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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7 ] 햇빛

김홍성
  • 입력 2020.06.2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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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매우 빠르게 솟고 있었다. 검은 산등성 뒤에서 그 온전한 모습을 다 나타내는 순간에는 퉁겨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얼마나 많은 새들이 일제히 울어댔는지 모른다.

ⓒ김홍성 

 

죽어 가는 붕어가 더러운 웅덩이의 수면 위로 떠오르듯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고 있을 때 새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것처럼 새삼스러운 새소리였다. 애틋하고 귀여웠다. 잘 들어보니 한 마리가 우는 게 아니고 두 마리가 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은 나무 가지에 앉아서 혹은 이리저리 하늘을 날아오르며 운다는 것도 알았다.

 

종달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푸른 보리밭을 짓누른 끝없이 푸른 하늘이 떠올랐고 눈이 저절로 떠졌다. 폐유와 해조류가 뒤덮여 빛을 차단한 컴컴한 수면, 즉 합숙방 천장이 거기 있었다.

 

깨진 유리창과 그 창턱으로 옮겨둔 양철배가 보였다. 그것들은 희미한 역광을 업고 윤곽만 드러내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불현듯 침낭의 지퍼를 내리고 일어나 깨진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유리창 구멍에서 흘러드는 바람에 운무가 섞여 있지 않았다.

 

창문을 열었다. 창밖은 그냥 하늘이었다. 운무가 사라진 하늘이었다. 크레용 냄새가 날 듯 짙은 남색 하늘에 숱한 별들이 박혀 있었다. 그 중에는 샛별도 있었다. 새벽 430. 가각街角의 방해가 없는 히말라야의 일출을 보고 싶은 욕심에 서둘러 숙소를 빠져 나왔다.

 

광장에 이르렀을 때만 해도 내 머리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별들은 순환도로에 접어들자 점점 희미해졌다. 순환도로의 중간에 도착했을 때는 샛별만 남아 글썽이더니 이윽고 그것마저 희미해지면서 공제선이 선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그 빛은 칸첸중가의 흰 이마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윽고 동쪽 하늘 전체가 붉게 물들더니 검은 톱날 같은 능선 뒤에서 태양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칸첸중가는 매순간 미묘하게 변하는 빛 속에서 하얀 봉우리들과 능선과 설면을 드러냈다. 거기서 숨쉬기마저 거북한 감동이 냉랭한 공기를 타고 물결쳐 왔다.

 

태양은 매우 빠르게 솟고 있었다. 검은 산등성 뒤에서 그 온전한 모습을 다 나타내는 순간에는 퉁겨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얼마나 많은 새들이 일제히 울어댔는지 모른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새들이 흩어져 날 때쯤에야 나는 이슬에 젖은 철제 난간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산비탈에 순환도로를 내기 위해 조성한 축대를 따라 길게 설치한 난간에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사람들이 드문드문 경건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오전 내내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나는 이제 막 거기 도착한 돈 많은 휴가 여행자처럼 활기와 호기심에 차 있었다. 광장과 순환도로와 산비탈 마을과 시장도 활기에 차 있었다. 햇살과 푸른 하늘은 그렇게도 좋은 것이었다.

 

순환 도로와 광장에는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환한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나 이미 밋밋해져 버린 칸첸중가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 누더기를 벗어 이를 잡는 거지들, 주인 없는 개들도 덩달아 껑충거리고 있었다.

 

산비탈 골목 여자들은 빨래와 이불과 옷가지들을 내다 너느라고 분주했다. 양지바른 담벼락에 앉아 소꿉 노는 아이들이 입은 낡고 후줄근한 스웨터는 햇살 속에서 진달래꽃무더기처럼 소담스러웠다. 시장도 활기에 차 있었다. 운무 속에서는 눅눅한 양잿물 조각처럼 보였던 좌판 상인의 암염(巖鹽)이 햇살 아래서 자수정처럼 빛났다.

 

죽은 물고기처럼 햇살 위에 떠 있는 자들도 없지 않았다. 천지에 가득한 활기를 더욱 여실히 보여주려는 듯 악취를 풍기며 길바닥에 쓰러져 자는 부랑자들이 그들이었다. 개를 끌어안고 자는 자도 있었고, 시큼한 토사물에 퉁퉁 부은 뺨을 대고 자는 주정뱅이도 있었다.

 

골목 밑에서는 운무가 스멀스멀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운무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놀이를 하자는 건지 돌아 볼 때마다 가까이 따라 붙더니 티브이 타워 언덕에 올랐을 때는 어느새 발목을 휘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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