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당나귀 신사(218) - 큰돈이 생기면 문제도 생기니

서석훈
  • 입력 2014.08.30 17: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영창(소설가, 시인)

큰돈이 생기면 문제도 생기니


영화감독 김과 왕년의 영화배우 장화자는 로얄호텔 뒤 음식점 골목에서 보쌈에 소주를 먹고 나와 산보를 하는 중이었다. 감독은 주머니에 복권 탄 돈이 가득 있었지만 장화자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 데에 야릇한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해 보라. 돈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있는데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토지나 집을 사는 것도 아니고 주식을 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 돈으로 뭘 할까 궁리하며 하루하루 먹고 마시고 뒹굴며 공상에 잠기는 일이 왜 아니 즐겁겠는가 말이다. 생각만 해도 뿌듯하고 행복이 구체적으로 온몸에 밀려오니 이러한 기쁨을 혼자 누린다는 건 실례되는 일이었다. 해서 장화자 같은 뇌쇄적인 몸매의 여자와 대화도 나누고 산보도 하고 무슨 일이 앞으로 벌어질까 기대하며 쩌릿쩌릿한 느낌을 가지는 게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큰돈이 있는 걸 상대는 모르고 자신만 아는 상태에서 상대의 다양한 반응을 보는 게 또한 은밀한 기쁨을 주니 일석이조였다. 절대로 절대로 복권 탄 사실을 밝히지 않으리라. 그걸 밝히는 순간 모든것이 뒤죽박죽되고 말 것이다. 장화자의 머리가 얼마나 복잡하고 아프겠는가. 돈을 밝히지 않는 것처럼 당신 돈에는 관심 없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도 위선적이고 낯간지러운 짓이요, 또는 대놓고 그 돈 좀 같이 사용하자 할 수도 없고, 게다가 아무리 진심 어린 눈길을 보내도 상대가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이겠는가 말이다. 여편네라면 온갖 설계를 하며 이 순간부터 우리 영원히 함께하자는 둥 언약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가난할 땐 금슬 좋던 부부가 큰돈이 생기면 서로의 인간성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고 `그런 놈인 줄 몰랐다. 그런 년인 줄 몰랐다` 하며 원수가 되어 갈라설 수도 있는 것이다. 하물며 정식 애인도 아니고 이제 만남을 이어가려는 시점에 이런 문제로 서로를 시험대 위에 오르게 해서는 안 되리라. 이러한 관계로 감독은 큰돈은 숨기고 푼돈은 넉넉히 준비해 장화자가 사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시간과 세계로 안내하려는 것이었다.
"왜 안 보이던 달이 보이나 모르겠네요." 장화자가 감독의 팔짱을 슬쩍 끼며 말했다. 아 달이야 만날 떠있는데 오늘 따라 달이 보인다니, 여자의 마음은 이렇게 남자가 갈고 닦아 주여야 달이 바치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별도 많네요." 감독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달 별 같은 소리를 듣고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대사는 영화에서도 써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달이 우리 따라오는 것 같아요" 장화자가 또 뭐라고 해서 이에 감독은 `별이 우리 주위를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려다 심하다 싶어 그저 조용한 미소로서 그에 답했다.
(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