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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47] 야구선수 황윤호와 라흐마니노프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5.18 08:50
  • 수정 2020.05.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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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타이거즈 골수팬인 필자는 프로야구가 개막하고 웬만하면 기아 경기 관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야구 외적인, 선수들의 응원가도 자연스레 귀가 기울여지지 않을 수 없는데 올해 기아 내야수 황윤호의 입당송을 듣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2017 시즌부터 야구선수들의 등장곡, 응원가의 편곡에 의한 저작권 요구로 선수들의 응원가가 대규모로 교체되고 서서히 창작곡으로 대체되면서 기존의 알려진 대중가요나 선율에 '어떤 어떤 팀의 누구누구'라는 유치찬란하고 단순한 가사로만 삽입된 응원가들이 사라지고 저작권이 소멸된 클래식 음악을 쓰거나 아님 아예 자체 제작하는 경우까지 생겼다.(어찌 보면 이게 지극히 정상)

기아 타이거즈 내야수 황윤호의 호쾌한 타격폼, 사진 갈무리: 5월 17일 SPOTV2 방송 중계

황윤호의 등장송을 들어보자.

다음은 Eric Carmen의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라는 노래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중에서도 이와 유사한 멜로디가 나오는데 캐치한 사람이 있는가? 이 선율의 오리지널 출처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의 2주제다. 앞의 2개와 전혀 다른 느낌의 자연에 대한 숭고한 경배가 담긴 듯한 유장한 서사가 도도히 흐른다. (참을성이 없는 사람? 아니, 처음부터 클라리넷의 애잔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선율 역시 멜랑코니의 정수다. 하지만 황윤호 등장곡의 멜로디는 3분 44초 경에 나오니 비교 감상 바란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재미가 없다. 피아니스트 강소연이 작년 6월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선보인 피아노 독주회에서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 자신의 최애 작곡가라는 걸 부각하는 에릭 카르멘의 제목을 인용한 <Always fall in love with Rachmaninoff>로 발표했다. 리처드 도킨스의 자신의 대표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창안안 <밈>(meme)이라 할 수 있다. 장엄한 선율이 청아한 한 방울의 눈물 같은 수정구슬로 다가온다. 강소연의 고혹적인 자태가 더한다. 역동적인 야구선수의 응원가가 이렇게 청순하고 애달픈 호소로까지 끊임없이 다른 영역으로 확대하고 변형되면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퍼뜨린다. 그건 뿌리, 즉 근원을 이루는 원 선율의 힘일 듯, 라흐마니노프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야구장에서 웃고 울면서 같이 부르는 선율 한 도막, 목청껏 소리 지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응원하고 공 하나 차이로 환성과 실망의 순간이 교차하는 순간을 라흐마니노프는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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