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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통신 265] 국회 지정 사업 오페라 '허황후' 스토리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6.24 09:11
  • 수정 2020.06.2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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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율이란 말이 있다. 모든 현상에는 이면과 원인이 있다. 대개 여러 개의 원인들이 경합한다. 그것들의 화학적 결합은 전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볍씨를 뿌렸다고 꼭 쌀이 되지 않는 게 세상사다. 비만약이 개발되면 갑자기 비만이 질병으로 분류된다.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비만에 대해 경고하고 불안을 조성한다. 한 회사에서 팩시밀리라는 기계를 개발하였더니 정부에서 공문을 인편 대신 팩스로만 받겠다고 정한다. 갑자기 국회에서 허황후라는 우리 역사상의 생소한 인물을 조명하고 극화화해서 알린다고 문체부를 통해 지원사업에 포함시킨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에 인도를 방문했다. 인도에 세우는 허황후기념공원 착공식을 계기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공식 초청했다. 허황옥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후는 삼국유사 등에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나온다. 김수로왕의 후손이 지금의 김해 김씨이다. 문 대통령의 고향에서 인지도가 높은 이야기이자 한국과 인도의 교류 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이야기거리다.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을 추진하면서 '허황후'는 하나의 문화 키워드가 되었다. 속된 말로 이번 정부가 여기에 꽂힌 거다.

김수로왕과 그의 부인 인도출신 허황후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오페라 제작

국민일보가 지난 22일 입수한 20대 국회 활동 기간인 2017∼2020년 문예위 연간 사업 계획 가운데 국회 지정 사업 내역에 따르면 2017년 독도사랑축제 등 4개 사업에 9억5000만원, 2018년 서울K팝 공연 등 5개 사업에 10억5000만원, 2019년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등 6개 사업에 22억8000만원, 2020년 허황후스토리 창작 오페라제작 등 6개 사업에 20억6300만원 등 4년간 총 63억4300만원이 국회 지정 사업에 선정됐다. 2019년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요청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들어 있어 이를 빼면 실질적 국회 지정 사업은 4년간 총 53억5300만원으로 집계된다. 이런 국회 지정 사업은 일반적으로 예산을 증액해 편성한다. 그런데 2019년엔 공모 사업 예산을 삭감한 채 이들 사업에 정부 돈을 몰아준 것으로 조사됐다. 자생할 수 없는 순수예술분야를 공정한 심사를 통해 지원하라고 문화예술지원기금을 재정해 놓았더니 마술쇼, 아트페어, 트로트, K팝, 아트페어 등에 기금을 주었다. 사업과 취지, 타당성과 성격이 맞지 않다. 일종의 낙하산 사업이자 국회의원들이 예산 심의권을 무기로 표밭 관리를 위한 지역구 민원이나 선심성 행사 등에 문예위 예산을 끌어들여 자기 사람들에게 준 셈이다. 총선이 있었던 2020년 국회 지정 사업이 평년의 배 수준으로 증가한 것은 이런 의구심을 뒷받침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회 지정 사업 현황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회 지정 사업 현황

국회 지정 사업은 통상의 공모 사업보다 지원 금액도 커서 최소 1억 원에서 4억~5억 원씩 뭉칫돈이 배정됐다. 부실한 내용과 운영, 저질과 문어발식 확대 및 목적성의 결여, 사업의 원 취지와는 왠지 엇나가는 방향, 사업이 아닌 개인의 출세 및 성공 지향 등으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계속 지원을 받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사업들이 대거 들어가 있다. 지원해야 되는 사업은 많고 뭘 지원하냐는 건 어디까지나 돈 주는 사람 마음이다. 예술가들은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적기 때문에 다 자기만 힘들고 자기 분야에서만 아우성을 치지 남들의 일엔 하등 관심 없고 협조도 않는다. 그런 와중에 몇몇이 정부, 정권의 기호에 영합하고 사회성이 좋아 실세에 끈이 닿는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동서고금을 막론한 권력의 속성이요 자립할 수 없는 예술의 한계이다. 불멸의 화가들도 앞다투어 메디치 가문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음악가들은 수 세기 동안 교회와 권력을 위한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어떤 정권보다 공정해야 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겸손히 민의를 받들어야 하는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이번 정부가 지난 정권 하에서의 구태를 답습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말이다. 공정과 정의라는 단어를 차라리 입에 올리지 말았으면 억울하고 분하지도 않았을텐데... 불평등을 받아들이며 빽 없고 힘없는 걸 한탄하며 어떻게라도 권문세가에 기웃거려 한자리 차지하려고 할 테니... 그건 어차피 본인 팔자고 몫이니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포스터

