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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 스마트 소설] 유령 Ghost

박인 작가
  • 입력 2020.04.2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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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의 몸에는 수천 볼트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와 섹스가 끝날 때마다 나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기절했다.

▲평일 낮에 그녀는 시내 상점에서 일했고 나는 바닷가를 오가며 스케치 작업에 몰두했다.ⓒ박인
▲평일 낮에 그녀는 시내 상점에서 일했고 나는 바닷가를 오가며 스케치 작업에 몰두했다.ⓒ박인

해변이 아름다운 작은 도시에서 사는 G는, 바다라면 연상되는 태양 빛에 그을린 탄탄한 피부를 갖고 있지 않았다. G가 하얀 머플러를 바람에 휘날리며 산책하는, 단순히 바다를 좋아하는 소녀인 줄 알았다. 거의 한 달 동안 바닷바람에 까맣게 탄 내 얼굴은 G의 하얀 낯빛과 대비되어 보였다. 그녀는 산에서 살았던 늑대 아이처럼 야성적이면서 어찌 보면 숲의 요정처럼 기묘하게 아름다웠다. 오후 해변이 보이는 거리를 산책할 때마다 나는 G와 만났다. 우리는 가벼운 인사와 눈웃음을 나눌 뿐이었다.

하루는 그녀가 내가 두 달 예정으로 묵고 있는 바닷가 별장으로 놀러 왔다. G는 은색 가죽과 하얀 망사로 만든 하이힐을 신고 왔다. 미동도 없는 그녀의 상체는 가늘었다. 속이 비치는 연회색 반투명 치마에는 다리 그림자가 휘청거렸다.

그날 밤을 나는 그녀와 함께 보냈다. G의 몸에는 수천 볼트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후 그녀와 섹스가 끝날 때마다 나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기절했다. 정신을 차리면 그녀의 머리카락은 미친 듯이 곤두서서 산발한 모습이었다. G는 손가락 끝을 전기 콘센트에 꽂아 넣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나뭇가지처럼 뻗친 머리카락을 G는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그런 꼴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해 여름 한 달 동안 나를 계속 혼절시키려고 찾아왔다. 평일 낮에 그녀는 시내 상점에서 일했고 나는 바닷가를 오가며 스케치 작업에 몰두했다. G가 어디에 사는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녀는 별장을 드나들기를 맘대로 하였다. 그날 그 시간 분명히 나하고 이곳에 있었는데 다른 여러 곳에서도 같은 시간에 그녀를 봤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하여간 이상한 아우라를 지닌 여자였다.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밤에 일부러 G를 두 팔로 품에 꼭 끌어안고 자기도 했다. 내게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십 분이 지나기도 전에 어김없이 혼절한 나는 잠 속으로 빠져들어서 갔고,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손에 잡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갔다. 다시 나타난 그녀는 그러기를 반복했다.

별장을 떠날 날이 모래로 다가오자 나는 초조해하며 G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녀는 핏기가 가신 얼굴에 미소를 담고 꼭 나를 만나러 서울로 가겠노라고 약속했다. 그 후 그녀는 소식이 없었다. 나 또한 작업이 바쁜 핑계로 잊고 지냈다. 가끔 G가 생각났다. 그렇다고 G를 아주 완벽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다음 해 여름 주말을 틈타 무작정 나는 그 해변 도시로 가서 그녀를 수소문했다. 그 좁은 도시에서 그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아예 유령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그렇게 사라진 G가 우연히 나타난 것은 몇 년이 흐른 뒤였다. 그녀는 약간 지쳐 보였지만 여전히 야성적이고 아름다운 비밀을 품고 사는 듯이 보였다. G 곁에는 그녀처럼 하얗고 귀여운 작은 여자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머리카락 위에는 작은 나무 덩굴이 피어 있고 모녀는 나를 보고 활짝 웃어주었다. 그 후로는 모녀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점쟁이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끝>

스마트 소설은 짧은 시간에 대중 영상 매체인 스마트폰으로 읽는 소설입니다. 눈으로 빠르게 읽고 머리와 가슴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박인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 『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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