게 바치는 생일 선물로는 최고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직접 연주한 단 한 사람이 바로 피아니스트 고은미다. 이때의 결과물이 Innova Recordings를 통해 오늘 6월 26일 음반으로 출시되었다. 제목도 윤이상이 모체가 되어 10개의 다양한 자식들이 출산되었지만 결국은 한 뿌리라는 '하나의 세계', <Unus Mundus>다.

윤이상 탄생 100주년 헌정앨범, 피아니스트 고은미의 Unus Mundus
윤이상 탄생 100주년 헌정앨범, 피아니스트 고은미의 Unus Mundus

윤이상 헌정음악회를 위해 고은미가 위촉한 작곡가는 잉그리드 슈튤쥴 (Ingrid Stolzel), 존 리버라토레(John Liberatore), 에두아르도 코스타 로단(Eduardo Costa Roldan), 이승희, 알레한드로 로만 (Alejandro Roman), 지로라모 데라코 (Girolamo Deraco), 크리스토스 사마라스 (Christos Samaras), 파비오 마시모 카포그로소 (Fabio Massimo Capogrosso) 등 이름만 들어도 피부색과 성별, 국적이 다른 다국적 호모 사피엔스들이다. 윤이상과 한핏줄인 한국인 말고도 그리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콜롬비아 지구촌 전 세계 인종의 화합잔치다. 이들의 곡을 한국에서 초연 후 미국, 콜롬비아, 런던 등에서 꾸준히 연주하면서 2018-19 양 해에 걸쳐 University of South Florida에서 녹음하였다.

고은미의 2017년 9월 피아노 독주회 포스터

첫 곡으로 수록된 독일 출신 작곡가 잉그리드 스튤젤 (Ingrid Stölzel) 의 작품 제목 Unus Mundus에서 음반 제목을 차용하였다. 라틴어인 Unus Mundus는 One World라는 뜻이다. 윤이상의 피아노 독주곡 <Interludium A>(간주곡 A)가 영감의 원천이다.독일어의 Haupt는 중심, 중앙을 의미한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 이방인이 맞닿게 되는 Haupt가 들어간 단어는 Hauptbahnhof, 즉 한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중앙역이다. 윤이상 음악, 더 나아가 도교 사상의 중심이 되는 Hauptton은 서양 음계의 근음과는 다른 하나의 중심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의 우주, 세계가 자리 잡고 그 주변에서 파생하고 화합해간다. 이는 한국의 정악을 들어보면 쉬 알 수 있다. 하나의 음이 묵직하고 천천히 나아가고 위치하면서 주변음들, 꾸밈음들이 금은세공처럼 장거리의 선율을 형성해가면서 파생한다. 일본의 여성 피아니스트 다카하시 아키(高橋秋)는 그의 부군 아키야마(秋山邦晴)와 더불어 윤이상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며 윤이상의 곡을 많이 연주한 사람이다. 간주곡에 A가 붙은 까닭은 피아니스트의 이름 ‘아키’의 A에서 땄기 때문이며 곡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중간 부분이 간주곡 중에서도 또 간주 부분이어서, 이 부분은 가(A) 음이 주가 되어 A의 주위에서 A 음을 싸고 화합하며 또 이로부터 발산해내가나 명상적인 A음은 변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3부 형식의 곡에 1부가 A음 클러스터로 화음의 장벽과 폭발을 형성한다. 중간은 고요다. 그리고 3부에서는 A음의 날개가 펼쳐진다. 정중동의 묘미와 신비한 사상이 피아니스트 고은미의 섬세하면서도 직관적인 연주로 동양의 깊은 심연와 숭고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번 출시된 음반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접해야 되는 자궁과 같은 존재가 윤이상의 피아노 독주곡 <Interludium A>다.

윤이상의 대표적인 작곡 기법인 '하우프톤'(메인톤)으로 작곡된 윤이상의 Interludium A에서처음으로 5/4 라는 박이 제시되고 마디가 보이기 시작하는 부분(그 전 섹션은 마디와 박자가 없음)에서 Stölzel 은 기점으로 곡을 전개해 나간다. 독일 작곡가의 영감이 윤이상의 도교 철학과 일맥상통하면서 부분이 전체가 되고 전체가 부분이 되는 어둠과 빛이 서로 한데 얽힌다. "분단되고 다른 모든 것은 하나의 세계에 속한다"라는 잉그리드 스튤젤의 모국 철학자인 칼 융의 말로 이해된다. 융이 라틴어에서 가져온 '하나의 세계'라는 개념이 윤이상 그리고 도교의 철학과 완벽하게 들어맞진 않겠지만 애초부터 삶의 방식과 뿌리가 다른 타국인에게 동양의 정신을 그대로 유입시킨다는 건 불가능이다. 차라리 인류 모두가 모든 억압과 굴레,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를 떨쳐 버리고 '하나의 세상'에서 '한 민족'으로 서로 융화되어 살아간다면 그게 궁극적인 윤이상이 염원했던 세상이자 예술과 철학의 도달지가 아닐까?

독창적인 해석과 유려한 음색, 독창적이고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 받는 피아니스트 고은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를 졸업한 후 이스트만 음대 Eastman School of Music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음악 앙상블 Strings and Hammers (피아노, 바이올린, 더블 베이스)의 공동 음악감독 및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9 년에 시작한 국제 현대 음악제 Dot The Line 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현재 University of South Florida 피아노과 부교수 및 USF New Music Consortium 자문(advisor)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제 오늘 출시된 음반 오매불망 손에 쥘 날만 기다려진다. 기대하시라! 고은미가 선곡하고 연주하는 이번 음반 수록곡에 대한 평을 조만간에 올릴테니. 그리고 기대된다. 고은미가 코로나19를 뚫고 비대면 뉴노멀 시대에 이역만리 한국에서 앞으로 펼칠 활약과 태평양을 넘어 한국의 음악가들과 활발한 콜라보레이션 그리고 한국의 팬들과 교류할 방법과 시기를. 그게 바로 진정한 Unus Mundus, One World의 구축이자 시작이다.

재미 피아니스트 고은미
재미 피아니스트 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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