문예지원기금 신청을 위해선 아이디어 짜고 아티스트 섭외하고, 자료 찾고 모여서 미팅하고 구성원들끼리 역할 분담해서 눈알이 빠져라고 보고 또 보면서 서류 작성하고 제출 후 목욕재계하면서 겸허히 결과를 기다리는 게 대부분이다. 게다가 지원금 1억원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밤새워 준비해봤자 다 소용없다. 공모 서류 내지 않아도, 한 번도 아니고 몇 차례에 걸쳐 수억 원의 나랏돈이 일정 단체에 지원된다. 지난 정권과의 블랙리스트와 상반되지만 성격은 같은 '국회발 화이트리스트'다.

김해문화재단(대표이사 윤정국)이 "김해의 문화도시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오페라 '허황후'를 제작하고 2021년 2월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초연 후엔 지역 축제 및 2023년 김해 전축체전 등에 대표 공연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하니 어차피 필자 같은 작곡가 입장에선 나쁘지 않다. 김숙영 작가가 대본을 쓰고 작곡가는 6월 29일까지 공모로 선발한다. 선정된 작곡가는 상금 2500만원도 받는다. 희망고문이지만 응시할 자격이라도 있다. 아예 기회자체를 박탈시키고 위에서 찍어누르는 것보단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했다. 어차피 예술성, 작품성으로 선정되는 것도 아니요 이번 정부의 문화정책 표방에 심사위원이 누가 들어갈지 뻔하다. 말만 오페라이지 오페라의 '오'자고 모르고 써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위에서 하라니까 오페라라는 탈을 쓰고 하는 거뿐이다. 기준과 줏대 없이 높으신 분의 한 마디에 멀쩡한 노래가 금지곡이 돼서 부르지도 못하고 높으신 분이 바뀌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 데서나 불러도 아무 문제 없고 차이나 프렌들리를 외치려니 중국과 뭔가 공통점을 찾기 위해 온 동네방네 이 잡듯이 뒤져 발견하고 세우면 인민은 그걸 무턱대고 받아들이고 외우고 훌륭한 걸로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출세와 성공, 사업을 위해선 대갓집 문턱이 닿도록 뻔질나게 들락날락해야하고 술 마시고 같이 어울리면서 성은을 입어 사업을 따고 계약을 체결한다. 팔은 안으로 굽고 아는 사람 챙겨주는 건 인지상정이다.

독도사랑축제를 주관하는 라메르 에 릴(독도사랑한다면서 왜 단체 이름은 어렵게 외국어? 무슨 뜻인지 아는가? 바다와 섬이란 프랑스어다)

문화정책이란 게 근시안적인 일희일비에 좌지우지되고 않고 백년대계를 세워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 미래를 멀리 넓게 바라보는 시야와 복합성을 기르게 하려면 그게 무엇이든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노력, 수고를 기울이게 만들고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 창조의 가능성을 가시적으로 제시해야 진정한 예술이요 국가 문화정책의 올바른 방향이라 할 수 있다.인기와 시류에 영합하고 트렌트를 쫓는 건 우민화 정책의 일환에 불과하다. 위정자와 권세가가 한복에 꽂히면 거기에 앞다퉈 돈을 가져다가 붓고, 한식에 꽂히면 한식의 세계화를 부르짖는 그런 일관성과 지속성, 철학 없는 즉흥적인 한탕주의 정책이 집행된다면 백날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도 후대에 남는 게 하나 없는 몇 사람을 위한 돈잔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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