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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통신 244] 문체부가 추진하는 전국 청소년 대상 트로트 가요제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5.13 08:01
  • 수정 2020.05.2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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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전 국민의 문화 참여율을 높이는 ‘축제의 장’으로 ‘전국 청소년 대상 트로트 가요제’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사업의 첫 번째 목표는 “우리나라 트로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트로트에 대한 문화적 관심 고취”이며 심사 기준의 첫 번째 항목은 “트로트 저변 확대, 트로트의 우수성 홍보 등”이라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 대한민국 청소년 트로트 가요제 지원 사업 공고문

영어로 "빠르게 걷는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라는 뜻의 트로트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빠른 템포의 래그타임이나 재즈 템포의 4/4/박자 사교댄스 스텝 또는 연주 리듬을 일컫는 폭스트로르(Fox-trot)에서 연원한 단어다. 한국에 트로트풍(風)의 음악이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말부터이다. 이보다 앞서 일본에서는 일본 고유의 민속음악에 서구의 폭스 트로트를 접목한 엔카[演歌]가 유행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신민요풍의 가요가 유행하였는데, 1928년부터 레코드 제작이 본격화하면서 많은 일본 가요가 한국말로 번역되고, 한국 가요도 일본에서 녹음을 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이 편곡을 담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결과 일본 가요와 한국 가요의 선율이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1930년대 말부터는 조선어 말살정책으로 인해 한국 가요는 갈수록 일본 가요에 동화되었다. 이로 인해 광복될 때까지 한국에서는 엔카풍의 대중가요가 유행하였다. 광복 후 왜색의 잔재를 없애고 주체성 있는 건전가요의 제작과 보급, 팝송과 재즈 기법 등이 도입되면서 엔카풍의 가요도 새로운 이름을 얻었는데, 일명 '뽕짝'으로 부르는 트롯(트로트)이 그것이다.확실한 것은 트로트는 우리 전통이 아닌 왜색이라는 거다. 개인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의향은 없으나 민족성이라는 정의와 정체성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오도되고 있는지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 된다고 여긴다.

작년에 울산, 부산, 경남에서 행해진 대한민국 청소년 트로트 가요제의 한 장면

다수를 위한 획일적인 교육과 포퓰리즘식의 접근이 우려가 된다. 재미와 대중성이 가장 우선시 되는 사회 풍토에 정부까지 팔을 걷고 동조하고 있다. 상업방송 중에서도 종편인 TV조선에서 트로트 음악 붐을 일으키니 보편성이라는 현 정부의 기조와 딱 들어맞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고 우스운 게 정치적/사상적으로는 그렇게 서로 대척점을 세우더니 예능 분야에 들어와서는 서로 손을 맞잡은 꼴이다. 국가 정체성과 독립, 자주성을 강조한 이번 촛불 정부가 트로트의 우수성을 알리겠다고 발 벗고 나섰고 대중들이 좋아만 하면 국가가 지원하고 장려하겠다는 뜻이다. 국민들은 그냥 놀고 즐기며 사랑과 이별, 한과 애수가 주제인 통속적인 유행가를 부르면서 속세의 근심을 잊으라는 배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문화부 주최로 1박2일, 런닝맨이 나오고 CJ 같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문체부의 경쟁 상대가 될 터이다. 유행하는 문화는 장려 안 해도 잘 퍼지면서 또 다른 유행을 만든다.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 미래를 멀리 넓게 바라보는 시야와 복합성을 기르게 하려면 그게 무엇이든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노력, 수고를 기울이게 만들고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 창조의 가능성을 가시적으로 제시해야 진정한 예술이요 국가 문화정책의 올바른 방향이라 할 수 있다.인기와 시류에 영합하고 트렌트를 쫓는 건 우민화 정책의 일환에 불과하다.

2년째 예술의전당에 걸려 있는 현 시국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게 해주는 현수막

어디에도 클래식 음악인들, 클래식 음악은 없다. 우리 사회에 큰 기여를 하는 음악을 상황에 맞게 적극 활용해야 하는데 여전히 탁현민, 윤상. 김형석, 윤일상 같은 대중음악인이 주를 이루고 있고 클래식 음악인 누구도 이번 정부 들어서 어떤 비중한 역할을 맡지 못했다. 예술과 정치적 행동을 통일시키는 목적하에 보편성을 띤 방향을 지향하는 건 현 정부의 기조와 이념에 부합되기 때문에 극소수 마니아, 또는 상대적으로 교육받은 중산층 이상에서 즐긴다는 고급예술 개념의 클래식이 홀대되는 게 이해 안 되는 게 아니다. 모든 인간은 격차를 가지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며 그게 동기부여이자 발전의 원동력이고 사람마다 엄연한 능력의 편차와 고유의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획일성을 지양하고 개개인의 장점을 살려 상호 간에 자극과 견제를 통해 성장을 해야 한다. 재능·개성·흥미·욕구·적성·자발성 등을 근본 원리로 삼고 외부의 강제나 통제, 집단교육을 배척하는 것이 필자의 기본적인 삶의 철학이지만현재 우리 사회는 하향평준화와 제도적 평등 그리고 분배에 우선을 둔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거기에 딱 들어맞는 게 현재의 트로트 열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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