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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219) - 남녀란 천하의 일인 바

서석훈
  • 입력 2014.09.0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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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남녀란 천하의 일인 바



왕년의 영화배우 장화자와 영화감독 김은 블루로얄 호텔 뒷길을 따라 산보 중인 바 달이 우리를 따라 온다느니 별이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느니 낮 간지러운 소리를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남녀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첫 만남을 가졌을 때는 온갖 간지러운 소리도 불후의 명시로 들리며 몸짓 하나 손짓 하나에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상대의 눈빛에서 영원을 읽는 감각이 비상하게 발달한다는 것을. 이 두 사람도 그러한 경지에 들어갔으니 지금 이 시점에서 누가 뜯어말린다고 누가 흉본다고 그 둘을 떼어놓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둘은 지금 세계적인 러브스토리에서나 나올 수 있는 남녀와 같이 부러울 게 없었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기대를 각자의 가슴에 품은 채 나란히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장화자의 머리는 좀더 복잡하였다. 감독이 복권 탄 돈을 주머니에 잔뜩 갖고 있는 사실을 알 리 없는 그녀는 이 남자가 나 하나 잘 먹이고 좋은데 구경시켜주고 용돈 몇 푼 쥐어주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겠구나 정도로는 생각하고 있었고, 관계가 좀 더 발전해서 이 남자와 신체적 접촉을 가졌을 시는 어느 정도 추가 보상이 이루어질지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완전히 금전적으로만 이 남자를 대하지는 않았지만 금전 없는 만남은 공허하며 또한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간의 경험으로 인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좀 더 만남을 오래 가져가고 또 어떤 교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자가 자신에게 충분히 돈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남자의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볼 때 그러한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으므로 마음을 좀 열어 이 남자와 좋은 감정을 가져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감독은 감독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계산이 굴러가고 있었는데 칼자루를 쥔 자는 자신이요 그 칼자루를 여하히 이용하는 가에 따라 그녀와의 만남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전 강남은 걷기 마땅한 데가 없는 줄로만 생각했어요."
장화자가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말하자면 강남은 빌딩과 고급유흥가와 벤처회사들로만 이루어진 줄 알았지 사람이 이렇게 호젓이 걸을 수 있다는 곳이라는 건 잘 몰랐다는 말인데 김 감독도 오늘 새로이 그 사실을 깨닫는 듯했다. 둘이 걸으면 강남 아니라 강물 위이든 못 걷겠는가. 실로 남녀란 천하의 관계요, 아무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여로와 같다는 생각을 감독은 하였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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