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 스마트 소설] 점쟁이 Fortune-T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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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스마트 소설] 점쟁이 Fortune-Teller
  • 박인 작가
    박인 작가 podiman@hanmail.net
  • 승인 2020.05.0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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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불로 왼쪽 손등을 지져 화인을 만들었다.
-상처를 내 몸에 간직하겠어. 너를 사랑한 기념으로.
헤어지는 기념으로 내가 네게 보여줄 것이 있어. ⓒ박인
헤어지는 기념으로 내가 네게 보여줄 것이 있어. ⓒ박인

생일파티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T는 첫눈에 인연이라는 것을 믿었다. 나를 보고, 나의 목소리를 듣고, 언젠가 우리가 함께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인연보다 우연의 일치를 믿는 쪽이었다. 언제나 이별한 후에는 다음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기이하게도 나는 T를 사랑했다.

-네가 내게로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그런데 여기 네가 내 앞에 있잖아.

-나도 너를 사랑하리라고는 어찌 알았겠어. 근데 내가 여기 네 곁에 있잖아.

인생이 차라면 그 차의 운전대를 잡은 건 나였다. 나는 T에게 함께 미래를 향해 안전하게 갈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도 미래는 너무 멀었다. 나는 신호를 무시하고 서둘러 성공을 향해 내달리고 싶었다. 국전에서 입선은커녕 예심에서 연거푸 떨어졌다. 어느 순간 계곡 아래로 처박힐지 모를 내 예술적 도전을 T는 불안해했다.

시간이 흘러 T는 우리가 헤어지기 달포 전에 이미 각자가 다른 길로 갈 것을 예감했다. 사실 예감은 아니었다. T는 나를 만나는 중에 이미 미국에 사는 남자와 맞선을 봤고 대학원을 졸업하는 대로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미래가 불투명한 조각가보다는 신학대학을 나와 전도가 밝은 전도사에게 시집을 가기로 한 것이었다. 하느님마저 그녀 편에 서자 오랜 시간 나는 비참했다. 마지막 날을 함께 보내고 T는 갔다. 초록색 벨벳 천으로 만든 하이힐을 신고 T는 떠나버렸다.

하이힐을 신고 멀어져가는 여자의 뒷모습, 흔들리는 발과 다리는 늘 슬픔이 묻어있었다. 앞으로 다시는 만나볼 수 없을 것이라는 T의 예언은 나를 자극했다.

-헤어지는 기념으로 내가 네게 보여줄 것이 있어.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나는 담배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담뱃불로 왼쪽 손등을 지져 화인을 만들었다. 생살이 타는 아픔 때문에 손가락이 부들거렸다. 악다문 입술을 겨우 벌리고 나는 말했다.

-상처를 내 몸에 간직하겠어. 너를 사랑한 기념으로.

그녀의 눈물을 보자 나는 다시 무감각한 상태로 돌아왔다. 마음속으로는 슬픔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그녀와 내 사랑은 정신과 육체뿐만 아니라 유전자로 각인되어 후대로 전달될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끝>

스마트 소설은 짧은 시간에 대중 영상 매체인 스마트폰으로 읽는 소설입니다. 눈으로 빠르게 읽고 머리와 가슴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박인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 『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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