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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108] 스포츠계의 달인들 3 - ‘기네스북’에도 오른 박주봉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4.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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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봉은 남자복식 국제대회에서 71번이나 우승을 차지해 ‘1991년 판 기네스북’에도 올라있다. 배드민턴 남자복식에서 불멸의 기록을 남긴 것이다.

박주봉이 배드민턴 라켓을 처음 잡은 것은 풍남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버지 박명수 씨가 학교에서 교사 겸 배드민턴 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박주봉의 타고난 승부욕은 배드민턴을 시작하면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산에서 벌어진 제2회 전국소년체전 단체전 우승을 시작으로 서중학교 시절 단식, 복식, 단체전에서 전국을 휩쓸었다. 라이벌 중학교들은 단체전 5경기 중 박주봉이 뛰는 단식, 복식 2경기를 아예 포기하고 나머지 3경기(단식 2경기, 복식 1경기)를 이겨야 우승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박주봉은 평생 교직에 몸담으신 아버지의 “운동은 학업과 병행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전주농고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와 운동을 겸하면서도 배드민턴에 대한 재능은 어쩔 수 없었는지 성인들도 모두 참가하는 한국 종합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단식 종합우승을 차지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때까지 고등학생이 성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로도 남자 배드민턴은 고등학생이 성인대회 우승은커녕 4강에도 오른 적이 없었다.

박주봉은 배드민턴 사상 처음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1980년이었다. 배드민턴 신동이 스타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등학교 때도 일본에서 관심

박주봉이 1981년 일본에서 열린 한, 일 교환경기에서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자 일본배드민턴 계에서 좋은 조건으로 박주봉에 유학을 제의했으나 이를 뿌리쳤다.

박주봉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국내대회 남자 개인단식부문 1백3연승의 대기록을 세우면서 국제무대로 진출했다.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이은구와 함께 남자복식으로 처녀 출전해 정상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3년에는 이후 10년간의 파트너 김문수를 만나 ‘신화 창조’를 이어갔다.

오른손잡이 박주봉은 왼손잡이 김문수와 환상적인 복식조를 이 룬 후, 제3회 말레이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제4회 캘거리세계선수권 대회 남자복식에서 첫 메달을 땄다.

1984년 제32회 덴마크오픈, 제29회 스웨덴오픈, 그리고 1985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하고 제75회 전 영 오픈에서 우승하자 국제배드민턴 계에서는 박주봉 김문수 복식 조를 '남자복식의 교과서’라는 별명을 붙여주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많은 복식조 들이 왼손과 오른손 또는 스매싱이 좋은 선수와 네트플레이가 뛰어난 선수 또는 키 큰 선수와 작은 선수가 복식 조를 이뤄 세계무대에 도전했지만 아직 박주봉, 김문수 조 만큼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복식 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마침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배드민턴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다.

박주봉 김문수 조는 기다렸다는 듯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복식부문에서 역사적인 금메달을 차지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박주봉은 1985년 캘거리 세계대회 남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해 2관왕에 올랐고,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는 3관왕을 차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시범종목이지만 김연자와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박주봉의 배드민턴 인생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1986년 대만오픈 단식 결승에서 허리를 다쳐 6개월 여 간 요양을 해야 했고, 1987년 베이징 세계선수권 대회 때 준결승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두 차례 모두 운동의 포기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 냈다.

박주봉은 1994년 1월 '2차' 은퇴 이후 한국체육대학교 전임강사, 조교수를 지내고 ‘주봉 브랜드’ 스포츠용품을 만드는가 하면 세계최고 부호 브루나이 왕실의 초청을 받아 배드민턴 교실을 열었고, 왕자와 함께 시범경기를 하기도 했다.

박주봉은 1995년 5월 세계대회를 객관적으로 지켜보다가 현역시절 한번도 져 본적이 없는 덴마크 혼합복식 조가 우승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로 복귀했다.

현역으로 복귀를 한 직후 후배 라경민과 6개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나경민과 혼합복식에 출전한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결승전에서 후배 김동문, 길영아 조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문 이후 영원히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후배 조에게 패한 후 은퇴

박주봉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배드민턴 스매싱 셔틀콕의 비행속도는 시속 3백㎞에 육박한다. 순간 최고속도가 스포츠 각 종목 가운데 가장 빠르다. 골프공이 2백50여㎞이고 양궁의 날아가는 화살이 2백35㎞, 테니스 서비스 2백46.1㎞, 강속구 투수의 빠른 볼 1백60㎞수준이다. 따라서 배드민턴에서 순발력은 세계정상급 선수들에게는 필수요건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순발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박주봉은 자신의 순발력이 더 이상 세계정상을 유지 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미련 없이 은퇴를 했다.

박주봉은 1997년 국제배드민턴연맹이 뛰어난 공적을 세운 인물에게 주는‘허버트 스칠 상’을 받았다.

‘허버트 스칠 상’은 1934년 국제배드민턴연맹 창설 이래 그 때까지 1963년 동안 7명에게만 주어졌으며, 당시 세계 단식여왕 인도네시아의 수지 수산티와 경합을 벌이다 최종 선정됐다.

또한 1980년대 중, 후반 배드민턴이 성행하는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주봉 햄버거’ ‘주봉 아이스크림’ '주봉 쥬스’가 박주봉의 경기 때마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었다.

한국 스포츠맨의 이름이 상품 앞에 붙여진 것은 배드민턴 뿐 만 아니라 전 종목을 통틀어 박주봉이 처음이었고, 지금도 그 뒤를 잇는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박주봉의 일본 배드민턴국가대표 팀 코치로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에서 최소한 2개(혼합복식, 여자복식, 남자복식)의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일본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박주봉 코치(사진= BWF, Badminton World Federation 페이스북 갈무리).
일본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박주봉 코치(사진= BWF, Badminton World Federation 페이스북 갈무리).

가상 인터뷰-

미디어 ; 최근 일본 배드민턴 대표 팀의 상승세가 놀랍다. 지난 2월에 벌어진 영국오픈에서 종합 1위를 했다.

박주봉 ; 가장 권위 있다는 영국오픈 여자복식, 남자복식에서 각각 금메달을 따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단식부문은 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미디어 ; 지금 당장 (도쿄)올림픽이 열린다면 일본이 금메달 2개를 가져간다는 얘긴데.

박주봉 ; 아니다, 3개 까지 가능하다. 혼합복식도 좋고, 여자 단식도 가능하다.

미디어 ; 일본 배드민턴이 한국을 추월한 셈인데......

박주봉 ; 좀 아쉽지만 현실이 그렇다.

미디어 ; 박주봉 코치가 일본팀을 맡으면서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박주봉 ; 내가 2004년에 처음 맡았을 때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2010년 이후부터 좋아졌다. 지금은 5종목 모두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다. 선수층이 두텁다.

미디어 ; 일본 배드민턴이 이 같이 강해진 이유는?

박주봉 ; 국가대표 훈련을 체계화 시켰다. 그 전까지는 국가대표 선수들도 실업팀 선수처럼 훈련을 했었다. 그리고 복식조들의 노하우를 전수 시켰다.

 

만약에-

한국 배드민턴은 가장 권위 있는 2020 영국오픈에서 동메달 2개에 그쳤다.

반면 복식에서 유난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은 금메달 2개 동메달 2개로 중국(은메달 2개) 등을 제치고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복식전문 선수인 이용대 등이 사실상 은퇴를 한 이후 복식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박주봉 씨가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단식은 몰라도 복식 3종목(남여 복식, 혼합복식)은 아직 한국이 일본에 앞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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