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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술개론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5.29 21:46
  • 수정 2020.05.2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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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경주 살인미수 사건이다'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사건 현장을 담은 블랙박스 영상 사진이 공개되었다. 경북 경주시 동촌동 초등학교 앞 스쿨존(어린이 보호구역)에서 SUV 차량이 역주행 후 자전거를 타고 가는 9살 아이를 덮치는 사고다.지난 25일 오후 1시 40분께 동천동 동천 초등학교 인근에서 SUV 차량이 초등학생 A 군이 타고 가던 자전거를 뒤쫓아 추돌해 발생했다. 운전자의 딸(5)을 때리고 달아나자 딸의 엄마인 운전자가 '때리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라고 자신의 차를 몰고 9살 남자아이를 쫓아가 박아버렸다. 고의성 여부와 사건의 발단, 잘잘못과 시시비비를 떠나 이 사건에 대해 코멘트를 하기 조심스러워 며칠간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CCTV에 찍힌 당일 현장 사진, 사진 제공: 연합뉴스
CCTV에 찍힌 당일 현장 사진, 사진 제공: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치지 않은 자에 대한 셀프 응징' 또는 '자기 자식만 최고고 가족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돌격포 여전사 엄마', 이렇게 두 개의 가정을 세울 수 있다. 살다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억울하고 분노를 억제해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는가. 어린이 놀이터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어 점잖게 훈수를 하였더니 대든다. 그리고 자신들은 미성년자라서 아청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도리어 이죽대고 성질을 돋운다. 그러니 외면하게 된다. 불필요한 송사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다. 비겁자가 되고 오직 나 자신만의 안전만을 추구하게 된다.

학생이 선생님을 때리고 대드는 건 사랑와 자애로써 응당 감싸야 되고 선생님이 학생을 사랑의 매로 체벌하면 뉴스에 난다. 예전에는 나이 든 사람을 나이 들었으나 무조건 공경해야 했다. 그런데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나이 먹고 못 배우고 가난한 게 무슨 자랑이고 특권이라도 되듯이 너무 교양 없이 행동한다. 반말은 기본이요 임산부 보호석에 앉아 있는 임산부를 발로 차면서 나오라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류하면 대번에 '싹수없는 자식"이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 "넌 에비에미도 없느냐'라고 막무가내에 패드립을 일삼는다. 그런 사람도 공경해야 하는가? 놀이터나 놀이공원 등지에서 자기 자식만 위하는 막가파 부모들의 행동을 자주 볼 수 있다. 양보와 협동은 가르치지 않고 새치기는 기본이요 기본 소양과 교양이 없는 부모와 가족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울며불며 떼쓰는 아이가 부모의 눈에나 귀엽고 사랑스럽지 다른 사람에게는 민폐에 불과하다. 자기 자식의 일만 관계되면 이성을 잃는다. 그게 부모이자 엄마의 마음인가?

언론에서 자세한 상황은 파악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기사만 베껴 쓰고 독자들도 이성적인 판단과 냉철한 사고 대신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것처럼 떡밥을 덮석물면서 냄비근성을 발휘하고 마녀사냥을 일삼는다. 1학년이 3학년한테 반말하고 까불다가 한 대 맞으니 울면서 6학년 형을 데리고 왔다. 그래서 3학년이 겁에 질려 도망가니 그걸 쫓아가 잡은 다음에 집요하게 몰아세운다. 세상에 구타유발자는 넘치고 넘친다. 한순간에 평범한 시민이 범죄자가 되고 신상이 털린다. 분노조절장애? 이 세상은 분노를 참고 살기엔 너무 억울한 일이 많고 가혹하며 살얼음판이다.

이번 사건을 보고 최인호의 단편소설 <처세술개론>이 연상된다. 30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요약하면 하와이에 이민가서 부자가 되서 돌아온 노 할머니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노할머니의 비유를 맞춰야 하는 사촌간의 암투다. 할머니 앞에서 갖은 아양과 애교를 떨면서 할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여자아이가 할머니가 잠든 사이에 경쟁자인 사촌오빠를 자극하여 일부러 구타 당한다. 그리고 그 난리 통에 깨어난 할머니에게 울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난장판이 된 광경을 보고 앞뒤 분간도 안하고 노할머니는 오빠를 쫓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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