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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1 ] 운무 雲霧

김홍성
  • 입력 2020.06.09 06:03
  • 수정 2020.07.0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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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질링의 버스터미널은 운무 속에서 파시의 포구처럼 나타났다. 버스는 어선인 듯 거기 둔한 머리를 대고 기항했다. 운무 속 어디선가 생선 비린내가 났다.

다르질링

산비탈 도로는 운무에 잠겨 있었다. 버스가 산굽이를 하나씩 돌 때마다 운무는 점점 짙어져서 눈앞의 길마저 희미하게 보였다. 운전사 오른쪽 맨 앞자리에 앉은 나는 깜박 깜빡 잠들다 깨곤 했다. 한 번 씩 잠에서 깰 때마다 운무는 더욱 짙어졌다. 버스의 노란 전조등이 휘젓는 푸른 운무 속에서 우중충한 집들이 나타났다. 칙칙한 색깔의 두꺼운 옷을 입은 야윈 사람들의 모습이 스쳤다. 그러다가는 다시 운무만 보였다.

눈을 감으면, 수 십 년 전 다도해 뱃길이 출렁출렁 다가오기도 했다.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보였던 하얀 바다, 저 멀리 고래 떼처럼 둥실둥실 떠오르다 사라지는 검은 섬들, 그리고 누군가의 환영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기도 했다. 뭉근한 무게가 느껴져서 흠칫 놀라 눈을 떴으나 옆에 아무도 없었다. 다시 눈을 감았을 때, 누군가의 얼굴이 표정을 바꾸며 잇달아 떠올랐다. 슬픈, 우는, 웃는, 성난, 한숨 쉬는, 그리고 열락 때문에 기괴하게 비틀어진 얼굴이 스쳤다.

다르질링의 버스터미널은 운무 속에서 파시의 포구처럼 나타났다. 버스는 어선인 듯 거기 둔한 머리를 대고 기항했다. 운무 속 어디선가 생선 비린내가 났다. 다르질링의 고도는 해발 2134미터. 해발 118미터의 실리구리 평원에서 거의 2000미터를 올라와서 생선 비린내를 맡다니……. 믿어지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버스정류장 사방은 시장이고 시장에는 큰 어물전도 있었다. 실리구리 동쪽 바다 벵갈 만의 온갖 생선이 그 산꼭대기의 어물전까지 올라와 허연 배를 뒤집고 누워 있었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시가지 맨 꼭대기에 값싼 여인숙들이 몰려 있었다. 시장을 벗어나 산비탈 골목을 꾸준히 걸어 올라갔다. 차가운 안개로 인해 더욱 숨이 차고 배낭은 바위처럼 무거웠지만 천천히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떼었다.

유스호스텔

골목을 벗어나자 큰 길이 나왔다. 큰길 건너에는 네 방향으로 흩어진 작은 골목들이 보였다. 어느 골목이 꼭대기로 오르는 골목인지 알 수 없었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꼭대기를 향해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자동차 도로를 택해 걸었다. 경사가 급한 골목을 숨차게 올라올 때 흘린 땀이 식자 추위가 엄습했다. 속이 메슥거렸다. 빈속이었고, 일종의 고소증이었을지도 모른다.

유스호스텔은 다르질링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능선 위의 티브이 타워(텔레비전 중계 탑)에서 병영으로 가는 길가 왼쪽에 있었다. 건물만 휑뎅그렁할 정도로 컸지 내부는 캘커타의 호텔 마리아보다 더 나을 게 없었다. 나는 3층의 커다란 방에 안내되었다. 여러 여행자들이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함께 묵는 합숙방이었지만 오랫동안 비어 있었음이 역력했다.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은 모서리가 깨져 있어서 운무가 스멀스멀 기어들어 오고 있었다. 시커먼 입을 벌린 벽난로는 썰렁했으며 벽난로 좌우로 세 개씩 배치한 여섯 개의 침대는 매트리스도 시트도 하나같이 더러웠다. 베개라고 있는 것은 모조리 스펀지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하긴 하루 1불짜리 숙소가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나를 그 방에 안내한 늙은 종업원이 자신 있게 말했듯이 창 밖 전망은 기가 막히게 좋을 것 같았다.

벽난로 서쪽 창가에 붙어 있는 침대를 사용하기로 했다. 운무가 걷히면 창 밖 풍경을 조망하기 좋겠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배낭을 풀어서 맨 위에 있는 방한복을 꺼낼 때 바닥으로 툭 떨어진 것은 캘커타에서 산 양철배였다. 양철배는 호텔 마리아에서처럼 침대 옆 창턱에 올려놓았다. 칫솔과 치약과 비누와 영양제도 꺼내어 양철배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묵직한 일기장도 꺼내어 양철배 밑에 받쳐 놓았다. 수건을 꺼내어 베개 위에 포개 놓고, 샌들도 꺼내어 침대 발치에 가지런히 놓았다. 배낭은 침대 밑에 달린 서랍에 집어넣고 번호를 돌려 여는 자물쇠를 채웠다.

침대 주변은 어느새 한 살림 그득해졌다. 북쪽으로 난 깨진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차고 축축한 운무가 거슬리긴 했지만 그건 운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리 앞가슴 털로 만든 풍덩한 침낭이 있는 한 추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숙소 건물 건너편에 있는 부속 식당으로 가서 차오민(볶은 국수)과 치킨 수프(닭고기 국), 치킨 모모(닭고기를 다져 넣은 만두)를 주문했다. 음식들은 차례차례 뜸을 들이며 나왔는데 맛도 없었으며 캘커타보다 오히려 비쌌다.

시장기를 때우고 3층 방으로 돌아오는 계단에서 좀 전의 그 늙은 종업원을 만났다. 그는 땔나무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20 킬로그램에 3불 정도인데 아침과 저녁에 두 번 땔 수 있는 분량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않은가. 매일 세끼 밥 먹고 자는데 10불, 그리고 땔감으로 3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배에 찬 내 전대에는 그때 약 4천 달러나 있었다. 그거면 1년도 버틸 수 있었다.

그날 밤, 그러니까 다질링에 도착한 첫날 밤, 합숙방의 깨진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운무는 형광등 불빛으로 인해 푸르게 보였다. 덩그마니 비어있는 아래쪽 침대들을 차례차례 딛고 다가온 그 푸른 운무는 침낭을 덮어쓰고 미라처럼 누워있는 내 발치를 살금살금 핥고 있었다. 나는 콧물을 훌쩍였고, 명치 부분이 쓰리고 아팠다. 그리고 온 몸이 불덩어리인 듯 화끈거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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