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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110] 스포츠계의 달인들 5- ‘올림픽 금메달 출신 국회의원’ 세르게이 부브카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4.13 19:08
  • 수정 2020.04.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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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피아>는 국내 최초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기영노 기자의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의 콩트’를 연재합니다. 100%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기영노 콩트는 축구, 테니스, 야구 등 각 스포츠 규칙을 콩트 형식을 빌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는 연재입니다. 기영노 기자는 월간 <베이스볼>, <민주일보>, <일요신문>에서 스포츠 전문 기자 생활을 했으며 1982년부터 스포츠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야구가 야단법석』,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 등 30여 권이 있습니다. - 편집자 주
 

1983년 1회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이후 이제까지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가장 화려한 성적을 올린 선수는 우크라이나의 남자장대 높이뛰기 선수 세르게이 부브카 선수다.

육상에서 35차례(실외 17회, 실내 18회) 세계신기록 경신, 세계선수권 6연패(83년 대회부터 97년 대회까지) 등 지난 20세기 세계육상 사를 바꿔 온 장대높이뛰기 일인자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부브카.

부브카는 1990년대 이전에는 소련 국적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독립국가연합의 일원으로 출전했는데 현재 그의 국적은 우크라이나다.

부브카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장대높이뛰기 예선에서 무리하게 5m70에 도전했다가 3차례 모두 실패, 탈락의 멍에를 썼다. 나이 때문에 예고된 패배였지만 영웅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1994년 7월 그가 세운 세계기록 6m14는 아직도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2위 선수의 기록이 고작 6m05cm 정도다. 부브카에 무려 9cm나 뒤진다. 오로지 장대 하나에 의존해서 자신의 몸을 하늘높이 날려야 하는 장대높이뛰기에서 9cm 차이는 엄청난 벽이다. 대부분의 세계의 육상전문가들은 부브카의 6m14cm기록은 수퍼스타가 나타나지 않는 한 당분간은 깨트리기 어려운 불멸의 기록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도 부브카 처럼 100m를 10초 대 초반에 달리는 발군의 스피드에 높이뛰기 선수 못지 않은 순발력 그리고 천부적인 도약력을 갖춘 선수가 나오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브카의 세계 신기록행진은 지난 1984년 1월 실내육상대회에서 작성한 5m81cm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5m81cm는 대단한 기록이었다.

부브카는 1984년 이후 적어도 1년에 한번 이상 세계기록을 경신했고, 35차례 신기록 경신은 1920년대 세계의 육상중장거리 계를 석권하며 전설적인 선수로 남아있던 핀란드의 파보 누르미가 갖고 있던 '29회의 세계기록경신' 기록을 깨뜨리는 세계육상계의 대 역사였다.

부브카에게는 매 대회마다 상대 선수가 없었다. 부브카의 컨디션에 따라 우승선수가 가려졌다. 부브카가 정상적인 컨디션이면 다른 선수들은 2위, 3위 다툼을 해야 했다. 부브카가 부상을 당했거나 컨디션이 극도로 좋지 않을 때만 우승을 노렸다. 대 대회 부브카는 오로지 새로운 기록경신만이 관건이었다.

2001년 11월5일 부브카는 고향인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개최된 자신의 이름을 딴 장대높이뛰기대회에서 은퇴식을 갖고 정들었던 필드를 영원히 떠났다.

당시 부브카는“선수로서 다시 장대를 잡지는 않겠지만 지도자로서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을 것이다. 제2의 부브카가 나른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나오길 바라고 또 노력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브카는 또한“이제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운영위원으로서 국제 체육계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당시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부브카의 은퇴사가 끝나자 기립박수로‘육상영웅’을 떠나 보내는 아쉬움을 달랬고, 레오니드 쿠츠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세계는 부브카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알게 됐다. 이제는 우리가 부브카가 편안한 마음으로 후진을 양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며 경의를 표했다.

