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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115] 스포츠계의 달인들 10 - 박찬호로부터 홈런 헌납 받은 칼 립캔 주니어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4.2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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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피아>는 국내 최초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기영노 기자의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의 콩트’를 연재합니다. 100%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기영노 콩트는 축구, 테니스, 야구 등 각 스포츠 규칙을 콩트 형식을 빌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는 연재입니다. 기영노 기자는 월간 <베이스볼>, <민주일보>, <일요신문>에서 스포츠 전문 기자 생활을 했으며 1982년부터 스포츠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야구가 야단법석』,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 등 30여 권이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칼 립켄 주니어는 메이저리그가 나은 철인중의 철인이다.

홈런왕, 타격왕 그리고 다승왕 방어율왕 등이 우등상이라면 '연속출장 기록'은 개근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칼 립켄 주니어야말로 메이저리그 사상 개근상 수상자에 가장 적합한 선수다.

1960년 태어난 칼 립켄 주니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감독을 지낸 아버지 칼 립켄 시니어의 영향으로 일치감치 야구를 시작했다.

1978년 2라운드(전체 48순위)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었다. 원래 포지션은 투수였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내야수로 전향했다. 내야수로는 당시로는 비교적 큰 키(1m93cm)였다. 따라서 칼 립켄이 대형 내야수 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3년 여간 마이너리그에서 기량을 닦은 후 1982년 5월30일 메이저리그에 첫발을 내딛었다.

1982년 0.264의 타율과 28홈런 93타점으로 아메리칸리그 신인상을 수상했고, 1983년 0.318의 타율과 27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며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공으로 MVP를 수상하며 최고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칼 립켄은 18년간 메이저리그 불멸의 기록인 2,632경기에 한 경기도 빠짐없이 연속해서 출장하면서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5년 왼쪽발목부상, 1993년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집단 난투극으로 오른쪽 무릎부상을 입는 등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고, 체력저하로 유격수에서 3루수로 포지션을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칼 립켄은 타고난 성실함과 불같은 투지로 이를 극복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상대팀 투수들조차 칼 립켄이 타석에 들어서면 그의 부상을 염려해 몸 쪽 공을 잘 던지지 않아 칼 립켄의 기록경신을 거들었다는 것이다.

1997년 시즌, 슬럼프에 빠진 칼 립켄이 연속출장을 위해 억지로 경기에 출전한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칼 립켄은 슬럼프를 극복하며 팀의 중심선수로 활약했다.

2,632경기 연속 출장 외에 기록을 보면 칼 립켄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알 수 있다.

1982년 6월5일부터 1987년 9월14일까지 6년 동안 한 이닝도 교체되지 않고 출장해 이닝 연속출장기록(8,243이닝)을 세웠고, 역대 유격수 최다홈런(384개), 올스타전 16회 출전 등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안타, 득점, 2루타, 홈런, 타점부문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 프랜차이즈 기록이다.

칼 립켄은 메이저리그 21시즌 동안 한 팀에서만 활약한 볼티모어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체력 부담이 많은 유격수임에도 불구하고 3,001경기에 출장, 3,184안타 431홈런을 기록한 강타자였고 골드글러브 수상 경험이 있는 뛰어난 수비의 유격수였다.

그가 세운 통산 3,000안타-400홈런은 내야수로서는 최초의 기록이다.

단순히 경기에 연속해서 출장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가? 라는 일부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그의 꾸준함은 베리 본즈의 한 시즌 최다 73홈런(2001시즌) 롤란 라이언의 5,714탈삼진, 행크 애론의 755호 홈런(현재는 배리 본즈의 762개)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은 기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칼 립켄이 루 게릭의 2,130게임 연속 출장 기록을 경신하던 1995년 9월6일. 5회가 끝나고 열린 기념행사에서 볼티모어 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일제히 기립해 무려 20여 분 간이나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그의 대기록 작성을 축하하기도 했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1994년 월드시리즈가 취소되고, 1995년 시즌도 늦게 개막하는 등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총 관중 수는 21%나 감소했고, TV시청률도 대폭 하락하며 광고 수입도 덩달아 격감하는 등 갖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많은 팬들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에 매료되어 야구에 등을 돌리고 있던 시기에 나온 칼 립켄의 대기록은 팬들의 관심을 다시 메이저리그로 되돌리는 계기가 됐다.

