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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51] Critique: 신지수 작곡발표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5.23 08:54
  • 수정 2020.05.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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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무한대의 가능성, 우주의 열림

첫 곡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입자와 입자 사이>의 마지막 울림이 사라지자 왠지 짧고 조금 더 듣고 싶다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상황에 따른 시간 흐름의 감지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긴 하나 필자에게 8분여의 연주시간이 마치 4분 같이 금방 흘러가는 거 같았다. 허나 그건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쓰나미를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한 속단이자 기우, 섣부른 김칫국에 불과했다.

바이올린을 솔로를 위한 <입자와 입자사이> 리허설 중 연주자와 곡에 대해 논하는 작곡가 신지수(우), 마치 한바탕 격전을 마친 권투선수마냥 풀려서 흩날리는 활의 줄이 어떤 곡인지 상상하게 만든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입자와 입자 사이는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지만 육안으로는 판별이 불과하다. 아직 미발명된 현미경으로나 관찰하면 볼 수 있는 미립자들의 빈 공간은 입자 사이의 요소가 돌고 돌아 쪼개고 쪼갠다면 결국엔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소멸의 단계, 즉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에 도달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거기서 새 생명이 잉태되고 새로운 싹이 틀수 있는 터전이라는 거... 우주가 태동하는 신비다. 바이올린 솔로 주자도 갈수록 귀와 정신을 집중하며 짧은 순간에 증폭시켜야 하는 에너지를 연주자에게나 청자에게나 요구된다. 워낙 음악이 조여오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떨어트릴 뻔했다. 만약 그랬다면 그 파장은 어마어마했을 터..... 입자 사이에 불순물이 끼어 파멸의 순간이 초래될뻔한 걸 간신히 붙잡고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설마 그 숨소리도 누가 들을까 봐, 곡에 삽입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자신의 작곡발표회에서 청중들에게 인사하는 작곡가 신지수
자신의 작곡발표회에서 청중들에게 인사하는 작곡가 신지수

두 번째 곡인 <37건반을 위한 6개의 연습곡>은 외국어 제목이 조금 이상하다. 6 Etuedes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독일어의 Etuede의 복수형은 Etueden인다. Etudes라고 영어로 적는다면 우움라우트가 빠져야 하는데 그다음엔 for 37 Keys라고 영문 번역이 되어있다. 단순한 기보 실수인지 아님 이것도 오묘한 뜻이 있는 건지 작곡가의 설명이 듣고 싶다. 이번 연습곡의 모델은 리게티의 피아노 연습곡집이라 했는데 1권도, 2권도 6곡으로 되어있는 것처럼 신지수의 연습곡도 6개가 한 세트다. (리게티는 Etudes pour piano로 프랑스어로 명시했다.) 신지수 연배의 작곡가들 즉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 태생의 한국 작곡가들에게 리게티의 피아노 연습곡은 악기의 연주, 음향, 음악적 콘셉트, 표현 가능성 등 지경을 넓혀주고 영향을 끼친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피아노 곡인 거 같다. 그전 세대의 슈톡하우젠의 피아노조곡(Klavierstuecke)처럼... 쇼팽의 연습곡이 조성에 입각해 24개의 짧은 단편들로 되어 있다면 리게티는 18개, 아직 미완인 신지수는 6개로 두 사람다 쇼팽보단 적은 숫자지만 길이 면에선 쇼팽을 능가한다. 원래 토이 피아노 중 음역이 가장 넓은 37건반 토이 피아노를 위해 작곡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랜드 피아노로 연주되었고 토이 피아노에서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원천이 토이 피아노일 뿐인지 건반악기를 위한 곡으로 인지되었다. 그중에서 4번 '단조의 속13화음'은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나 토카타 같은 건반악기를 위한 곡을 연상시키는 무궁동(Perpetum mobile)이다. 첫 곡인 <입자와 입자 사이>에서 더 듣고 싶다는 여운을 몽땅 불식시켜버린 신지수와 청자의 줄다리기였다. 그래! 끝장을 보자. 누가 먼저 지치나 보자는 식의 악절 패턴의 반복이었다. 미니멀 뮤직으로서 그 안에 빨려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신지수의 음악에서 공통점으로 흐르는 물리, 즉 세상이 만들어진 이치와 구조, 우주의 창조의 비밀을 캐려는 탐구 같다. 리게티식 유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4번과 6번에서의 의도된 협화음, 4번의 씨름은 어이없게도 Ab 장화음으로 끝났고 단조에서의 속13화음으로 마무리되었다.

공연의 끝곡인 피아노4중주를 마치고 커튼콜, 작곡가 신지수는 무대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공연의 끝곡인 피아노4중주를 마치고 커튼콜, 작곡가 신지수는 무대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곡인 <소금쟁이는 더 이상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리와 압박의 음향체를 의식의 한 군데에 투영하고 상사하면서 피아노와 3개의 현악기로 구성한 작품이었다. 고작 4개의 작품을 듣고 한 작곡가의 작곡 경향을 논하는 건 성급하지만 90분간의 그녀의 작곡 발표회에서는 빙글빙글 도는 순환의 회전목마였다. 입자가 돌고 돌아 그것들이 모아지고 커지면서 너와 나를 잇는 하나의 우주의 탄생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3번째 곡 <제11차원>은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 평행우주로 향한다. 그렇게 되면 끈덕진 Ground Motive의 지속으로 시공간을 넘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공간 차원으로 향하게 되리... 그러면 그 안에서 영생을 얻게 될까? 무한대의 공간에서? 다음엔 신지수가 작곡한 조성음악도 들어봐야겠다. 흰 가운을 입고 연구실에 있는 심리학자 같은 물리학 연구(Study)로는 천재작곡가를 위협하는 천재적 음악 재능을 가늠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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