부브카는 1983년 제1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9세의 어린 나이로 5m70을 넘어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1997년 아테네세계육상선수권대회까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장대높이뛰기에서 6연패를 달성했고, 장대높이뛰기 사상 처음으로 6m의 벽도 돌파했다. 부브카가 6m를 돌파 할 때 까지 세계의 스포츠과학자들은 장대높이뛰기에서의 6m벽 돌파를, 남자 육상 100m의 9초05와 함께 21세기 안에 깨트리기 어려운 기록이라고 평가 했었다. 부브카는 6m벽 돌파는 물론 6m10까지도 넘어서 1994년7월 이탈리아 세스트리에에서는 6m14를 뛰어넘었다.

부브카는 자타가 공인한 장대높이뛰기 1인자였지만 올림픽과는 다소 인연이 멀었다.

1984년 LA 올림픽 때는 구소련의 대회 보이콧으로 출전 자체가 원천 봉쇄됐다. 부브카는 1988서울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8서울올림픽에서 부브카는 5m90cm의 올림픽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그 전까지의 올림픽 기록 5m75cm를 무려 15cm나 경신한 것이다. 당시 은메달을 딴 리디온(5m85cm)과 동메달의 그레고리(5m80cm)도 모두 소련선수들이었다.

부브카의 올림픽 금메달은 88서울올림픽이 마지막이었다.

세계 최고기록 수립이 기대됐던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결선 진출기록인 5m75cm를 넘지 못해 예선에서 탈락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오른발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해 출전 하지 못했다.

부브카는 은퇴무대로 생각하고 출전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예선에서 무리하게 5m70cm에 바를 올려 도전했다가 3차례 모두 실패, 본선 진출도 못하고 좌절을 겪었다.

부브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난 후 "올림픽은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이상하게 4년마다 시련을 맞이한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 아마 올림픽에 인연이 있었다면 최소한 금메달 3개, 많으면 4개까지도 가능했지만 1개에 그치고 만 것이다.

부브카는 은퇴를 한 후 2002년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에 당선, 정치인으로 변신에 성공을 했다.

우크라이나의 남자장대 높이뛰기 선수 세르게이 부브카(Сергій Назарович Бубка).
우크라이나의 남자장대 높이뛰기 선수 세르게이 부브카(Сергій Назарович Бубка).

 

가상 인터뷰-

미디어 ; 선수출신 국회의원이다. 스포츠맨에서 정치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부브카 ; 나는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장대 하나에 의존애서 가장 높이 난 인간이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 쯤 할만도 하지 않은가?

미디어 ; ‘국회의원 쯤’이라니.

부브카 ; 앗! 대한민국이 지금 국회의원 선거철이지.....‘쯤’ 자는 빼겠다.

미디어 ; 스포츠와 정치 어떤 것이 더 어려운가?

부브카 ; 물론 정치다.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하는데, 정말 어렵다. 그러나 국민의 마음과 상관없이 내 맘대로 하려면 국회의원처럼 재미있는 직업도 없다.

미디어 ; 선수시절 무려 35번이나 세계신기록을 경신 했었다. 자신의 기록을 깨트리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부브카 ; 아니다. 사실 나는 장대높이뛰기 신(神)... 아니....천재다, 한꺼번에 5cm 심지어 10cm도 경신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당시 구소련의 정책 즉 세계신기록을 경신할 때 마다 포상금을 주었는데, 기록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경신만 하면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1cm씩 야금야금 깨트렸던 것이다.

미디어 ; 그러면 당신이 기록한 6m14cm의 세계신기록도 경신이 가능했었나?

부브카 ; 아니다, 그건 100m를 10초05에 뛰는 나의 스피드, 그리고 엄청난 도약력과 순발력의 결과물이다. 내 자랑 같지만......

 

만약에-

세르게이 부브카가 국회의원이 되지 않고 장대높이뛰기 코치를 했었다면 적어도 우크라이나에서 6m10cm 정도는 넘는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까?

부브카가 육상 쪽을 가지 않고, IOC위원, 국회의원 등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 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에서 제2의 나는 새가 나오지 않고 있다.

부브카는 2014년 IOC 부원장으로 IOC위원장에 도전했다가 토마스 바흐에 패해 탈락했었는데, 만약 IOC 위원에 당선 되었다면 세계신기록을 가진 유일한 IOC 위원장이 될 뻔했었다.

 

※ 기영노의 스포츠 콩트는 100%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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