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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43] 클래식 음악도 아웃팅에서 메이저리티로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5.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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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성소수자, 클래식 음악.... 이것들의 공통점은? 비주류, 마이너리티(minority)다.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 중의 하나가 세력이다. 즉 얼마나 거기에 편승한 인원이 많냐는 것이다. 남녀노소 광범위하게 즐기는 대중음악(그중에 요새는 트로트)에 비하면 클래식을 애호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수다. 클래식 감상자의 대부분이 학생이요, 전공자들이다. 즉 어느 정도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야지 들리고 알 수 있는 문자 그대로 '순수예술'이다.

영화'조커'의 포스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자는 소수다. 자기 눈과 귀에는 유치하기 짝이 없고 참으로 저급스러운데 주변 사람들은 다 좋아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고 형언할 수 없는 세계에 빠지는데 남들은 다 지루하다고 한다. 음악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력과 줄기줄기 흐르는 흐름과 맥락은 다 놓친다. 그래서 그걸 캐치하는 사람한테는 예민하고 민감하고 까다롭다고 한다.클래식 음악을 듣고 환희와 감동에 들떠 주변 사람에게 들려줬을 때의 그 떨떠름하고 미적지근한 반응들... 그저 좋다, 아름답다, 멋지다 와 같은 상투적인 반응 말고 음악 안에 내포된 분노, 희생, 비애, 숭고, 우아함, 폭발, 격동 등을 느끼지 못한다. 필자도 음악을 연주하고 들으면서 그런 감정과 표현들을 주변인들과 공유하고 싶다. 왜? 나의 사랑을 타인과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삶은 너무나 고독하고 적막하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대상자가 필연적으로 부모님이 될 수밖에 없으며 다음은 살아가면서 만나는 친구, 부인 등이 될 텐데 어느 누구도 나의 그 열정과 감동만큼 따라오지 못하고 삶을 뒤흔들 정도로 감동을 받지 못해 아쉬움과 서로 간의 벽만 생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되고 축적된 불공감으로 서로 생채기만 내고 영원한 평행선을 걸을 수밖에 없다.

작곡가 김순남의 음악철학,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75년전에 한 말인데 강산이 일곱번 넘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경구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찌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도 그리 메마르고 담담할 수 있나! 수천만 번 듣고 들어도 온몸을 흔드는 전율과 짜릿한 감정, 승천하는 듯한 성스러움, 그리고 경탄 등에 들뜨고 그 열정이 가시지 않는다. 들을수록 다르고 들을 때마다 새롭다. 나만 들뜬다. 안다고 한다. 안다고? 나폴리 6화음의 구성 원리를 안다는 걸까? 아님 이 부분에 이 화음이 쓰여 기가 막힌 효과를 내고 형언하기 어려운 신비를 뿜어내는 걸 안다는 걸까? 안다면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나? 초월한 걸까? 클래식은 지겹다고? 많이 연주해서 새롭지 않다고? 그럼 난 뭔가? 칠 때마다 들을 때마다 새롭고 처음 듣는 곡 같아서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 음악인의 그 무덤덤함.... 경지에 올라 초연한 건지 예술가의 특권과 같은 감수성이 메마른 건지... 80이 넘은 대가들의 연주를 보면 그의 모습에 서려 있는 환희와 영감, 기쁨과 감사의 표정과 넘치는 아우라는 그럼 뭔가? 누구를 탓하고 의지하고 그들을 바꾸려고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불혹이 넘은 나이..... 고독하지만 혼자 간다. 주변 사람 그만 괴롭히고 차라리 나 혼자 골방에 처박혀 다시 듣고 다시 연습하리.

클래식은 과거의 음악이 아니다. 서양문화라는 지엽적인 한계를 넘어 세월의 풍상을 견디고 체로 걸러진 인류의 문화이다. 시대와 함께 하며 그 시대상을 생생히 반영했다. 지금의 BTS가 100년이 흐른 후대에게 한 시대를 풍미한 금자탑으로 남듯이 베토벤은 그 당시 태동한 시민계급의 대변자였으며 쇼팽, 리스트는 말할 것도 없는 당대의 슈퍼스타요, 로시니, 베르디, 바그너는 텔레비전이나 영상이 없었을 당시 사람들의 오락을 담당한 극장의 엔터테이너였다. 시류에 따라 유행과 취향은 변하는 게 당연한 법, 지금의 소통 방법도 기술 발전과 디지털화로 인해 인터페이스의 변화로 인한 미디어 음악이 지금의 클래식라 할 수 있다.혁신적으로 시대를 선도했던 클래식 음악이 학교로 들어가면서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잃고 더욱 협소와 고립을 가속화 시켰다. 학교라는 곳은 기성세대가 짠 커리큘럼과 규범을 학습하는 장소, 얌전히 착실히 모범적으로 잘 따라 해서 대학 가고 학위 따고 온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좁디좁은 음악계 안에서 그런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계의 메이저리티(Majority) 되어 버렸기 때문에 "끼"와 "흥"이 사라져 버리고 경직된 클래식 음악계가 되어버렸다. 팔딱팔딱 뛰는 생동감과 혁신을 잃어버려 그저 과거의 유물, 박제품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음악인들이 아웃팅(Outing) 당할까 겁내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진다. 동문, 선후배, 동종업계 사람들의 평가에만 전전긍긍하고 자신만의 브랜드 생성은 내버려 둔 체, 그저 아직도 학생 마인드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해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만 간절히 원하고 그걸 통해 실적을 입증해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조용히 사는 게 목표다. 그저 강의가 끊기지 않고 대학에 출강하고 잊을만하면 자신이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알려야 하니 음악회를 개최한다. 해봤자 오는 사람도 뻔하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자신의 돈 들여가면서 하는 거니 신나고 색다르게라도 하면 좋을 텐데 주변 사람 눈치를 너무 본다. 창조와 창의라는 예술의 기본 보다 튀지 않고 무난하게 스캔들 안 나는 게 중요하다. 집안 잔치에 와준 사람이니 고맙다. 머리수 채워주고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이 만족하면 클래식 대중화요 소통이 된 것으로 착각한다.다들 클래식을 좋아할 수 없다. 그게 클래식음악이자 문화예술의 특수성이다. 그래서 음악은 경영의 소재가 될 수 없고 경영의 논리로 풀 수 없는 심원한 세계이다.클래식 음악을 힙합이나 트로트, 아이돌 케이 팝과 비교하거나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어리석은거다. 동일 선상의 가치 판단은 불가능하다... 참으로 대한민국에서 소수자,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게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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