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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114] 스포츠계의 달인들 9 - 아시아 역대 최고의 여자선수 신금단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4.2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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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피아>는 국내 최초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기영노 기자의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의 콩트’를 연재합니다. 100%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기영노 콩트는 축구, 테니스, 야구 등 각 스포츠 규칙을 콩트 형식을 빌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는 연재입니다. 기영노 기자는 월간 <베이스볼>, <민주일보>, <일요신문>에서 스포츠 전문 기자 생활을 했으며 1982년부터 스포츠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야구가 야단법석』,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 등 30여 권이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육상, 수영, 체조, 축구, 야구 등 모든 종목을 통틀어 이제까지 아시아 선수 가운데 가장 훌륭한 기록을 낸 선수는 북한의 신금단 선수다.

신금단은 1950, 60년대 북한에서 활약한 세계적인 육상선수였다.

그녀는 1960년 모스크바 국제 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1962년에는 4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신금단은 현역시절, 11번의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고 국내외 대회를 통틀어 무려 290회나 우승을 차지했다.

신금단은 196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벌어진 제1회 가네포대회(신생국 경기대회, 22개국 출전)에서 여자 육상 200m, 400m, 800m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그 대회에서 400m와 8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는데, 400m는 51초40, 800m는 1분59초10이었다. 특히 400m 800m 중거리 전문 선수가 200m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지구력과 함께 발군의 스피드도 갖추고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그녀가 수립한 세계 신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는 60년 가까이 지난 현재의 한국 신기록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현재 한국 여자 400m 신기록은 이윤경이 세운 53초67로, 신금단의 기록보다 무려 2초27이나 뒤진다. 800m 한국 기록은 최세범이 세운 2분05초11로 신금단보다 무려 6초01이나 뒤떨어진다.

당시 그녀의 기록은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 출전하면 무조건 금메달감이었다.

만약 신금단이 올림픽이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같은 메이저대회에 출전했더라면 2관왕 또는 3관왕이 돼서 아시아 선수로는 영원히 깨트리기 어려운 대기록을 작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가네포 대회 이듬해 벌어진 64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가네포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불허하는 바람에 북한선수단이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러 일본까지 갔다가 철수했기 때문이다.

(사진= 더올림피안스)
(사진= 더올림피안스)

 

당시 가네포대회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가 IOC를 탈퇴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만든 대회였기 때문에 IOC의 반감을 산 대회였다.

신금단은 비록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남쪽에 살고 있는 자신을 낳아 준 아버지를 만날 수가 있었다.

북측의 딸 신금단과 남측의 아버지 신문준 씨의 상봉은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이자 당국 간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이뤄진 ‘무작정 만남’인 셈이었다.

신금단은 1951년 1.4 후퇴 때 헤어진 이후 서울에 살고 있던 아버지와 13년 만에 상봉했다. 아버지 신씨는 1951년 1·4후퇴 때 헤어진 딸의 올림픽 참가 사실을 신문에서 읽고 단숨에 도쿄로 날아갔다.

부녀는 북한 선수단이 도쿄 올림픽 출전을 포기한 채, 도쿄를 떠나기 직전 극적으로 만났다.

그러나 “금단아” “아바이”로 시작된 부녀의 상봉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작 7분간의 만남 뒤에 딸은 니가타 행 열차를 타기 위해 눈물을 뿌리며 아버지의 손을 놓아야 했다.

아버지는 열차가 떠나는 우에노 역으로 달려가 역장 실에서 다시 딸을 포옹할 수 있었다. 불과 3분 뒤 딸은 “아바이 잘 가오”라는 말을 남기고 북쪽으로 떠났다.

부녀가 7분, 3분간 모두 합해서 만난 10분은 부녀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부녀는 다시 얼굴을 보지 못했고 아버지 신 씨는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1983년 사망했다.

1938년 1월3일 생인 신금단은 올해로 83살이다.

신금단은 북한에서 현역 은퇴 후 ‘인민체육인’의 칭호를 부여 받았고, 사회안정성 체육단(72.4)을 거쳐 압록강체육선수단에서 육상지도원으로 활약했었다.

-가상 인터뷰

미디어 ; 올림픽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것 같다.

신금단 ; 그렇다,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도 북한 육상 선수단 임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1년 연기 되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제 내 나이도 있고.

미디어 ; 북한의 3대 세습을 어떻게 생각하나?

신금단 ; 남한에도 무슨 돈 많은 교횐가 뭔가를 ‘부자 세습’한 것으로 아는데, 국물이 많으면 남 주지 않고 세습하는 것 본능 아닌 기요?

미디어 ; ......

만약에-

신금단이 만약 1964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했었다면 어떤 성적을 올렸을까?

앞서 언급을 했던 것처럼 신금단은 400m와 800m를 주 종목으로 하는 중거리 전문 선수였다. 400m 최고기록은 51초40이었고, 800m는 1분59초10이었다. 당시 26살로 여자 육상 중거리 선수로는 한창 전성기를 누릴 나이였다.

그런데 1964년 도쿄올림픽 여자 육상 금메달 기록은 신금단의 개인 최고기록에 한참 떨어진다.

도쿄 올림픽 여자 400m 금메달은 호주의 커트비트 선수가 차지했는데, 52초F의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신금단의 최고기록 51초40에 0.60초 뒤지는 기록이다. 그리고 은메달은 영국의 파커 선수로 52초02, 동메달은 호주의 아무어 선수로 53초04를 기록했다.

만약 신금단이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다면 최소한 메달 권에 들어갈 수 있었고 금메달도 가능했었다.

이제까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메이저 급 대회에서 아시아권 여자 선수가 올림픽 중거리(400m와 800m)에서 메달을 딴 선수가 없다는 것을 감안 하면 신금단은 출전만 했으면 아시아육상의 역사를 바꿔 놓을 뻔 했다.

그리고 800m 금메달은 400m에서 은메달을 딴 영국의 파커 선수가 2분01초10의 세계신기록으로 차지했다.

신금단이 보유하고 있던 800m 세계신기록인 1분59초10에 무려 2초나 뒤지는 기록이다. 만약 신금단이 이 종목에 출전을 했으면 400m 보다 더 금메달을 딸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여자800m 은메달은 2분01초09의 프랑스의 듀뻬레르, 동메달은 2분02초08의 뉴질랜드의 참버레인 선수였다.

※ 기영노의 스포츠 콩트는 100%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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