칼 립켄도 야구선수이기 이전에 남들과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대기록 달성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부상, 체력저하, 슬럼프 등이 연속 경기 출장을 방해했지만, 칼 립켄에게 가장 큰 적은 '게으름과 식상함'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해 팬들의 사랑을 더욱 받기도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한 팀에서 계속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대우를 받으며 새로운 팀으로 옮기고 싶은 욕망도 있었고,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임에도 불구하고 코칭스태프의 배려로 출전할 때에는 스스로 부끄러웠고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칼 립켄은 1998년 9월19일 " 물러날 시간이다(I Think The Time Is Right)"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연속 경기 출장을 포기, 2,632게임에서 대기록은 멈추게 된다. 21살에 시작한 기록 도전이 38세가 되어서 끝나게 된 것이다.

칼 립켄은 기록 중단 이후에도 3시즌을 더 활약했고, 1999년에는 타율 0.340에 18홈런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은퇴 시까지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현역 마지막으로 활약한 2001시즌에는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팬들의 투표로 올스타전에 출전했고, 박찬호의 '매우 평범한' 직구를 받아쳐 홈런을 기록,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칼 립켄 주니어는 박찬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도 했다.(박찬호가 예의상 맞춰 주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칼 립켄은 신인왕으로 시작해서 올스타전 MVP로 선수 생활을 마친 다시는 보기 힘든 '행복한 철인'이다.

2007년 98.5퍼센트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고, 볼티모어 오리올즈 팀은 그의 등번호 8번을 영구결번으로 했다.

칼 립켄 주니어가 지난 4월6일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어린이와 가족을 위해 25만 달러를 기부 했다.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StrikeOutHunger2020’ 캠페인의 일환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부딪힌 사람들을 위해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이다.

칼 립켄 주니어(사진= 나무위키).
칼 립켄 주니어(사진= 나무위키).

가상 인터뷰-

미디어 ; 2632게임을 연속해서 출전했는데, 자신의 포지션을 노리는 후배들에게 미안하지 않았나?

칼 립켄 ; 메이저리그는 자신이 출전하고 싶다고 출전하는 무대가 아니다. 감독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은 별로 없었다.

미디어 ; 솔직히 2632게임 연속 출전하는 동안 오늘은 정말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경기는 몇 경기나 되나......

칼 립켄 ;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쉬고 싶을 때가 많았었다. 그러나 그걸(쉬고 싶다는 안일한 마음) 견뎌내는 는 것이 메이저리거라고 생각했다.

미디어 ; 2632경기 연속 출전 외에 또 자랑스러운 기록은?

칼 립켄 ; 8243이닝 연속 출전기록이다. 연속경기 기록은 한 게임에 한 이닝만 뛰어도 계속되지만 연속이닝 기록은 매 경기 9이닝(또는 8이닝)을 모두 뛰어야 이어지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 역대 3000안타 돌파(3184안타) 선수 가운데 가장 낮은 타율(0.276)을 기록하고 있어서 ‘5툴 플레이어’(정확한 타격, 파워, 안정된 수비, 정확한 송구, 스피드)라고는 할 수 없다.

칼 립켄 ; 그러나 나는 실력, 매너, 인기, 깨끗한 사생활, 지역사회 공헌 등의 야구외적인 면에서 ‘5툴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만약에-

만약 칼 립켄 주니어가 수비 부담이 적은 1루수나 외야수였다면 연속출전 기록이 적어도 3000경기는 넘어서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명대타로 출전했었다면 연속출전 기록을 경신하는데 더욱 유리했었을 것이다.

수비부담이 가장 많은 유격수 였었기 때문에 연속출전 기록이 2632경기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연속출장 기록은 히로시마 카프 팀에서 뛰었던 기누가사 사치오 선수의 2215경기, 한국은 쌍방울 레이더스와 SK 와이번스 팀에서 활약했었던 최태원(1993~2003) 선수의 1014경기다.

※ 기영노의 스포츠 콩트는 100%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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