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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통신 229] 세월호 추모곡 '바람이 잠든 곳'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4.1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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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6주기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클래식 노래가 없음을 안타까워해서 작곡한 이승원 작시의 <바람이 잠든 곳>은 이제 용서와 사랑으로 승화하는 더 큰 대승적인 차원으로 불린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복합적 모순과 부조리로 일어난 참사들을 기억하고 극복해야 한다. 이념과 갈등을 초월할 우리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화해시킬 핀란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같은 곡이 꼭 있어야 한다. 

Remember 2014.04.16

시대와 공감하고 시민이 함께 하는 무대와 공연이 아니면 클래식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 때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선곡으로 무대와 관객이 하나가 되고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에 대가의 연주라 할지라도 단순한 행위에 그치고 만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야기된 촛불 집회에서 ‘이게 나라냐’고 외치고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서로 하나가 되었고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의사표현을 하였다. 개인이 아닌 클래식 음악인들의 음악으로의 참여가 너무나 저조해 필자라도 광화문 광장에서 나만의 항거방법으로 쇼팽의 에튜드 10-12를 피아노로 칠까 했지만 그만 두었다. 곡에 대한 스키마(Schema)가 없다면 공감하기 힘든 클래식의 한계였기 때문이다. 고금의 클래식 명곡들은 민중들의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도리어 사회적 효용의 욕구에서 발생한 실용적인 목적지향성의 음악이다.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등 표제와 기능에 충실한 음악이었으며 절대음악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교향곡, 그 중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은 봉건주의와 절대왕정을 타파하고 새로운 계층으로 자리 잡은 신흥 부르주아들의 역동성과 열망에 너무나 부합되는 시민의 대변자였다.

이미 수차례 우리나라에서도 클래식 음악이 이런 시대적 욕구와 효용성에 부응 할 수 있었다. 허나 평창올림픽을 기념한다고 국립오페라단이 [마술피리], [라 트라비아타] 운운하고 대관령 국제음악제 등의 유수의 음악축제에서 전혀 지역정서와 감상자들의 욕구와는 무관한, 인지도에 집착한 그들만의 리그로 고립과 단절을 자초했다. 그 결과 클래식 음악은 이런 행사, 서민의 삶, 일상과는 무관한 뭔가 고차원적이고 범접하기 힘든 형이상적인 학문으로 만들어버려 같이 호흡을 못하고 동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누구나 듣고 좋아하고 같이 공감하면서 재미와 호응을 보장하는 대중 뮤지션들과 뮤지컬 그리고 우리 음악인 국악과 우리말 노래로 일반시민과 성악가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된다.

세월호를 하나의 행사 소재, 매개로 이용하지만 말고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관료주도적인 행사진행은 시대착오적이다. 요즘은 시민참여예술이 대세이며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트렌드가 되어 버렸다. 안산이 세월호란 이름을 걸고 어떤 기획을 하던지 그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그게 바로 진정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하고 잊지 않는 영원불멸의 약속이 될 것이니까. 

2018년 설날, 호주 출신 입양인 소프라노 하나 리 크립스(Hana Lee Crips)가 모국어로 해외입양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이자 시민단체인 뿌리의 집에서 뿌리는 같으나 국적은 다 가지각색인 50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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