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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통신 228] 이 한 권의 책: 장민호의 '영화음악과 심포니 작곡을 위한 오케스트레이션 스터디북'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4.1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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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의 시대다. 이제 작곡은 오선지에 안 한다. 악보를 적을지도 모르고 읽을지도 모르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도 천지다. 그걸 따지면 구시대적이라고 한다. 오케스트레이션? 미디, 가상 악기를 이용하면 악보에 적을 필요도 없다. 어설픈 실연보다 훨씬 나은 품질로 들을 수 있다. 빅데이터의 시대에 선배 대가들이 해 놓은 위대한 작품들만 편집하고 제공되는 악보만 샘플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대가의 작품 못지않게 짜깁기할 수 있다. 이런 마당에 뭐 하러 눈 빠지고 힘들게 手 작업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국내에선자신이 쓴 곡을 오케스트라 실연으로 직접 듣고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로 책상에 앉아 쓴 작품이 조금은 부족하고 미흡하더라도 실재 연주자를 만나 연습 과정을 거쳐 이상과 현실이 부합되고 현장에서의 경험을 쌓는 건 작곡가에게 엄청난 공부요 자산이 되며 성장의 마중물이 되는데 실재 오케스트라로 자신의 작업을 듣는다는 건 우리나라 실정상 거의 불가능하다. (돈이 아주아주 많아서 직접 고용하면 되긴 한다.)

도서출판 예솔(대표 김재선)에서 발행한 작곡가 장민호의 신간: 영화음악과 심포니 작곡을 위한 오케스트레이션 스터디북

작곡가 장민호(상명대학교 뉴미디어음악학과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폴란드어를 전공한 인문학도다. 쇼팽을 좋아해서 그의 모국어인 폴란드어에 관심을 가져서였을까? 대학 시절부터 미리 다가올 테크놀로지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을 꿰뚫은 안목으로 신디사이저, 미디에 관심을 기울인 그는 제1회 커즈와일 신디사이저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인문학적 숙성된 사고와 신실한 신앙적 지조가 맞물린 치열한 학습을 통해 상명대학교 뉴미디어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아카데미와 현시대의 테크놀로지를 융복합한 21세기에 부합되는 작곡가로 거듭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어느 누구도 정확한 의미에 대해 규정 내리지 못하고 심지어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뉴미디어음악이라는 용어에 대해 필자가 규정하겠다. 피아노는 18세기에 발명된 악기이자 그 시대의 도구다. 피아노라는 최첨단 악기, 매개를 이용한 음악을 위해 시대의 양식과 트렌드에 발맞춰 작품이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그럼 17~18세기의 피아노에 상응하는 지금의 악기라면 무엇이 있을까? 변화된 생활방식과 미디어에 맞춰 악기와 삶의 양식, 기계와 기술로 대체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과거의 바이올린이 전자 바이올린으로 진화되었다. 그런 환경과 조건에 맞는 음악, 즉 방송, 영화, 게임, 공연 등의 현 실정의 니즈에 통용되는 게 뉴미디어음악이다.

작곡가 장민호, 사진 제공: 김문기의 포토랜드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가상 악기의 의존도가 월등히 높고, 작곡가가 실재 악기를 접하는 시간보다 컴퓨터와 기계 앞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 엔지니어가 되고 있다. 이제 작곡(Composition)이란 개념도 포괄적인 제작(Produce)으로 변환되고 있다. 가상 악기는 편의성과 실용성을 제공하며 이미 연주 수준은 실재 인간 연주자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변수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인간은 예측불허와 피곤한 존재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연습이라는 과정이 필수인데 그 과정은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인내와 숙련이 요구된다. 또한 사람에 따라 편차가 크며 잘하면 잘하는 만큼 몸값도 올라가 지출도 커진다. 연습 스케줄도 잡아야 되고 단체생활에 한 개인의 예기치 않은 사정으로 스케줄이 뒤죽박죽되기도 하고 연주 당일, 무대에 오르기 전까진 어떤 상황이 발생하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왜 우리는 오케스트레이션을 공부하고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을 통해서 실연을 해야 되고 실연을 꿈꾸는가?

상명대학교 뉴미디어음악학과의 장민호 교수 연구실에 설치된 Genelec 8331, 사진 제공: 삼아사운드

피아노 원곡과 관현악곡을 동시에 비교 분석하면서 관현악곡을 피아노로 접근해서 분석할 수 있는 리덕션 악보를 가진다면 관현악의 숨겨진 기법들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즉 거대한 관현악곡을 분해해 피아노로 압축시킨다면 악기의 음색이나 배치, 효과적인 악기 간의 밸런스라는 관현악법의 기본부터 곡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설계도를 입수하는 거나 마찬가지의 효과이다. 위대한 관현악 작품들이 원래 피아노 곡으로 만들어진 후, 작곡가 본인이나 타 작곡가에 의해 관현악화된 예는 셀 수 없이 많고 거의 그런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장민호는 본인이 직접 작곡 사보 프로그램인 시벨리우스를 통해 일일이 영화음악과 클래식 작품들의 명곡들을 뽑아 리덕션 한 악보를 제시한다. 기존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아닌 자신이 직접 편곡한 것이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작곡도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요구하며 학습을 인도한다. 리덕션을 보고 자신이 무소르그스키가 되거나 말러가 되어 관현악 작업을 해본다. 아님 반대로 기존의 말러 교향곡을 피아노로 편곡해본다.오케스트레이션을 잘하는 방법은 관련 이론서를 열심히 보는 것보다 실제 오케스트레이션 대가들의 곡을 많이 듣고 분석하며 직접 오케스트레이션을 해보는 것으로,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방법을 제시한다. 『영화음악과 심포니 작곡을 위한 오케스트레이션 스터디북』(도서출판 예솔)은 악기론과 이론보다는 직접 오케스트레이션을 해볼 수 있는 실습 문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잡한 오케스트라 악보를 장민호가 직접 만든 피아노 리덕션(reduction)과 함께 제공하며, 다양한 실습 방법을 보여준다. 『실습문제편』과 『해답편』 두 권으로 나뉘어 있어 리덕션과 함께 오케스트라 작업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시벨리우스 파일까지 보너스다.

뉴미디어음악의 선두주자 장민호의 그간의 연구결과 축적물: 영화음악과 심포니 작곡을 위한 오케스트레이션 스터디북

장민호에게나 이 책을 사서 읽는 독자들에게나 힘들고 험난한 인내과 치열함이 요구되는 작가정신이 요구되는 수공예(Handwerk) 작업이지만 이 과정을 극복하고 이겨낸 사람만이 기계와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건 자명하다.이 여정을 함께 극복해 나갈 사람들이여! 이 책을 구입해서 책상 앞에 앉아 불멸의 밤을 보내보라. 하긴 새삼스럽게 새로운 방법도 아니다. 이게 관현악의 정도다. 고금의 작곡의 거장들은 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공부했다. 미디, 교재, 시벨리우스 파일 등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구의 변전일 뿐, 예나 지금이나 작곡의 대가가 되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끊임없는 반복적인 수공예 작업을 엉덩이에 종기가 날 때까지 앉아서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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