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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평론가 기영노 콩트 107] 스포츠계의 달인들 2 -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4.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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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피아>는 국내 최초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기영노 기자의 ‘스포츠 평론가 기영노의 콩트’를 연재합니다. 100%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기영노 콩트는 축구, 테니스, 야구 등 각 스포츠 규칙을 콩트 형식을 빌려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는 연재입니다. 기영노 기자는 월간 <베이스볼>, <민주일보>, <일요신문>에서 스포츠 전문 기자 생활을 했으며 1982년부터 스포츠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야구가 야단법석』,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 등 30여 권이 있습니다. - 편집자 주

367경기 출전, 146승40패 방어율 1.20.

1985년부터 1996년 시즌까지 11년 동안 선동열이 한국 프로야구에 남긴 기록이다.

선동열의 가장 눈에 띄는 기록은 1점대 초반의 방어율에 1이닝 평균 1개 이상(1647이닝, 1698개 삼진)의 탈삼진 기록이다.

메이저리그 역대 규정 투구 횟수를 채운 투수 가운데 1점대 방어율은 단 2명 뿐 이었다.

에드 월시는 195승126패 방어율 1.82, 에디 존스는 160승97패 방어율 1.89였었다.

현역 선수로는 LA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의 2.41이 가장 좋고, 뉴욕 양키즈 팀에 역대 투수 최고 몸값으로 계약한 게릿 콜(9년 3억2400만 달러)가 겨우 3.41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다.

도서출판 민음인에서 선동열 감독이 지난해 10월 22일 발간한 '야구는 선동열 (자신만의 공으로 승부하라)' 내지(자료= 민음인 블로그 갈무리)

선동열은 많은 별명을 갖고 있다.

태양을 뜻하는 SUN, 그래서 일본에서 활약했을 때 ‘나고야의 태양’이라고도 불렸었다. 그리고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많아서 멍게라고도 불렸었다. 그러나 광주출신으로 무서운 패스트볼과 엄청난 슬라이더를 던졌던 선동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별명은 ‘무등산 폭격기’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은 1986년 꿈의 방어율인 0점대 방어율(0.99)를 기록 했다. 0점대 방어율은 39년째를 맞은 우리나라는 물론 13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이제 70년을 넘어서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나오지 않은 불멸의 방어율이다.

일부에서는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는 외국타자들도 없었고, 다른 투수들의 방어율도 높지 않은 ‘투고타저’ 시대였기 때문에 0점대 방어율이 나왔었다고 깎아 내린다.

그러나 1986년 프로야구는 팀 당 108경기를 치렀고, 선동열의 0.99에 이어 고 최동원이 1.55 그리고 재일동포 최일언, 김용수, 김건우, 그리고 6위 장호연(1.90)까지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것은 맞다.

그러나 0점대 방어율과 1점대 방어율은 엄연히 다르다. 2할9푼9리의 타자와 3할 타자의 차이가 큰 것처럼.

더구나 선동열은 마무리 투수가 아니었고, 선발투수로 무려 262이닝을 던져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것이다.

그밖에 선동열이 남긴 기록은 방어율 왕 8번, 다승 왕 승률 왕 각각 4번, 탈 삼진 왕 5번 MVP 3회, 구원 왕 2회, 투수 골든 글러브 6회, 트리플 크라운 3회 등 갖가지 기록을 세웠었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레곤스 시절은 주로 마무리로 만 나와서 162경기 10승4패 98세이브 평균자책점 2.70을 기록했다.

당시 일본프로야구는 각 팀마다 외국 타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외국타자들도 많이 상대해서 나온 기록이었다.

선동열의 체격조건은 1m84cm 97kg으로 매우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릴리스 포인트가 다른 투수들 보다 한발 정도(하체를 앞으로 길게) 끌고 나와 던지기 때문에 타자의 입장에서는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볼 수 있다.

선동열은 패스트볼(포심)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슬라이더와 간혹 슬러브를 섞어 던지는 사실상 투 피치 투수였다.

선동열의 볼 스피드는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156km까지 찍은 것으로 나오고, 프로선수 시절에는 154km를 넘지 못했지만, 볼에 체중을 실어 던지기 때문에 타자가 느끼는 위력은 160km에 가까웠다.

선동열의 슬라이더는 역대 급이었다.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는 135km 안팎의 스피드가 나왔고, 슬라이더가 지금의 커터 정도의 변화가 있었다.

선동열이 체인지 업, 포크 볼 등의 변화구를 던지지 않은 것은 신체적인 약점(손가락이 유난히 짧았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손가락을 찢는 수술을 심각하게 고려했었을 정도였다.

- 가상 인터뷰

미디어 ; ‘코로나 19’ 여파로 뉴욕 양키즈 팀으로 코치 연수가 취소되었다.

선동열 ; 아쉽다. 짧게는 2년 길게는 3~4년 정도 메이저리그 시스템을 배우려고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연기 되었다. 지난해 7월 한국에 왔었던 스티브 윌슨 뉴욕 양키스 국제담당 총괄 스카우트와 내년에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미디어 ; 선수시절에 0점대 방어율도 몇 차례 있었고, 결국 1.20의 방어율로 선수생활을 마쳤다.

선동열 ; 투수의 능력을 측정하는 것들 가운데, 다승, 방어율, 탈삼진, WHIP 등 여러 가지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방어율이 가장 정확하다고 본다. 마운드 위에서 자신이 책임지는 점수만을 합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 통산 방어율 1.20이면 한국 뿐 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 까지 통틀어 가장 뛰어난 기록이다.

선동열 ; 물론 상대성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던진다고 반드시 1점 대 또는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다는 것도 아니다. 나름 의미가 있는 기록이라고 본다.

미디어 ; 감독으로 출전한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국감에 불려 나갔었는데.

선동열 ; 다~ 지나간 얘기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미디어 ; 후배 이종범 아들(정후)을 지켜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나?

선동열 ; 아버지 못지않게 잘 한다. 그러나내 아이들, 민우(아들)와 민정(딸)도 정후 못지않게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다.

야구는 선동렬(선동렬, 민음인, 16,000)
야구는 선동렬(선동렬, 민음인, 16,000)

-만약에

선동열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 했다면 어땠을까?

선동열 선수가 일본 프로야구가 아닌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스테로이드 시대 1989~2007’였었기 때문에 불리했을 것이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메니 라미레즈, 라파엘 팔메이로, 마크 맥과이어, 세미 소사, 단테 비세트, 베리 본즈, 마이크 피아자, 게리 세필드 등 약물복용을 했거나 약물 복용 의혹을 가진 타자들이 즐비했었다.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투수들은 랜디 존슨, 패드로 마르티네즈, 로저 클레맨스, 그렉 매덕스 탐 글래빈, 존 스몰츠 등이 전성기를 누리는 시기였다.

만약 선동열이 메이저리그로 갔었다면, 앞서 언급한 초특급 투수 정도는 몰라도, 매년 10승 또는 15승 정도를 기록하는 뉴욕 양키즈나 LA 다저스 또는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상위권 팀의 3~4선발 급으로는 뛰지 않았을까.

그리고 만약 지금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현역 선수라면 연봉이, 타자 최고연봉 이대호(4년간 150억원)을 넘어서 200억(4년)원은 되지 않았을까?

※ 기영노의 스포츠 콩트는 100%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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