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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112] 스포츠계의 달인들 7 - 올림픽 금메달, 금배지 임오경 당선자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4.20 12:01
  • 수정 2020.04.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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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피아>는 국내 최초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기영노 기자의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의 콩트’를 연재합니다. 100%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기영노 콩트는 축구, 테니스, 야구 등 각 스포츠 규칙을 콩트 형식을 빌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는 연재입니다. 기영노 기자는 월간 <베이스볼>, <민주일보>, <일요신문>에서 스포츠 전문 기자 생활을 했으며 1982년부터 스포츠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야구가 야단법석』,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 등 30여 권이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임오경 국회의원 당선자는 지난 4월15일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경기 광명 시 갑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미래 통합당의 양주상 후보를 제치고 여성 올림픽 금메달 출신 최초(남성은 지난 19대 총선 때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씨 부산 사하 갑 당선)로 당당히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임오경 국회의원 당선자에게는 최초의 기록들이 많다.

그동안 여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국회의원이 된 적은 있었지만, 지역대표로 선거를 치러 국회의원에 당선 된 것은 임오경 의원이 처음이었다.

일본 유도 영웅 다니 료코가 지난 2010년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비례 대표로 당선 되었었다.

다니 료코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48kg급 결승전에서 북한의 계순희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었다. 그러나 그 후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따내 5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낸 유도의 달인이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아니지만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출신 탁구의 이 에리사 씨도 비례 대표 국회의원 출신이다.

이 에리사 씨는 제 19대 새누리당 비례대표(9번)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 지역대표인 대전 을 지역공천에 도전했지만, 실패해서 지역출신 국회의원은 해보지 못했었다.

한국인 첫 일본 실업팀 감독

임오경 당선자는 한국체육대학을 졸업, 불과 23살의 나이에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창단 팀인 히로시마 이즈미 핸드볼 팀에서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역시 한국 최초였다.

임오경은 2부에 소속된 이즈미 팀을 1994년 말에 1부로 끌어 올리고, 2년째 1부에서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 이듬해인 1996년 시즌에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감독 겸 선수가 되었다. 당시 임오경의 연봉은 1억 원이 넘었다.그 후 히로시마 이즈미 팀은 리그 8연패를 포함해 모두 27번이나 우승을 차지했고, 임오경은 일본의 체육기자단이 선정하는 인기투표에서 8년 내리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현역이던 1999년 배드민턴 국가대표 출신인 박성우 씨와 결혼했고, 딸을 출산했다. 박성우 씨는 아내를 따라 일본에서 코치(소나미 운송 팀)를 하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해 이혼하고 임오경 당선자는 딸(일본에서 태어난 박세민)과 둘이서 살고 있다.

현역에서 은퇴를 한 후 2008년 국내 구기종목사상 최초의 여성 지도자로 서울시청 핸드볼 팀 감독을 맡아 우승을 차지했다.

국내 여성구기종목 지도자로서는 최초의 우승이기도 했다. 지도자로 활약하면서 모교인 한국체육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이수했다.

 

(영상= 광명댁 임오경tv)

세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임오경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한국 여자핸드볼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는 “홈그라운드 이점을 살렸기 때문이다”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하자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그 후 임오경은 결혼, 출산 등을 이겨내고 7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해 영화(우생순)로도 만들어졌던 덴마크와의 결승전에서 두 번의 연장 끝에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임오경은 일본 히로시마 메이플 레즈(전 히로시마 이즈미) 감독 겸 선수였었다.

AP AFP 로이터 등 통신과 세계 주요 언론들은 2004년 8월29일에 벌어진 여자핸드볼 결승전을 ‘아테네 올림픽의 최고 경기’로 꼽았고 사실상 ‘공동 우승’ 이라고 보도했다.

국내 언론들은 ‘금메달 같은 은메달’, ‘아줌마들이 자존심을 세웠다’ 등으로 대표 팀의 선전을 알렸다. 그 당시 4명의 아줌마 선수 중의 대표적인 아줌마 선수가 임오경이었다.

한국갤럽의 “아테네 올림픽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서 여자 핸드볼 결승은 ‘가장 재미있게 본 경기’, ‘가장 아쉬웠던 경기’ 에서 50.2%, 61.3%로 모두 1위를 차지했었다.

그 같이 스포츠에서 있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준, 한국과 덴마크의 결승전은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으로 만들어져 2008년 개봉해 4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그 영화의 주연 문소리 씨가 연기한 한미숙의 모델이 임오경이었다.

한국여자핸드볼은 우리나라 구기종목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올림픽 금메달 2연패, 은메달과 동메달도 많이 땄지만, 사실 가장 빛나는 성적은 1995년 세계여자핸드볼 선수권대회 우승이었다.

여자핸드볼 올림픽은 12개국만 출전하지만,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 보다 두 배나 많은 24개국이 출전한다. 따라서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려면 강한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피지컬에서 뒤지는 아시아 국가가 우승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1957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시작된 세계여자핸드볼 선수권대회는 유럽 팀들이 독식을 해오고 있는데 단 한번 1995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공동 개최한 대회에서 한국이 결승전에서 개최국 헝가리를 25대20으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2003년 크로아티아 대회에서는 3,4위전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31대29로 제압하고 동메달을 땄는데, 두 대회 모두 임오경이 주역으로 활약을 했었다.

임오경은 이름자 그대로 5와 인연이 많아

임오경은 5자와 인연이 많다.

8남매(2남 6녀) 중에서 다섯 번째 딸이어서 이름에 오자가 들어갔다. 그리고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세계규모의 대회에서 5번 메달을 땄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5년 세계선수권대회 金,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銀,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 메달,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까지 5개(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의 메달을 따냈다. 이제 국회의원도 5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임오경 당선자(임오경 페이스북 갈무리).
임오경 당선자(임오경 페이스북 갈무리).

가상 인터뷰-

미디어 ; 먼저 국회의원에 당선 된 것 축하한다. 여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처음으로 지역구에서 당선 되었는데.

임오경 ; 난 처음과 인연이 많다. 이러다가 처음으로 여성 국회의장 되는 거 아냐......

미디어 ; 첫 여성 대통령은 다른 여성이 했었으니까 국회의장......말 되네......

임오경 ; 중간에 탄핵 당하지 않고 ‘5년 임기를 모두 마치는 첫 여성 대통령’이 좋겠다.

만약에-

만약에 2004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한국 여자핸드볼이 덴마크를 꺾고 금메달을 땄다면 과연 ‘우생순’이라는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 임오경 당선자도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번에 임오경이 당선을 하는 데는 ‘우생순’이 큰 역할을 했다.

임 당선자는 우생순 처럼 감동을 주는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한 표를 호소했고, 광명 갑 주민들도 그녀에게 국회 안에서의 우생순을 기대하며 과감히 한 표를 주었다.

※ 기영노의 스포츠 콩트는 100%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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