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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 내 삶의 즐거움, 지하철 독서

권용 전문 기자
  • 입력 2020.04.1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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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독서를 통해 느낀 삶의 즐거움, 독서가 일상이 되는 삶

독서 에세이, 내가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이유 ⓒ권용

 

어디론가 향하는 일은 설렘으로 가득한 여정이다. 자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선호한다. 운전대를 잡는 것이 싫기도 하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버스나 지하철에서의 순간을 즐긴다. 버스는 가끔 멀미를 하고 가능하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즐기곤 한다.

 어김없이 수업을 위해 이동하는 날, 전날 아이패드를 잘 챙겼는지 확인하고 잠자리에 든다. 전자책을 읽고 난 후 무겁게 종이책을 들고 다닐 일이 없어졌다. 대학생 시절부터 항상 책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어디론가 향하던 중 책을 다 읽을 것을 대비해 꼭 두 권 이상 가방에 넣어야 마음이 편안했다. 비록 가방은 무거워졌지만 책의 무게만큼 내 마음 역시 풍요로움으로 가득했다.

 일 년의 재수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매일 아침 첫 지하철을 타야했고 해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지하철에서의 시간은 조금도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뜨끈한 지하철 좌석에 앉아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즐겨 마시는 캔커피와 함께 마음껏 책장을 넘길 수 있다는 만족감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이후로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공부 자체에 흥미가 없었고 무엇보다 주어진 시간들을 친구들과 농구를 하는데 보내야 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책과의 거리가 멀어져갔다.

 독서실에서 홀로 재수 공부를 시작하고 다시 책을 읽게 되었다. 대학을 가지 못했던 건 온전히 나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부족해서였다. 친구들은 이런저런 대학에 입학해 20살의 한창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그저 한때의 흥청망청이 아닌 우리 나이 때에 경험할 수 있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느껴졌다.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대학에서 새로운 인연을 접하고 전문적인 학문을 시작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마냥 부럽게 느껴졌다. 당장 대학을 갈 수 없었기에, 나 스스로 찾은 대리만족의 출구로 다시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지하철칸에서 즐기는 독서 ⓒ권용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홀로 재수 공부를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 20살이 되었으니 조금은 달라진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독서실에 꽂혀있는 책들로 손이 가게 되었고 하루에 조금씩 시간을 내어 독서를 하게 되었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책은 지겨운 수능 공부 외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나 다름없었다. 가끔은 하루의 일과를 모두 미뤄놓고 책을 읽으며 온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이런 독서의 시간들이 결코 내게 해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재수 생활을 거치며 대학에 입학하면 실컷 하고 싶은 소원 중 하나가 바로 독서였다. 그런 내게 지하철에서 보낼 수 있는 4시간은 결코 힘들거나 아쉬울 수 없는 순간이었다. 캠퍼스에서 주어진 여유 시간 역시 책을 읽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무거운 전공책 사이에 꼭 책을 챙겨 다니곤 했다. 지켜보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독서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내게는 캠퍼스의 낭만이었다. 내게는 지하철에서 책과 함께 하는 시간 역시 캠퍼스의 낭만이었고 그저 독서를 즐겨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을 느끼곤 했었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는 시간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지나치는 정거장의 수, 시간을 확인하며 어느 정도 책을 읽을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읽고 있던 책을 어디까지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는 새로운 책을 읽을 즐거운 고민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습관이 되어버린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으며 보내는 지하철에서의 시간이 내게 주어진 몇 안되는 행복한 순간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지하철 독서를 하다 보니 약속이 잡히면 몇 시간 전에 이동을 하고는 한다. 당연히 책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 근처 카페에 도착하여 넉넉한 마음으로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독서가 아니었어도 정해진 시간을 잘 지켰겠지만 지하철에서의 시간을 즐길 수 있기에 항상 여유 있는 마음으로 시간을 지키게 되었다. 불가피할 경우 자동차를 타고 다니겠지만, 나는 40대가 되고, 50대가 되어도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을 결코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문득 아무도 없는 지하철에서 책을 보며 오래 전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는 학교에 가는 대학생답게 책을 읽는 다는 내 모습에 살짝 들떠있었는데, 어느덧 나 자신도 모르게 지하철을 타며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유리창에 비친다. 그때는 나 말고 다른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 아쉽게도 느껴진다. 20대 초반의 청춘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듯이,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 역시 정신을 차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이다. 과거의 추억은 10년도 넘게 흘러간 시간이지만 나는 여전히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겠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그대로였음 좋겠다. 더 시간이 흐른 뒤,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며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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