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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탐방기: Is the Cat out of the Bag?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5.26 09:09
  • 수정 2020.05.2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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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로 9길-3에 위치한 스페이스.55에서 5월 30일까지 열리는 Lena의 기획전시회

감염의 공포에서 경제 위기, 분노와 사악한 발언들, 외국인 혐오와 사회 전체를 파괴하는 포퓰리즘의 독버섯까지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탐구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국경과 세대를 넘어 천년만년의 시간을 넘어 지구 공동체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은 이제 멀어져 간 걸까? 인간의 역사는 질병과 싸우는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갑자기 유행했던 베스트셀러 '총, 균 쇠'가 떠오른다.) 바이러스는 피부색, 국적, 성별, 나이, 재산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한다. 하나를 정복했다 싶으면 변종이 생기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다양한 질병이 생기고 소멸됨을 반복할 뿐이다. 코로나19가 처음 언론에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은, 스페인 독감(Spanish Flu) 이었다. 스페인에서 발생한 게 아니다. 스페인 언론에서 심도 있게 다뤄진 미국에서 발생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이름이다. 당시 인구의 3-6%가 사망한 호흡기 질환으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약 5000만 명이 사망하였다. 지금 미국과 중국에서 서로 네 탓하고 발뺌하고 압박과 로비로 인해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도 못하게 만들고 어려운 코로나19라는 병명을 부여받은 것과는 상반된다. 당시 스페인 독감은 상황은 현재와 판박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의 전차를 비롯한 대중교통의 탑승이 거부되었고 집회를 하지 말라고 해도 예배를 강행한 교회가 많았다. 전시회의 제목인 <Is the cat out of the bag?>을 직역하면 ''고양이가 가방 밖으로 나갔어?'' 정도 될까? 고양이하곤 하등 상관없는 철학적이고 현실적인 시대 고민적인 문제를 다룬 청년작가 레나(Lena)의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은평구 증산로 평범한 주택가 골목 빌라와 빌라 사이 안쪽에 위치한 갤러리 스페이스.55를 방문하였다.

Lena의 프로젝트 'Is the cat out of the bag?'이 5월 30일 토요일까지 열리는 증산로 9길-3의 스페이스.55 갤러리

인터넷상에서 중국인에 대한 혐오 댓글을 수집하고 배우들을 섭외하여 그 댓글의 발화 과정을 기록한 <카세트 이펙트> (Cassette Effect)와 함께 아래에 위치한 비디오 영상에서 시종일관 데모꾼의 강한 억양와 어조의 혐오 댓글들이 음성으로 스피커를 타고 나와 호전적이었다. 개인이 쏟아내는 말들, 익명의 아님말고 식의 막가파 발언과 분노, 누군가를 타깃으로 정해 그 사람에게 피해를 전가시키고 탈탈 털리는 몰락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사이코패스적인 광기와 카타르시스가 절절 흐른다. 마침 상주하고 있던 작가 Lena에게 볼륨을 줄여달라거나 꺼주라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로 마치 아귀다툼 한가운데의 광화문 광장에 와 있는 거 같았다. 소리 없이 시각으로만 봤다면 효과는 훨씬 반감되었을 터. 소리가 작품의 일부이기 때문에 청각적인 요소를 배제한다면 작품의 의미를 훼손하는 거다. 그만큼 강했다. 더군다나 3평도 안될 좁은 공간 <카세트 이펙트> 바로 옆에는 가면을 쓰고 자신을 감춘 또 한 명의 인간이 <방문객>(Visitor)라는 이름으로 걸려서 날 조롱하고 있다. 시각, 청각, 퍼포먼스로 구현되는 번뇌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양이가 아니라 내가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압박이었다.

카세트 이펙트(Cassette Effect) by Lena, 2020

이런 인간의 정제되지 않은 직접적인 언사보다 며칠 전에 들었던 작곡가 신지수의 음악을 대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사실의 주체이자 직접적인 세상의 풍경이기 때문에 검열 없이 내뱉은 말들은 너무 직접적이고 뇌리에 박히며 심장을 후벼판다. 언어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서 은유와 간접적인 화법으로 지난주 들은 신지수 작곡의 <제11차원>이나 <피아노연습곡>에서의 그 집요함과 끈덕짐을 여기에 덧붙인다면?

혼란(Catastrophe) By Lena, 2020

자신이 주인이라도 되는 듯 한쪽 벽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혼란>(Catastrophe)은 혼란스럽기보단 혼돈과 파멸 같다. 위에는 영어요, 아래는 독일어의 문구가 현 상황을 반영한다. 바이러스를 퍼트렸다는 이유만으로 조롱하거나 신체적 폭행을 가하는 중국인에 대한 묻지마 혐오범죄, 전염병으로 죽기 전에 통제와 봉쇄로 인한 굶어죽겠다는 아우성과 극도로 변질된 개인주의, 빼곡히 적힌 혐오 댓글들은 보고만 있어서 역겹다. 귀와 눈을 정화해야겠다. 그들이 토해내는 말과 글들이 바이러스 그 자체다. 그래서 익명성이라는 무기 하에 실체가 없이 사람들을 잠식시키고 파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다 보니 전시 제목인 'the cat out of back'이 '비밀이 누설되다'라는 영어식 관용구라는 걸 알았다. 즉 감추고 싶은 비밀, 밖으로 토설되면 안 되는 비밀들이 마구 퍼진다는 건 그 자체가 바이러스라는 걸 재확인시켜준다. 혼란과 물음이 뒤섞여 현실과 언어, 그 안에 이름과 존재를 숨기며 퍼져가는 바이러스, 한국외대 철학과 출신의 작가 Lena의 고민이자 현시대에 던지는 질문이다.

5월 30일까지 열리는 Lena 전시회

5월 30일 토요일까지 정오부터 19시까지 열리는 Lena의 프로젝트 이인전 <Is the cat out of the Bag?>. 2인전이라 왼편에는 김예지 작가의 공룡 그림도 걸려있다. 한 지붕 두 가족 전시회라 이질감이 강하다. 누가 되었든 자신만의 주제와 오브제로 독립된 개인전을 하루빨리 개최하는 게 좋겠다. 전혀 다른 스타일과 주제, 지향점을 가진 2인 작곡 발표회, 공동작품 발표회는 선호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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